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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Aug 30. 2023

여름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물이 좋아졌다고, 정확히는 물놀이가 좋아졌다고. 계기는 수영.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20대 내내 운동이라는 말만 나와도 창문 밖으로 도망갈 준비를 했었다. 양팔을 엑스자로 크로스 시킨 후 창문을 와장창 깨고 나가는 상상을 하며. 그만큼 운동이 싫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나이를 먹고 돈을 벌려면 체력이 필요했다. 십 수년 가까이 운동을 멀리한 대가로 나약하고 허약해진 내 몸은 퇴근 후 침대 후에 나부라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비단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직을 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조금씩 찾아갈 무렵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체력을 기르는 데는 유산소가 제격이라길래 수영과 러닝을 후보에 올려두었다가 수영을 선택했다. 12만 원을 주고 산 수영복이 서랍 깊숙이 썩어가며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너, 나, 진짜 이렇게 취급할 거야? 네가 그러고도 물속에서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외국에서는 어려서부터 수영을 많이들 가르친다고 하던데. 나도 어디 가서 빠져 죽지 않으려면 수영 정도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 도착한 수영장은 청량했다. 물 밖에선 세월아 네월아 걷는 어르신들이 물속에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생명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물속에서 바라보는 빛이 예뻤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면 해가 기울면서 수영장 천장 바로 아래 난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물속에서 그 빛이 일렁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걸 보려고 자꾸만 수영장에 갔다.


 나에게 삶이라는 것은 종종 나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불행했는가를 비추는 거울과 같았는데, 실은 물놀이도 꼭 그랬다.


 “너네 이번 여름에 어디 놀러 가?”

 중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이 물어보면 일단 움찔부터 하고 봤다. 뭐, 어딜, 갑자기, 왜? 그렇게 눈알을 굴리는 사이 주변의 친구들은 부산이니 강릉이니 여름 피서지를 대며 가족 여행 계획을 늘어놓았다. 가기 싫어 죽겠지만 엄마, 아빠가 하도 원하니까 같이 가준다는 너스레는 덤이었다. 그러다 눈동자가 내게 모이면 나는 짐짓 자연스러운 척 말했다.

 “올해는 영월에 계곡 같은데 가자던데.”

 그러면 애들은 계곡 좋지, 하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뻔한 얘기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의 말은 간밤의 본 생활 정보 TV 프로그램을 떠올리면서 대충 얼버무린 것에 불과했다. 다만 애들은 그런 걸 눈치채기에 너무 어렸다. 애들이라 다행이었다.


 “이번 여름휴가 계획은 어떻게 돼?”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참 여름휴가 계획 묻기를 좋아했다. 그 시절 나는 제법 능숙해져서 움찔하지 않고도 대답하게 됐다.

 “아 바다는 좀 지겨워서 산으로 가볼까 봐요.”

 그건 어쩌면 최선의 대답. 경험상 강릉에 가요, 하면 경포? 안목? 무슨 갈치조림 집이 맛있다더라, 물회는 먹어야 하는 데 거기는 찾아봤냐 하면서 말의 꼬리가 길어지기 일쑤였다. 재빨리 주제를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모든 게 거짓이고 가끔 집에 가는 길에 입꼬리가 뒤늦게 떨리기도 했지만 저, 피서 가본 적 없는데요 같은 말로 좌중을 압도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들의 눈알은 항상 나의 그것보다 빨랐으니까.


 그렇게 내내 물놀이와는 거리감을 유지한 채 살 줄 알았는데 올해는 달랐다. 수영을 다니다 보니 물놀이에 관심이 생겼다. 물에 담겨 있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누가 그랬지,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물속을 가만히 유영하다 보면 모든 고민이 씻겨져 나가고 개운함만 남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것이다. 여름 휴가지, 여름 액티비티, 패러 세일링과 스노클링부터 제트스키까지. 전부 스릴 넘치면서도 안전했다. 일단 바다 위에 뜰 수 있다면, 수영을 웬만큼 할 수 있다면, 안전한 것들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서핑을 다녀왔다. 나는 이제 누가 서핑을 가자고 하면 서핑 갈 짐을 싸서 창문을 깨고 나갈 준비를 한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가고 싶어서 문으로 돌아 나갈 여유도 없는 것이다. 누가 서핑의 매력을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 파도와 한 몸이 되는 기분. 그 넓고 넓은 바다와 내가 일체 되는 기분. 너른 수평선을 바라보며 물개처럼 양팔을 휘젓는 자유로움. 그리고 덧붙여주고 싶다. 아직까지 서핑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건 앞으로 꽤 오랫동안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얼마 전 엄마와 물놀이를 다녀오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이렇게 튜브를 끼고 물 위를 헤엄친 게 얼마만인지. 엄마는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을 들먹였다.

 “그때 갑자기 밤에 비 와서 텐트 접고 차에서 잔 거 기억나니?”

 엄마, 그건 20년도 더 된 이야기잖아. 나는 옛날 얘기 대신 지금을 말하기로 선택했다.

 “이렇게 튜브 위에 누워서 별 보니까 좋다. 우리 매년 이렇게 올까?”

 내 말에 엄마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찾은 사람처럼 웃었다. 꼭, 꼭 내년에도 오자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 순간, 이 인생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게 비단 내 착각이 아님에 안도했다. 물속에서 우울이 풀어지듯, 인생이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곧바로 엄마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 여름이 벌써 기다려져 얕은 숨을 빠르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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