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은 중상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이건 흔히들 얘기하는 ‘유년 시절의 불행’을 차치하고서 가늠한 정도라고 일러두고 싶다. 이 삶은 도대체가 쉽지가 않다. 오늘은 어떤 불평을 쏟아놓을 참이냐면.
“망했어.”
손에 쥐고 있던 초콜릿 봉지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동료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카페인. 아, 카페인.”
말보다는 동동거리는 발과 잔뜩 찡그린 얼굴이 앞서나가며 설명했다.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있어?”
용케도 알아들은 동료. 그렇다.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있다. 나는 자꾸 까먹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카페인 3 대장 커피, 초콜릿, 콜라. 일전에 나만의 구호로 ‘NO 3C’도 만들었다. NO COFFEE, NO CHOCOLATE, NO COLA. 그러나 아직도 종종 깜빡한다. 카페인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 침투해 있다. 유독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에, 유독 많이. 그러니까, 카페인이란 건 본래 유독한 것으로.
원래도 카페인에 민감한 편이었던 것은 같다. 고등학교 시절 믹스 커피 두 봉지를 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옥죄여와서 어찌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고, 대학교 시절 소위 말하는 ‘스누피’ 커피를 마시고 밤을 새운 기억도 많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내게 허용되는 카페인 용량은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마침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이제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성인 평균 하루 카페인 권장량이 약 400mg이라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내 경우 아무리 계산해 봐도 35mg만 넘어서도 밤에 잠드는 게 어렵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를 끊었다. 저녁에 맛있는 피자를 먹으며 콜라 몇 모금만 넘겨도 잠을 설쳤다. 결국, 콜라도 끊었다. (그래도 콜라를 끊는 건 쉬운 편이었다. 사이다나 탄산수처럼 대체재가 많았으므로.)
그런데 초콜릿을 끊을 생각은 정말이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 조그마한 덩어리에 카페인이 많아 봤자지.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은 가장 방심했을 때를 노린다. 초콜릿 두어 개를 먹고는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해 아차, 싶었다.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있었지. 찾아보니 내 기준 적지 않은 양이었다. 아, 오늘 밤도 못 자겠구나, 내일도 텅 빈 영혼과 더 텅 빈 눈동자로 하루를 견뎌내야겠지. 다가오는 모든 사람에게 날을 세우고 반응하겠지. 그런 날의 내가 얼마나 싫은지 알까.
이 삶이 좌절스러운 것은 그런 것이다. 만약, 사람들 말대로 다정이 체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나의 다정은 초장부터 글러 먹었다.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까지 힘껏 들어주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라면, 현실은 나의 짐조차 버거워 어쩌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뿌리가 깊게 박혀서, 그 중심을 단단히 잡고 주변 사람들마저 붙들어 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째 이 삶의 길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런 사람과는 멀어져만 간다. 카페인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예민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카페인을 끊는 것과 별개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각종 운동을 꾸준히 했던 적도 있지만, 1년이건 2년이건 운동을 해도 더 힘들기만 할 뿐 체력이 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운동 중에 다치기를 반복.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구나. 식단을 챙기고, 영양제를 먹고, 같은 시간대에 잠이 들고, 그런 것은 나를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엉켜버린 몸일까?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도록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몸뚱이를 보며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서 웃었다.
먹는 욕심이라고는 없는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것이 커피와 초콜릿이었는데. 하필이면 그걸 빼앗아가고 다시 되돌려 받을만한 방법조차 쥐어 주지 않는구나. 쉬운 투정이라는 걸 알지만. 생은 왜 누구에게는 쉽고 누구에게는 마냥 어려운 것처럼 보일까. 무던하고, 덤덤하게. 모든 방면에서 그렇게 살아갈 순 없을까. 단순한 삶을 어림잡아보며,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린다.
나는 이 긴, 긴 밤이 무척이나 괴롭다. 마치 기나긴 이 생애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