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과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와 서비스.
※ 이 글에는 다량의 스포가 들어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는 분은 글을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
드디어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시작으로,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 광고, 콘텐츠 광고음악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퀸의 음악. 그 역사를 만든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관계는 스타트업과 창업을 한 스타트업 대표들과 무척 닮아있었다. 그렇게 느꼈던, 관전 포인트들을 끄적인다.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탄자니아 출신의 아웃사이더 ‘파록버사라’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며 집을 나갔다. 좋은 말, 좋은 행동, 좋은 생각을 하며 타국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며 그는 특별해지고 싶었다. 이민자 출신의 블루칼라의 노동자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결정하는 순간, 프레디 머큐리로서의 첫 발을 뗐다. 그는 더 이상 이민자 출신의 노동자가 아닌, 스스로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의 삶이 시작된 셈이다.
I decide what I am.
내가 무엇이 되는지는 내가 정해.
그러고 나서 그가 찾아간 곳은 락 클럽. 때마침 마음에 드는 로컬 밴드가 있고, 그 밴드의 리드 보컬이 그만두게 된다. 그들과 함께 합류하게 되면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으로 밴드 ‘퀸’을 이끌게 된다.
팀을 만드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공고를 올리는 것.
두 번째, 나를 잘 아는 남이 구해주는 것. (인사팀, 투자자 등)
세 번째,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스스로 찾아가 쟁취하는 것.
스타트업이야 늘 인력난이니 셋다 늘 시도하고 있지만, '럭키 인재'는 세번째에서 나올 확률이 높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단, 내가 원하는 삶이니 내가 원하는 사람일수록 나와 잘 맞을 확률이 높기 때문. 하지만 모든 인연이 쌍방향은 아니다. "앞니가 나와서 안된다"는 꽃미남 드러머 로져테일러의 인신 공격에도, "구강 구조가 나와서 소리울림이 크다"며 압도적인 노래를 하는 프레디 머큐리. 그리고 매료되는 멤버들. 바로 그 지점이 퀸의 탄생 지점이다. 관계를 압도하고 리딩하는 누군가가 나오면서, 팀의 지속기간은 정해진다.
아마 퀸이, 한국의 장유유서 방법 대로, 가장 오래있었던 멤버나 나이가 많은 멤버가 리더가 됐다면 지금의 퀸은 없었을 것이다. 새로 굴러들어온 멤버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팀원, 그 재능을 제대로 믿어줄 수 있는 팀원들의 믿음과 신뢰가 퀸을 퀸으로 만들 수 있는 핵심 자산이다. 지금까지 전설로 남을 수 있고, 많은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통해 무대를 이어나가고 있는 로져테일러와 브라이언 메이를 보라. 누가 그들을 감히 퀸이 아니라 하겠는가. 멤버들끼리 사이 좋게 함께할 수 있는 끈끈함. 그 탄탄한 우정은 처음 시작에서부터 나온다.
로컬 밴드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다 지친 멤버들은 차를 팔아 음반을 만들기로 한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던 그들은, 세상에 없던 음악을 과감히 시도하고 파격적인 방법을 통해 음악을 만든다. 그 과정 속에서 대형 기획사를 만나게 되고 '퀸의 비전'을 만들게 된다.
부적응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들이에요.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우린 그들의 밴드예요.
그래서, 퀸의 노래가 위로가 되는 것일까. 퀸의 노래에는 확실한 울림이 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울림, 나도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울림, 별거 아닌 나도 상대를 깨부술 수 있다는 울림. 사실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이 비전을 제시 했을 때, 많이 반했다. 이민자 출신의 리더, 세상에 없던 음악을 시도하는 퀸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이 장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킥이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님도 강연 할 때, "모든 일의 시작은 정의하는 것부터"를 보여주고 시작한다. 퀸이 퀸의 음악을 낯설어하는 이에 대한 문제를 정의하고, 음악을 듣는 유저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부적응자와, 외로움을 느끼는 자를 퀸의 타깃으로 정의했다. 그렇게 퀸은 탄생했다.
*퀸의 정의: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
*퀸의 타깃 : 세상에 외면당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퀸이 할 노래 : 그들을 위한 노래 - 위로, 사랑, 메시지, 응원 등등.
실제로 퀸은 이 큰들에서 어긋난 노래를 한 적이 없다. 디스코를 할지언정, 그 음악도 퀸의 것이었다.
퀸의 역사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오기 전과, 그렇지 않은 시절로 나뉜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보헤미안 랩소디. 당시는 1970년대, 프레디 머큐리가 제작자에게 "오페라의 느낌이 나는 락음악을 만들 것이라"라고 피칭하는 장면에서, 그의 천재성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이미 보헤미안 랩소디의 파급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편으로는 성공 히트 공식만 따지는 제작자의 마음도 공감했다. 오페라의 느낌이 나는 락 음악은 누가봐도 실패할 지름길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오페라는 아무도 안보고, 락음악을 누가 오페라처럼 듣고 싶어 한단 말인가. 이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서비스 결과물을 잘 마드는 것 밖에 없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은 스타트업이 지금도 계속 겪고 있는 부분과 닮았다. 자신의 포부와 방향성, 서비스에 대한 피칭을 한 후 실제로 투자 이후에 서비스 결과물에 대해 피봇팅을 해가는 과정. 정답도 없고, 치트키도 없다. 소비자의 반응이 결과로 말해줄 뿐이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전례 없고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결과물은 도전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이 부분에서는 팀 리더의 역할이 많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생각한 압도적인 크리에이티브, 그걸 퀄리티로 실현할 수 있는 실력과 구현력, 팀원들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디렉팅 능력과 리더십, 향후 서비스가 팔릴 수 있도록 만드는 마케팅 판로와 기획력.
프레디는 '보헤미안 랩소디' 하나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녹음 기간만 3주, 오페라 파트는 합창단이나 중창단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멤버들의 코러스를 180번이나 덧입혀서 만들어 낸 일화는 유명하다. 이 과정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진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처음 작곡했던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의 수준을 아는 디렉팅 실력, 그 안에서 멤버들과의 감정 소모들을 감당하면서까지 밀고 붙이는 리더십과 고집. 라이브가 어려운 음악이라, 혁신적으로 '뮤직비디오'를 생각하고 제작하며, 막판에 6분이라서 계약하려고 하던 레코드사와 파기하고, 지역 라디오에 직접 레코드를 들고 찾아가 영업 유통하는 마인드까지 갖췄다. 그의 나이는 당시 27세였다.
확신한다. 퀸은 아마, 유튜브 시대인 지금 나왔으면 지금보다 더 전설이 됐을 것이다. 퀸이 만약 21세기를 살고 있고, 그들의 공연들이 유튜브에서 확산이 됐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자. 내가 퀸을 알게 된 것은 개그맨 이윤석과 박진수가 함께한 '허리케인 블루'에서 퀸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것을 보면서였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라이브가 어려워지면서 고안한 뮤직비디오 콘텐츠들이, 대박을 치면서 퀸의 컨셉이 됐고, 뮤직비디오 포맷이 글로벌 시대와 맞물리면서 흐름을 타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적응자를 위한 노래'는 나라와 언어 상관없이 공감할만한 주제였다.
그 이후로, 관객이나 듣는이가 함께 할 수 있는 노래의 콘셉트 구체화는 계속된다. 퀸만의 의상 스타일, 노래 스타일은 물론 노래까지 전략적으로 만든다. 관객들의 참여가 노래의 확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 퀸은,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같은 노래를 만든다. 함께 참여하고, 많은 영감과 모티베이션이 되는 음악들을 집중해서 만든다. 'I was born to love you', 'Somebody to love' 등 퀸의 모든 락음악의 클리셰가 됐다. 이 노래들의 대부분은 1970년대에 나왔고, 아직도 퀸의 컨셉을 대체할 밴드는 없다. 월드컵, 올림픽 시즌에 모든 스포츠 콘텐츠의 배경음악이 퀸의 음악인 것을 생각하면, 당시 J커브는 유니콘을 넘어선 '초대박'이다.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계산하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도 당시 그랬다. 아무래도 밴드의 특성상, 리더와 메인 보컬의 역량이 중요하고 성공한 퀸의 노래의 대부분은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 작곡했다. 이것은 팩트. 많은 그룹들이 그렇듯, 솔로를 제안받고 프레디 머큐리는 주변의 유혹을 받아 팀을 버리고 타락한다. 그 과정 속에서 프레디는 많은 것을 잃는다. 스타트업 대표들도 많은 착각을 한다. 대체적으로 미디어나, 투자 포인트에서 대표들의 스토리를 회사 전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에서 이 부분을 볼 때, 울었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잘 되기 전에는 팀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재미있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 때문에 잘됐고, 누구 때문에 잘 안됐다' 등의 이해타산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예전엔 없었던 계산을 하면서, 기존에 없었던 정치가 생기고 명분이 생긴다. 그러면서 조직은 점점 예전만 못하게 된다. 리더들이 가장 많은 원망을 받고, 창업 초창기 시절 함께 했던 멤버들 대신 새로운 사람을 채워 돌린다. 어떤 조직이든 성장하게 되면, 한 번쯤은 겪는 상황인 것 같다.
이 장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내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같이 함께 하던 동업자가 떠났을 때, 제일 아끼던 직원이 나갔을 때, 내가 받은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줬을 때. 그때마다 나를 붙잡을 수 있게 해준건, 가족의 사랑과 남편의 이해, 친구들의 따뜻한 응원이었다. 결국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나의 재능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의 즐거움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레디 머큐리도 전 부인이던 메리의 충고를 듣고 깨닫는다. 여기서부터 퀸은 프레디라는 개인 1인의 리더가 리더십으로 끌어온 1인체제의 독주형식이 아닌, 퀸의 멤버들과 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팔로우십이 함께하는 조직으로 변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 이제야 알았어.
지금 내 주위에는 남겨진 먹이만을 바라는 날파리들뿐이거든
퀸 공연의 레전드로 꼽히는 라이브 라이브에이드. 영화는 2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공연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애쓴다. 영화를 찍는 도중에 중간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해고되어 영화의 흐름이 갑자기 애매해졌지만, 영화는 네이버 관객 평점 9.6점을 기록했다. 국내 관객의 네이버 평점이 9.5점이 넘는 영화는 잘 없는데, 거기에는 영화의 후반부가 라이브 에이드의 공연으로 채우면서, 관객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퀸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공연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 그걸로 이미 내 평점은 만점이다.
뮌헨에서 잘 한다는 아티스들하고 일 해봤는데,
우리처럼 싸우지도 않고, 좋은 아이디어도 안나왔어.
퀸으로 돌아온 프레디 머큐리는 말했다. 퀸은 프레디 머큐리의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 순간 퀸의 전설은 다시 시작된다. 다시 단합한 라이브 에이드 공연 전이 전설의 시작이었다면, 전설이 역사로 만드는 것은 팀의 완벽한 단합 이후였다고 생각을 한다. 이후 프레디 머큐리가 죽고, 존이 탈퇴를 해도 로져 테일러와 브라이언 메이가 2인조 퀸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만약 프레디가 이 때 퀸을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퀸은 수많은 해체한 다른 그룹 밴드와 다르지 않은 행보를 겪었을 지도 모른다.
*퀸 라이브 에이드 공연 링크
세상엔 수많은 리더가 있다. 그리고 리더를 따르는 팀원은 더 많다. 이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되겠다고 느끼게 해준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차리고 '대표'라는 직함에 취해있거나, 창업을 해서 놔두면 알아서 누군가 키워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리딩하고, 모티베이션하고, 컨셉팅하고, 방향성을 정할 것인지, 압도적인 결과보다 건강하게 자기다움으로 리딩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 한번씩 프레디 머큐리를 떠올려야겠다.
이번 주말은 내내 퀸의 노래와 함께! y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