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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yory Jun 29. 2023

<우리는 모두
 아름답게 사라지는 거야>

# 끝과 마지막을 떠올리면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

『우리는 모두 아름답게 사라지는 거야』는

내가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업로드 하면서 그 아래에 적었던 글의 맨 마지막 문장이었다.


가까운 친구 한 명이, 그 글을 여러 번 읽고서는 "이 문장 너무 좋은 것 같아..."라며

첫 번째 책을 쓴지도 3년이 훌쩍 넘었으니, 두 번째 책을 쓸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책 제목으로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은 일상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나의 행위 혹은 취미라기보단, 말그대로 일상. 삶 그 자체였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을 다시 읽어보는 일은 많지 않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묻히거나 잊혀지곤 했다.



2022년 12월 말.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났던 지인들 중 몇 몇과 함께 삿포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반부 쯤이었나, 후라노의 시골마을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뻥 뚫린 도로 위에 저 멀리 강아지로 추정되는 동물이 혼자 떠돌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함께 동행했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나도 함께 덩달아 흥분했다.


"여우야, 여우! 강아지가 아니고!"


처음엔 믿기 힘들었다.

여우라니.

어린왕자에서만 보았던, 그 여우.

메종키츠네 브랜드의 로고, 그 여우가 바로 우리 눈 앞에 있었다.


삿포로 여행 중 만난 야생 여우

믿기지가 않았다.


내 예상으로는, 여우가 겨울 잠을 자다가 배가 정말 고파서

먹을 걸 찾으러 동네로 내려온 게 아닐까? 싶었다.


하얗게 쌓인 눈밭위에 찍힌 여우의 발자국 하며.

윤기가 흐르는 부드러운 털과 춥지만 청명한 겨울 공기를 닮아 또렷했던 눈동자까지.

꿈만 같아서, 계속 와.... 와...! 여우다...여우! 라고 말을 이었다.


여우 친구의 뒤를 조심스레 따르다가, 필름을 감고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대고, 셔터에 손가락을 올렸다.

여우가 냄새를 한참 맡더니, 어딘가로 떠나려는 동작을 취하려는 찰나에!


휘파람을 "휘이이익-"하고 불었다.

때마침 여우가 뒤를 돌아봐주었고!

그 순간을 포착해, 셔터를 눌러 탄생한 사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필름을 스캔하는데, 너무 떨렸다.

나와 눈을 맞췄던 그 여우가, 저만치 멀어져 점이 되어버린 여우가.

다행히 그 필름 안에 잘 담겨있었다.

혹시라도, 사진이 날아갔을까봐? 노심초사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이 여우 친구는, 내가 출간하는 책의 표지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아름답게 사라지는 거야>

여우가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했던 말 같기도.

여행 중에 스스로 수 없이 되뇌이고 또 곱씹었던 문장이기도.

평소에도 끝과 마지막을 생각하며 슬퍼했던 밤들의 끝이기도 한 그 문장.


텀블벅 펀딩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다음 주면 이 세상에 책이 태어난다.

내 인생 두 번째 책이.



이 사진은 2020년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찍은 필름 사진.

달리는 차 안이었고, 창문을 열어 바깥 풍경을 구경하다가 저 멀리 사라지는 버스의 모습을 보면서

급하게 필름 카메라를 꺼내어 찍은 사진인데, 다행히 그 당시 풍경과 바람의 질감이 잘 담긴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껴두었던 사진인데, 이번 책의 뒷표지 (표4)에 이 사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표1에는 여우가, 표4에는 버스가.

점점 멀어지다가, 작아지면서 결국 사라지는.

시간이 흐르고 쌓여 인간도 언젠가는 끝을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그 순간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하고 그래서 어쩌면 아름다울지도 모르는 끝,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이번 책도, 동네책방과 독립서점에 잘 누워 있다가.

좋은 주인을 만나 이곳저곳으로 떠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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