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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Jan 25. 2023

좌절이 가까운 새해

그래도 해내야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해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럴듯하게 대답을 해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작년 목표와 정확히 같았다는 사실. 투자사에 매년 보고하는 서류를 정리하다가 알게 되었다. 양을 늘리고 멤버십을 운영하겠다는 목표가 그 서류에도 쓰여 있었다. 


그렇게 몇 분정도 기분이 나빴지? 하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22년은 일을 정리하는 한해였지 해내는 한 해는 아니었다. 그래서 원고를 줄이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한 곳에 모으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았다. 외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 덕분에 올해는 아주 조금씩 하나의 일감에 집중하는 연습을 시작하는 중. 


일을 하다보니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명확해진다. 아이디어와 기획과 목표가 많은 것은 장점. 실행이 약한 것은 분명한 단점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너무 많지만 그걸 해낼 시간을 만들어 집중하는 일에는 너무너무 약했다. 그러니 눈 앞에 있는 일들만 정신 없이 쳐내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투자사 대표님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경력이 있으니 뭐라고 말도 모질게 못하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올해, 매일, 순간순간 연습하는 건 날아가는 생각을 꼭 잡아서 눈 앞에 두는 것이다. 손글씨로 쓰고 압정으로 박아서 벽에 붙여두는 것이다. 그런 결심의 일환으로 이 글도 쓰고 있는 셈이다. 하루하루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일기'라는 형식과 친해지기로 결심했거든. 


지금까지 써왔던 글은 모두 일종의 퍼블릭 라이팅(public writing)이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칼럼과 인터뷰, 에세이가 종이매체와 웹사이트에 먼지처럼 흩어져 있을 것이다. 2006년부터 일간지와 월간지에서 기자와 에디터로 일하면서 써왔으니까. 게다가 나는 정말이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모든 글 안에 가장 사적인 부분의 나는 부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을 목표로 한 글. 정보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취재가 바탕이 되는 글만을 프로페셔널로 써왔다. 그러다보니 나는 너무나 글을 쓰는 사람이면서, 그 정체성을 점점 강화해가는 시간을 살면서, 정작 나만을 위한 글쓰기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색해 죽겠는 채, 누구에게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어떤 의도도 없이, 오로지 저 위에서 나풀거리는 내 생각을 손으로 적어 땅 위에 고정해두기 위해서. 


올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년을 잘 살기 위해서는 한 계절을, 한 계절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한 달을, 한 주를,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하니까.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손을 잘 써야 한다. 내 손은 글 쓰고 만들면서 생각을 형상화하는 손. 올해도 잘 부탁해. 좌절로 시작했지만 돌파구를 찾았으니 차분하게 걸어보자. 


어려운 거구나, 일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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