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로워, 인간으로 산다는 건
습관처럼 말할 때가 있다. 인간으로 사는거 너무 번거롭다고. 끼니마다 먹을 걸 고민하거나,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거나, 혼자서는 잘 지낼 수 없는 인간과 사회의 규칙 내지는 본능. 그런거 참 번거롭다. 나무였으면 좋겠어. 돌이면 어떨까. 고양이로 사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본 적 있지만... 나무에게는 나무의 번거로움이 있겠지. 고양이라고 마냥 느긋하진 않을 거야. 그들의 인생은 영원히 모르겠지. 하지만 상상과 실재가 다르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번거로운 인간의 삶을 착실하게 살아온 결과로서.
사과를 받아야 하는 일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 사과를 받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않았다. 그러기까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믿을 만한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같이 고민했다. 내치기에도 애매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는 그런 사이가 있다. 인상을 찌푸릴 필요도 없지만 환하게 웃을 일도 없는 그런 관계도 있다. 그 사이에서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것은, 그 순간에 따져 물어 진위를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이라면 달랐을 거야. 화가 뻗치면 뻗치는 대로,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풀기 위해 최대한 신속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의견과 판단을 먼저 구했다. 혹시나 내가 범했을 지도 모르는 실수의 가능성을 미리 알고 싶었다. 본의 아니게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를 다시 나누고 정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감정을 접어두는 대신 규칙을 만들었다. 어른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정리가 되기도 한다.
사과를 받는 순간에는 수저를 들고 있는 손이 좀 떨렸다. 너무 화가 나서. 하지만 참아야 하니까. 지금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쏟아냈다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서먹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참고, 대신 눈을 똑바로 보고, 딱 한 마디만 했다. "하지만 방법이 틀렸어요"라고. 한 마디 정도 더 했지만 그건 부록같은 것. 충분히 자제했다.
그래서 그 모든 관계랄까 앞으로의 시간이랄까, 그런 것들이 조금 다른 챕터로 접어들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은 계속 좋아질 것이다. 나쁜 줄 몰랐지만 참 나쁜 영향력을 가진 사람과는 젠틀하게 결별할 것이다. 곁에 두어야 하는 사람과 멀어져야 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기를 것이다. 반드시 함께여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그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번거로움에 대한, 거의 유일한 솔루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