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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uchi Apr 01. 2023

전도연 헌정 영화 '길복순'

넷플릭스로 되돌아온 전도연, 25년 영화 이력 리뷰

'길복순'은 '전도연'의 영화다. 

영화판에서 25년 가량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면서, '찐한' 감동을 전해준 전도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듯 제작한 '헌정 영화'처럼 느껴졌다. 그 인사를 간단히 치를 수는 없기에 고심 끝에 '킬러'와 '엄마(복순)'의 양면적 캐릭터를 입혀준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전도연은 액션도 잘 하는 배우구나, 새삼 느꼈다. 

물론 예고편 보면서 '길복순'을 액션영화로 기대한 이들에겐 '존윅'과 '킬빌'을 떠올리고 비교하며 실망할 수도 있었을 듯 하다. 하지만, 다수의 관람자는 '역시 전도연!' 감탄을 자아내게끔 감정선을 세심히 전하는 특유의 연기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황정민과 합을 맞춘 첫 씬과 중반 액션씬에서 얼핏 포착되는 '웃음짓는 표정연기'였다. 

"이마트에서 3만원 주고 샀어"

황정민은 깜짝 등장 느낌의 비중 큰 까메오라 놀랐는데, 역시나 후일담 찾아보니 캐스팅 사연이 있었다. '너는 내 운명'에서 워낙에 합이 잘 맞았고 친분이 두터운 사이여서 전도연이 직접 연락해서 출연을 부탁했다고 한다. 또한 헌정 영화 첫 머리에 그가 나온 것이니, 참으로 잘 어울린다 싶었다. 심지어 대놓고 '그대에게 예를 갖추고 싶다'는 대사마저 절묘하다.^^ 


펜 하나로 탑 인턴을 제압하는 액션 씬. 저배속으로 다시 보니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전도연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항상 그를 처음 마주하고 인터뷰했던 날이 떠오른다.

영화 '접속'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을 때이니, 1997년이다.


전도연의 영화 데뷔작 '접속'(1997)


당시 탤런트로 인지도를 갖고 있긴 했지만, 영화판에선 신인이었다. 

그때 흥행 1순위의 Top 스타인 한석규와 호흡을 맞췄다. 시사회를 동숭동 대학로에 위치한 동숭아트홀에서 한 걸로 기억한다. 영화 시사가 끝나고 같은 건물안 카페에서 배우 인터뷰를 했다. 넓은 테이블의 왼쪽에 한석규가 자리잡자 10여명의 기자들은 대부분 그를 둘러싸며 앉고 서서 연신 질문을 퍼부었다. 신인배우 전도연은 테이블 가운데에 앉았지만 기자들이 관심을 주지 않아 혼자 외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기획사에서 여배우와도 인터뷰를 좀 해달라 부탁해왔다. 그때 생소했던 '인공눈물'과 PC통신 얘기, TV와 스크린의 차이 등 이런저런 궁금한 걸 묻고 답했던 듯 하다. '신인 배우' 답지 않게 당황하거나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웠고 말 속에 당찬 기운이 느껴졌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제법 긴 시간, 대배우와 단독인터뷰를 한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젊은 시절 문화부 기자를 했던 보람 중의 하나다.^^


접속은 대흥행의 성적을 냈고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에서 신인여배우상을 수상했다.

그 다음해 출연한 '약속' 또한 인기가 높았고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안착한 전도연은이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며 빛을 더해갔다. '내마음의 풍금'으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황정민 얘기의 연장선에서 그와 호흡 맞춘 남자배우들 면면을 살펴보다보면 자연스레 그의 작품활동의 다양성과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박신양과 함께 한 약속(98), 이병헌 - 내마음의 풍금(99), 최민식 - 해피엔드(99)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설경구, 2001)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류승완감독)
배용준과 열연한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박해일 - 인어공주(2004/ 1인2역)
너는 내 운명(2005) - 황정민, 이창동이 감독한 밀양(2007)에선 송강호와 함께 열연했다.

'너는 내 운명'으로 전도연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때 황정민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과 대한민국영화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스태프들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엊고 상 받는다"는 수상소감을 해서 계속 회자되고 있다. 


'밀양'은 전도연을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시켜준 작품이다. 60회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로 최초 수상이었다. 유괴범을 면회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고 괴로워한다.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이때 이 역설적 장면과 메시지가 무척 강렬한데, 이를 온전하게 표현해낸 전도연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고 '영화의 힘'을 되짚어보게 만들어줬었다.  


멋진 하루(2008), 하녀(2010, 임상수감독)
카운트다운(2011), 집으로가는길(2013)
2015년에 개봉한 '무뢰한'과 '협녀-칼의 기억', '남과 여'
'보금자리'(2017), '생일'(2019)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 단편영화 '심장소리'(2022, 이창동감독)

전도연 출연작은 대부분 봤다고 생각했는데 못 본 작품도 여럿이다. 

포스터나 주요 장면 이미지만을 보는데도, 영화 하나하나마다 그 이면의 숱한 사연이나 스탭들의 땀방울들이 엿보인다. 그리고 앞단에서 참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오롯하게 뿜어내는 전도연이 보인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배우가 연기하는 느낌보다는 우리 사회내 어디선가 당연하게 존재할 그 인물이 나오는 것 마냥 자연스러움이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을 한차례 미뤄가며 어렵게 공개했다. 평단의 호평을 얻었으나 아무래도 극장을 가기 힘든 '거리두기'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대중적 흥행은 어려웠다.   

전도연은 물론, 송강호와 이병헌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비상선언'은 사전에 칸 영화제 초청도 받은데다 코로나가 걷혀가는 시점과 맞물려 흥행 기대가 컸으나 아쉽게도 대중적 인기가 낮아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대략 25년 동안 25편 가량의 영화에 출연한 걸로 보인다.('백두산'과 '인질'에 특별출연한 것을 합쳐서다)

전도연은 2014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2009년 이창동 감독이 심사위원을 한 적은 있지만 한국 배우로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사반세기에 걸친 영화 이력을 훑다보니 자연스레 영화판의 세태변화도 읽게 된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때 영화계에서 OTT의 약진이라는 큰 변수가 등장해 있는 상황이다. 이번 '길복순' 또한 넷플릭스이 투자한 오리지널 작품이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전도연'으로 검색해보니 '접속'부터 '해피엔드' '인어공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밀양' '무뢰한' '멋진 하루' '협녀, 칼의 기억'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가는 길' 등의 영화와 '일타스캔들'과 '인간실격' 등의 드라마가 나온다)


최근 K-콘텐츠의 리더십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길복순'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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