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이 불가하다는 약관의 불공정 시정명령과 불복
약관규제법 영역에서는 부킹닷컴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 운영자를 숙박계약의 고객에 대한 약관의 제안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곤 한다. 최근 판결에 대한 평석으로 입장을 정리해보자.
[판결] 약관규제법 위반행위 :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20두 41399
[출처] 이선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변호사, 2023년 경쟁법 중요판례평석, 2024 no.521, pp.189 - 222, 대한변호사협회
원고는 자신의 플랫폼을 통하여 세계 각국의 숙박업체와 숙박업체를 이용하려는 고객에게 숙소 게시, 검색, 숙박 예약, 결제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온라인 숙박예약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이다. 원고는 자신의 플랫폼에서 검색된 숙소 목록의 ‘객실 유형’ 중 ‘조건’ 또는 ‘선택사항’ 항 목에 ‘환불불가’라는 조건을 게시하여 고객이 환불 불가 조항이 기재된 객실을 예약하였다가 취소할 경우 미리 결제한 숙박대금을 환불받지 못하게 하였다.
피고는 위 환불 불가 조항이 약관규제법 제8 조에 위배하여, 고객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 배상의무를 부담시키는 약관 조항이라는 이유로, 2017. 11. 1. 원고에 대하여 해당 조항을 수정하도록 권고하였으나, 원고는 시정권고서 수령 후에도 환불 불가 조항을 계속 사용하였다. 이에 피고는 2019. 2. 11. 시정권고 불이행으로 인하여 다수의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발 생할 우려가 현저하다는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환불 불가 조항을 수정 또는 삭제하고 사용을 금지하는 시정명령을 하였다(공정위 2019. 2. 11. 의결 제2019-032호, 이하 ‘이 사건 처분’)
(1) 원고가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원심은, 원고가 약관규제법 제17조 및 제2조 2호에 따라 불공정약관조항의 사용금지 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부가적으로 위 환불불가조항의 불공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시정명령을 취소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0. 5. 20. 선 고 2019누38108 판결).
(2) 이에 피고가 상고하였고, 대법원은 아 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환불불가 조항은 숙박계약에 포함되는 내용으로서, 숙박계약의 당사자는 숙박업체와 고객일 뿐 원고를 숙박계약의 한쪽 당사자라고 볼 수 없고, 원고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통신판매업자의 책임을 면하지 못하거나 대신 이행하여야 하는 ‘통신판매중개업자’나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이와 달리 볼 것은 아니며, 원고가 고객에게 환불불가 조항을 제안하는 자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원고는 약관규제 법 제17조 및 제2조 제2호에 따라 불공정약관조항의 사용금지 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1) 원고가 약관규제법상 사업자에 해당하는지
약관규제법 제17조는 “사업자는 제6조부터 제14조까지의 규정에 해당하는 불공정한 약관 조항(이하 ‘불공정약관 조항’이라 한다)을 계약 의 내용으로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조 제2호는 “사업자란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상대 당사자에게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 하고 있다. 민사법의 원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그 계약에 관여한 당사자의 의사해석의 문제에 해당한다.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내용, 그러한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 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대법원 2018. 1. 25. 선고 2016다238212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앞서 본 판결요지와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가 약관규제 법 제17조 및 제2조 제2호에 따라 불공정약관 조항의 사용금지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수긍한 것이다.
(2) 환불불가조항이 불공정약관 조항에 해당 하는지
부가적 판단부분 원심법원은, 환불불가 상품의 경우 ① 가격이 ‘환불가능 상품’에서보다 저렴하고 ② 환불불가 라는 점이 명백히 밝혀진 상태에서 ③ 고객이 자신의 상황에 따라 특정 조건의 숙박상품을 자유로이 선택함으로써 이익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점, ④ 환불불가 조항으로 인한 손 해배상 예정이 부당하게 과중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 예정액 자체의 불이익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예정액과 결부된 할인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중한지 여부를 따져야 하는데, 환불불가 상품으로 인해 고객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과 이익의 내용 및 불이익과 이익 발생의 개연성, 숙박예정일로부터 남은 기간에 따른 취소객실의 재판매 가능성, 예상 손해액의 크기를 구체적,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환불 불가 조항으로 인한 손해배상 의무가 고객에게 ‘부당하게 과중’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당 조항의 불공정성을 부정하였다. 그리고 대법원도 “환불 불가 조항이 고객에 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시키 는 약관조항으로서 약관규제법 제8조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의 부가적 판단부분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앞서 본 대법원 판시내용은 전형적인 양 당사자 간 계약의 구조에서는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아래와 같은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이 가능하다.
47) 이병준, “숙박플랫폼의 환불불가 조항과 약관규제법에 의한 내용통제” 소비자법연구 제6권 제3호, 2020. 11., 78∼98면; 홍대식, “약관규제법상 불공정약관조항 사용금지 의무 위반에 대한 행정적 책임 주체와 관련 문제” 비교사법 제29권 제1 호(통권 제96호), 2022., 399∼418면. ▣ 2023년 경쟁법 중요판례평석 인권과정의 2024년 5월 | 219
(1) 약관규제법에 의하여 공정위가 불공정 약관에 대하여 행하는 규범통제는 행정적 통제라는 점,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와 그 서비스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약관규제법상 불공정약관 조항 사용금지의무를 부담하여 행정적 책임의 주체가 되는 사업자를 정하는 법리는 민사법상 불공정약관조항이 포함되는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확정하는 법리와는 독립적으로 정립 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숙박 예약 플랫폼이 단지 중개자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거래성립에 관여하여 환불불가 조항을 통하여 ① 예약취소의 경우에 숙박업자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위험을 면하는 이익과 ② 양면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최저가 보장 조건이 경제적으로 가능하게 되는 등 직접적으로 이익을 누리는 자라는 점, 이러한 측면에서 원고가 약관을 실질적으로 제안한 사업자이고 숙박사업자는 환불불가 조항을 단순히 선택하는 역할에 머무는 형식적 제안자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이 사건 환불불가 조항이 숙박플랫폼을 통하여 체결되는 모든 숙박계약에서 사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정위에서 약관에 관한 시정명령을 플랫폼 사업자에게 직접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필요하다 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 또한 내용면에 있어서도 환불불가 조항은 예약취소에 따른 손해액을 숙박료 전액으로 간주하고 있어, 고객이 구체적인 사안에서 예약 취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객에게 숙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손해가 발생하지 않거나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 함으로써 손해가 적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위로서는 약관에 대한 추상적 규범통제로서, 위 조항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키는 조항(약관규제법 제8조에 위 반)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할 수 있다.
약관규제법 제17조, 제8조에 의한 불공정약관 조항에 해당하여 공정위의 시정조치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조항이 동법 제2조 제2호의 사업자의 약관에 해당하고, 그 내용이 제8조에 위반하여 불공정하여야 한다.
이 사건 환불불가 조항은 전형적인 양 당사자 간 계약의 구조에서 보면, 원고가 숙박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아니고, 자신의 플랫폼에 환불불가 조항을 게시한 것만으로는 숙박업체를 이용 하려는 고객에게 위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볼 수도 없어, 약관규제법 제2조 제2호에서 말하는 사업자의 약관에 해당 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관규제법에 의한 공정위의 규범통제는 행정적 통제라는 점과 온라인 플랫폼 제공자와 그 서비스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약관규제법상 행정적 통제의 대상이 되는 사업자를 정하는 법리는 민사법상 계약 당사자 확정의 법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고, 거기에 온라인플랫폼에서 사용되는 불공정한 약관 조항을 규제할 필요성과 그 효율성 등을 종합하면, 원고가 약관규제법 제2조 제2호에서 말하는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고는 고객과 온라인플랫폼 이용계약을 체결하는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위 플랫폼을 통하여 숙박 업체와 체결되는 숙박계약의 상대 당사자(고객) 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48) 위 환불불가 조항을 통하여 예약취소의 경우에 숙박업자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위험을 면하는 등 직접적 이익을 누리게 되어 위 약관조항을 고객에게 실질적으로 제안하는 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49) 또한 해당 약관 조항의 내용면에 있어서도, 비록 고객에게 다른 조건의 상품과 비교하여 환불불가 상품을 자유로이 선택함으로써 이익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예약취소에 따른 손해액을 숙박료 전액으로 간주하고 고객의 증명에 의하여도 손해가 적게 발생하였다거나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을 차단하고 있는 점에서 약관규제법 제8조에 위반하는 불공 정한 약관조항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50)
우리 약관규제법은 공정위와 법원에 의한 2원적 규제를 특징으로 하는데, 그 중 추상적 규범통제로 특징지워지는 행정적 규제는 소비자 보호의 관점에서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되 고 있으며, 특히 외국 사업자에 대한 약관규제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51)
이러 한 약관의 행정적 규제에 있어서 민사법리와 구별되는 법리의 필요성과 규제의 효율성이 고려 되어야 할 것이고 특히 양면시장을 전제로 한 온라인 플랫폼의 거래현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것이다. 플랫폼에게 일정한 요건 하에 계약당사자와 함께 책임을 부과하는 국내 외의 입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상판결은 이러 한 필요성과 효율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52)
49) 홍대식(주 47), 413면.
50) 이병준(주 47), 97∼98면.
51) 이선희, “외국 사업자의 약관에 대한 심사 및 집행” 경쟁법연구 제41권, 2020., 229∼230면.
52) 한편, 행정법적인 견지에서도 대상판결의 결론에 찬성하는 논거를 밝힌 글로는 이승민, “디지털 플랫폼의 약관법상 지위와 책임: 부킹닷컴 사건 판결을 중심으로” 경쟁저널 제220호, 2024. 2., 53∼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