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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May 14. 2023

호기심과 간절함

호기심과 간절함, 살면서 꼭 필요한 태도를 꼽으라면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이 생각은 문득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는데, 출근하기 전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을 하기 위해 레그컬(leg curl) 머신에 엎드려 있을 때였다. 유산소, 웨이트 운동을 하는 시간은 운전할 때와 비슷하게 하루 중 스마트폰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몇 안 되는 시간이다. 현실과 ‘멍’ 사이의 경계에 있다 보면, 잠재의식을 부유하던 생각들이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온다.


당시 나는 4월 한 달 동안 이어진 정체기를 겪고 있던 상태였다. 현 직장에서 일한 지 벌써 3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익숙해진 업무와 편해진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좁은 분야에만 갇히는 건 아닌지, 성장의 속도가 더뎌진 건 아닐지 불안감도 느꼈다.


일상의 활력을 찾고 새로운 자극을 받기 위해 내가 주로 시도하는 방법은 책 속에 빠져드는 것, 사람들과의 만남 두 가지다. 하지만 독서를 해도 정체기를 벗어나는데 크게 효과가 없었다. 남은 건 사람. 편안한 일상 관계를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가서 자극을 받아야 했지만, 이런 커뮤니티 활동에는 참가비, 뒤풀이 비용 등 적지 않은 돈이 들 수밖에 없다. 한껏 오른 대출 이자와 공과금으로 고정 비용이 커진 탓에, 긴축 재정을 한다는 이유(혹은 핑계)로 4월 한 달 동안은 친구들, 동료들과의 술자리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정체 상태에 오래 머무르게 했다. 계속 가라앉고 있는 상태를 돌파하기 위해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못내 답답했다. 멋모르고 가진 것 없었던 20대의 나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서 ‘호기심과 간절함’ 이 두 가지 모두 부족해져 가는 삼십 대 초반의 나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1. 호기심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이 세상에 왔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는 법이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과 사물, 현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고자 노력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그리고 세상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호기심은 나와 외부 세계의 접촉을 늘리면서 나의 반경을 지속적으로 넓게 만드는 힘이다.


얼마 전 성수동의 개척자로 불리며 LCDC, Point of view 등의 공간을 기획한 김재원 대표님의 강연을 들었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경험을 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이 흥미로웠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어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진행해 오던 어떤 일을 포기하거나 마무리하는 것은 문을 닫는 것이다.


문 밖에서는 그 방의 구조가 어떤지,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비로소 알게 된다. 그 방 안에서 발견한 어떤 물건에 관심이 생겼다면 해당 물건을 더 잘 알기 위해 또 다른 문을 열 수도 있다. 낯선 국가로 여행을 가는 것,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 회사를 옮기는 것 등 기존의 나의 반경을 벗어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문을 발견하고, 왠지 모를 끌림과 가치관에 따라 그중에 몇 개의 문을 열기도 한다.


‘문을 연다’는 비유가 참 와닿았다. 문을 열고 어떤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공간에 진입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된다. 새로운 경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각종 기회비용을 고려하며 선택을 한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한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인생을 수많은 문을 열고 닫는 과정으로 본다면, 어딘가에 존재하는 문을 발견하고 손잡이를 돌리고 들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2. 간절함


삼십 대가 되어 삶의 기반이 어느 정도 안정되니 호기심도 떨어지지만, 간절함은 더더욱 떨어지는 것 같다. 간절함은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호기심만 있어서는 안 된다. 간절함이 없다면 무엇하나 결코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원하던 대학교에 수능 성적으로 입학, 과탑 하고 한 학기 전액 장학금 수령, 한 마디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영어 실력을 원어민과 막힘없이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성취했던 굵직한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그때마다의 간절함이 있었다. 부족한 능력에 대한 실망, 남들보다 한참 뒤처진다는 조급함, 불안함이 결과적으로는 남들보다 두 발, 세 발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  


인상 깊게 읽은 책 <일의 격>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 스토리에서 가장 갈망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되돌아볼 때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어떤 순간이 가장 빛나고 기억날까? 바로 간절히 원하는데 얻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분투했던 순간일 것이다. (중략) 순간순간 갈망을 가지고, 엑스트라도 조연도 아닌 우리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스토리를 쓰며 살자. - 일의 격(신수정 저) -


즐겨보는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도 한 골을 넣고, 또다시 한 골을 먹으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이기는 팀은 실력이 뛰어난 팀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간절한 팀이었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취한 것이 많아질수록, 삶의 기반이 안정될수록 호기심과 간절함은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자연적인 퇴화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호기심과 간절함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으로 키울 수 있는 비범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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