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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이 되니 내 삶이 단조로워졌다.

2024를 돌아보며

by 재쇤

2024년은 92년생 원숭이 띠 삼재의 마지막 해였다. 마지막 해 아니랄까 봐 참 다사다난했다. 특히 커리어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는데, 직장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결국 생퇴사와 이직으로 이어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365일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느낌이다. 그동안 분기별 회고를 꾸준히 해왔지만 1분기 회고는 4월이 다 끝나갈 무렵에야 겨우 했고, 2분기 이후부터는 아예 회고를 하지 않아서 연말에 몰아서 벼락치기로 정리했다. 중간에 잠시 멈춰 서서 되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슬림하게 압축되고 빠르게 지나간 듯이 느껴진다.


그만큼 여유 없이 당장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는 데 급급했고,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앞을 내다보며 나아갈 힘이 부족했다는 뜻이겠지.




퇴사와 이직

2024년은 전 회사에 다니던 전반부와 현 회사로 이직한 후반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몸담은 직장의 변화는 나에게 큰 시련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줬다. 덕분에 전혀 다른 성향의 회사에서 일하는 경험을 했다. 일하는 맛을 느끼고, 내가 온전히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는 업무 환경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계속되는 마이크로 매니징 압박과 무례한 언행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퇴사를 고민하면서 힘들었을 때 내 곁에서 나를 믿고 지지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고통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국 사랑의 힘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작년 퇴사와 이직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잘 맞지 않는 동료, 상사와 업무 환경은 성장에 독이 된다.

Task driven(행위 중심)이 아니라 Goal driven(목표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스스로 역할의 한계를 한정 짓지 말자.


이전과 달라진 나

아직도 나 자신이 마냥 어린것만 같지만 냉정한 현실을 자각하자면, 한국의 전통적인 나이로 나는 서른 중반에 접어들었다. 삼십 대 중반이 주는 무게감은 확실히 다른 걸까? 스스로도 변화를 많이 경험한 해였다.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이 지각변동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넷플연가 등 한때 열심히 활동했던 소셜 모임에서 느끼던 즐거움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낯선 느낌과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는 배움보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쏟으며 익숙함과 안정감에서 더 편함을 느꼈다.


꾸준히 루틴으로 이어오던 독서와 헬스에서 느끼던 즐거움도 예전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늦잠이나 귀찮음을 핑계로 헬스장을 종종 건너뛰는 나 자신을 보면서도 의아했다. 출근 시간은 예전보다 여유로워졌고, 헬스장도 가까운 곳으로 옮겼는데 말이다.


아무리 지속적으로 해오던 일이더라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결국, 새로운 자극과 배움이 필요한 법이다.


변함없이 일편단심 사랑일 것 같았던 풋살에 대한 열정은 계절의 온도처럼 여름과 겨울 사이를 오르내렸다. 봄과 여름에는 리프팅 연습에 정말 매진했다. 그 당시 회사에서 느꼈던 무료함 때문에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남아 풋살에 더 많은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직을 하면서 이전보다는 풋살에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들고 실력의 정체기를 겪으며 한 번 열정이 바닥을 찍었다. 풋살을 향한 애정은 그래도 다시 올라오는 중이다.


결혼이라는 변화

올해 6월,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5년 넘게 아늑한 자취방에서 나만의 Comfort Zone을 구축하여 살아왔는데,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균형이 깨지고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 중이다. 웨딩홀 선택이라는 중요한 결정부터 사소한 것까지 가치관의 충돌을 겪으며 결혼 준비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며 예비 배우자와 내 사이는 더 말랑말랑하고 한편으로는 더 단단해졌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수록 삶의 패턴은 더 단순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이러한 내적인 변화가 왕성했던 도전 의식을 줄이고, 내 삶을 단조롭게 만드는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이를 통해 비로소 ‘불필요한 걱정과 혼란이 줄어들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이제는 긍정적으로 해석해보고 싶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진심인 러너로도 유명한데, 그가 전업 소설가이자 러너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불과 30대 중반이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그것은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에 나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중에서 -


무언가를 잃을 것도 없었던, 호기심 많던 20대에 비해 덜 도전적이고 덜 간절한 것은 맞지만, 서른 중반은 결코 꺾이는 나이가 아니다. 기존과 다른 결의 일을 시도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을 탄탄하게 다져나가는 새로운 챕터가 열린 것이다.


2025년의 목표와 지향점을 압축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2024년 회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면서 나만의 것을 탄탄하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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