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근길, 성수역 3번 출구 옆 문구점에 “폐업. 1/23까지 운영”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지난 몇 달간 매일 지나다녔던 길이지만 한 번도 들르지 않았던 문구점이었다. 물건을 사본 적도 없고,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이 자리를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왔을 가게가 사라진다고 하니 괜히 마음이 측은해졌다. 이 자리에는 곧 브랜드의 화려한 플래그십 스토어나 팝업스토어가 들어오겠지.
문구점뿐만이 아니다. 2025년 새해가 밝은 뒤 회사 가는 길에 있는 골목에 폐업한 식당이 우후죽순 늘었다. 200m 반경에 폐업한 식당만 벌써 3곳이다. 간단하게 혼밥 하기 좋았던 김밥집, 쌀국숫집 그리고 웨이팅이 항상 많아서 가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마음속으로 저장해 놨던 부대찌개 식당. 조금 더 멀리 떨어진 단골 중국집도 폐업해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새해를 기점으로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린 것이 자명하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역대급이라는 뉴스를 봤는데, 내 주변의 식당이 줄줄이 폐업한 걸 목격하니 피부로 와닿는다.
매일 점심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밥집을 잃는 것에 대한 아쉬움, 장사를 아예 접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을 사장님을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걸 계기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곁을 지키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순간에는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들지만, 순간의 스쳐 지나가는 감정일 때가 대부분이다. 먹고사는 일로 바빠 마음 쓸 여유가 없고, 곧 아무렇지 않게 잊힌다. 빨리빨리 공화국 대한민국의 놀라운 인테리어 속도로 며칠 만에 뚝딱 새로운 비즈니스가 들어서며 그 빈자리를 채운다.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1월에만 벌써 4명의 동료가 떠나갔다. 친분에 따라 아쉬움의 크기는 제각기 달랐다. 슬픔도 잠시, 남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며 그 빈틈은 빠르게 채워졌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사람이 퇴사하면 회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구멍가게가 아닌 이상 회사라는 법인은 시스템으로 뒤받쳐지기에 야속하게도 회사는 여전히 잘만 앞으로 굴러간다.
보통 이렇게 스쳐 지나간 사물과 공간, 사람들은 대게 기억의 저편으로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진하게 기억 속에 남아 그리운 단골 가게가 있다. 신길동 허름한 좁은 골목 어귀에 자리 잡았던 핸드드립 카페 몬타냐가 그렇다.
몬타냐는 버스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집에 가기 위해 항상 지나칠 수밖에 없는 길목에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빈 공간이었던 자리에 어느 날 갑자기 목공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아담한 카페가 생겨났다. 그런데 기껏 인테리어 예쁘게 공사해 놓고는 평일에는 내내 문을 닫고 주말에만 오픈하는 것이었다. '대체 사장님은 무슨 생각인 걸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몬타냐가 오픈한 주말, 혼자서 방문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카페에 손님이 나 혼자 밖에 없는 틈을 타서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사장님은 회사원인데, 한창 코로나 19로 공실률이 높았던 시기, 임대인으로부터 해당 공간을 엄청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회사 동료와 동업하여 주말에만 오픈하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핸드드립 only 카페였는데 다양한 종류의 원두가 구비되어 있었고 여태까지 먹었던 핸드드립 커피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이 공간을 나만 알기는 아까워서 남자친구, 엄마,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데려가고 소개해줬다. 2022년 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사장님께서 10권을 흔쾌히 구매하신 뒤 매장 내에서 '신길3동 동네 작가'라며 소개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주말마다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줬던 몬탸나는 신길동 골목을 1년 조금 넘게 지키고 사라졌다. 사장님께 영업 종료 소식을 들었을 때 어찌나 아쉽던지. 따뜻하고 정감 가던 공간이, 그곳을 채우던 물건과 사람이 사라지니 차갑게 생기를 잃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더라. 얼마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진 않았다.
동네에 카페는 정말 널렸고, 핸드드립을 잘하는 카페도 여러 군데 가봤지만 아직도 문득문득 몬타냐가 그립다. 집 근처에서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싶을 때 그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을 가끔 느낄 때도 있다.
물리적 공간은 사라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몬타냐는 내 기억 속에 언제나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