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가 곧 그 사람이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있는게 아니라서요
書如其人(서여기인). '글씨는 그 사람이다'는 뜻이다. 조금 의역하자면 '글씨는 그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정도.
이 네 글자를 알게된 뒤로는 글씨를 괜히 잘 쓰고 싶었다. 내가 아무리 잘 살았어도 글씨를 못쓰면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달까. 사실 괜한 핑계 하나 잡은거지.
다소 억지같은 마음이었지만, 한 번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을 떨쳐내긴 어려웠고, 이내 악필을 탈출하기 위해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그 뒤로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글씨를 잘 쓰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못 쓰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정해진 규칙과 방향이 없기 때문.
예를 들기 위해, 주변에서 가장 평범한 글씨를 쓸 것 같은 친구에게 다짜고짜 연락해 '인생이란' 네 글자를 써서 사진으로 보내보라 했다.
나무랄데 없는 글씨다.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하지만~ 감히 평을 해보자면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먼저 자음 모음을 쓰는 규칙이 없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도 다르다. '인생이'와 '란' 사이에 떨어져 있는 저 사소한 공백은 글씨를 어설프게 보이도록 만든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자음과 모음을 쓰는 자신만의 규칙을 가질 것, 글씨 획의 방향이 일정할 것. 그리고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백이 일정할 것.
이 세 가지 원칙을 적용하면, 아래 그림처럼 글씨를 쓸 수 있다.
자음 모음이 같은 각도로 있고, 자음과 모음을 쓰는 규칙이 정해져 있어 어디에서나 같은 글씨의 모습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다. 아주 잘 정돈된 글씨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다시 서여기인이라는 사장성어를 떠올려본다. 이게 내 인생이라 생각하면? 예쁘고 세련됐지만... 다소 심심하다.
정해진대로, 남들 가는 방향대로, 삶에 휴식기도 없이 살아가는 답답한 삶처럼 보인다. 정돈되고 세련되었지만 특별할 일 없는. 모든 것이 예측되는 삶. 그게 내 삶일까?
글씨 선생님들은 이렇게 모든 이의 글씨가 특별해진다고 생각할 때 쯤, '삐침'을 알려준다. 어느 한 곳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과감한 하나의 획.
전체적인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이 글씨를 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글씨를 썼는지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단 하나의 규칙 파괴. 그 마음을 넣으면 글씨는 이렇게 바뀐다.
아,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는 삶도 이와 같겠구나.
남들처럼 살아가려는 마음 속에서도 나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한 번의 일탈을 하는 것. 내 삶은 뒤흔들지 않으면서, 남들과는 달라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규칙파괴를 찾는 일.
그제서야, '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라는 사자성어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누군가는 나처럼 방향은 균일하되 한 번의 삐침으로 나를 보여주고 싶을 수 있고, 누군가는 정돈된 모습으로, 누군가는 정돈되지 않고 서툴지만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싶을 수도 있다.
글씨를 아무리 못 써도 고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본인이 보기에 썩 괜찮은거다. 본인이 살아온 삶과, 본인이 쓴 글씨가 남들에게 보여져도 부끄럽지 않은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글씨를 잘 쓰는 법은 이제 간단해졌다. 내가 살아온 삶과 글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내가 살아온 삶과 글씨에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것. 그거 하나면 누구도 당신의 글씨가 이상하다고, 그러니까 당신의 삶이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똑같은 글씨를 쓰는 것보단 나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