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못하는 내겐 어쩌면 '쓸모 있는 소유'가 최선은 아닐까
키보드를 새로 샀습니다.
이게 다 옆 동네 박영감 때문입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제 책상을 찍어 올린게 화근이었습니다. 뉴스레터를 새로 시작하는 양반이 키보드가 그게 뭐냐는 식으로 저를 타박하는 것 아닙니까.
뉴스레터를 새로 시작했으면, 글 쓰는 양반이라면 그에 걸맞는 '기계식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쯤은 사서 써줘야 문장이 더 유려해질 거라고 뭐라 하는 게 아닙니까.
실은 그 타박이 반쯤은 반가웠습니다.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그동안은 키보드를 살 명분이 없었습니다. 내가 개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키보드가 대수인가- 하는 생각을 했죠.
아, 또 그리고 결혼을 하면 이런 물건을 새로 하나 사는 것에 대단한 명분이 필요해집니다. 아내가 저를 못살게 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고로 유부남이라면 충동 구매쯤은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미덕이고 생존의 법ㅊ..
물건을 새로 소유할 때에는 예의상 한 번은 자기부정을 해야합니다. <소유냐 존재냐>를 쓴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했습니다. "'소유'로 자신의 삶을 규정하면 안된다!" 저는 말을 잘 들으니, 철학자가 하라는 대로 한 번 튕겼습니다.
'흠, 기계식 키보드는 예쁘지만 너무 시끄러워요. 아내도 집에 재택근무를 해서 시끄러우면 곤란합니다.'
아, 이쯤되면 유부남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거절을 한 셈입니다. 충동구매를 억제하면서, 아내를 생각해냈으니까요.
그런데 박영감이 '저소음 기계식 키보드'를 들고 옵니다. 요즘은 조용한 키보드도 많다며, 유튜브에서 키보드 소리 리뷰 영상까지 들이밉니다.
어쩌면 저는 이런 대답을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영상 속 소리는 제법 조용하더군요. 키보드는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정말로 이 키보드를 사면 유려한 문장을 쓸 수 있을것 같았어요.
아- 그리하여 저는 키보드를 새로 사고야 말았습니다. 뉴스레터라는 새로운 시작에 물건으로 또 한 번 흔적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오늘 로켓배송으로 그 위대한 흔적은 배송될 것입니다.
이 물건에 명분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려 보냈던가. 조금은 개운한 마음으로, 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시작할 때마다 물건으로 남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라디오 방송을 시작할 때 샀던 마이크,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려 샀던 워크맨들, 사진을 배우겠다며 산 수동 필름 카메라.
물건이 눈길에 스칠 때 마다 그 속에 담긴 컷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100명이 들어온 첫 방송날 마이크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모습, 눈을 감고 유재하의 1집을 카세트로 들으며 우주를 다녀온 날, 아내와 제주도에서 충동적으로 필카를 구매하곤 필름이 제대로 끼워진지도 모른채 신나게 셔터를 눌러댄 멍청했던 우리...
어느 철학가는 소유로 스스로를 규정짓지 말라고 했건만, 그 물건들 속에서 보이는 것은 나와 우리의 모습, 소중한 추억과 손 끝의 감각, 그리고 성장한 내 모습이었습니다.
물건을 새로 사야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하지만 그 덕에 무엇이라도 남길 수 있는 나의 삶도 썩 괜찮은 것 아닐까요. 무소유가 어렵다면, 가장 쓸모 있는 소유를 하는게 나 같은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까요.
네, 그리하여 저는 키보드를 샀습니다. 이 키보드에는 이제 아침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일출을 맞던 저의 모습, 글이 나오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던 모습, 그리고 여러분과 댓글을 나누며 미소짓는 제 모습까지 모두 깃들것입니다.
그 모든 추억을 15만원 언저리에 살 수 있다면, 저는 꽤 괜찮은 값에 추억을 산 것 일 테니까요.
어때 박영감, 내 합리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