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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Feb 26. 2022

이불, 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어차피 다시 잘 건데 이불을 왜 개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

이불 개기의 효율성에 대한 논쟁.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왜 개야 하는가', '어차피 다시 자면 흐트러질텐데, 왜 개야하는가' 에 대한 논쟁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꽤 오랜시간 이어져 온 논쟁입니다.


비록 부먹 vs 찍먹, 민초 vs 반민초, 겹친 깻잎 잡아주기 논쟁 보다는 그 논쟁의 격렬도가 낮은 편이지만, 저는 우리 사회에 '이불을 왜 개야하는지'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살아가는 민주 시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상 이불을 개야 한다는 사람들을 '이불개파', 개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는 사람들을 '이불왜개파'로 지칭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불왜개파'였던 제가 어떻게 '이불개파'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때는 2012년, 느지막히 입대한 군대에서 갓 일병을 단지 얼마되지 않았던 어느 봄 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를 겪으며 강제로 '이불개파'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저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평생을 이불을 개지 않고 살았던 스무살 남짓의 남성에게 없던 습관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도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저 공군 마크가 앞으로 잘 보여야 칭찬을 받습니다


'이불을 왜 개야 할까' 라는 질문에 스스로 물었던 숱한 밤들도 있었습니다. 훈련병 시절, 왜 조교는 나의 이불각을 보고 기합을 주었을까. 이불의 각이 전투력과 무슨 상관일까. 일병이 된 지금은 왜 개야 할까. 단체 생활의 기본 매너인 것일까. 아니면 군인들을 괴롭히기 위한 하나의 장치는 아닐까


처음으로 당직을 서던 어느 날 밤. 점호를 마치기 전, 흐트러졌던 제 이불을 정리하러 잠시 내무반(생활관이라고도 합니다)에 들렀다 돌아온 제게 함께 당직을 서던 간부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마, 고재혀이 니 이불을 왜 개야 하는지 아나'


'안 그러면 김상사님이 벌점 줘서요' 라고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이내 병사로서의 이성을 되찾고 모르겠다는 표정, 그러니까 싱그러운 웃음과 살짝 올라간 눈썹과 함께 '잘 모르겠슴다?'라 물으며 답을 구했습니다. 물론, 그의 대답은 그땐 바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 그거 다 니를 위한기다. 하루 죙-일 고생한 니한테 니가 주는 그런기라고' 


그 말을 깨달은 건 전역을 하고 난 뒤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풍운의 꿈을 안고 친구들과 창업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학부생 창업이 그렇듯, 춥고 배고프고 힘든 날들이 연속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조차 힘들어 이불은 커녕, 방 정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새벽 같이 나가 1교시를 듣고, 학업을 마친 뒤에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새벽까지 일을 하는 병든 닭같은 하루들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새벽에 돌아온 자취방은 춥고, 더럽고, 어두웠습니다. 지갑에 떨어져 가는 돈 때문에, 저녁도 치킨마요로 때운 터라 새벽엔 배고프기까지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눈을 감고 잠에 드는 일, 그리고 배고픔을 참고 다시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자는 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잠을 이렇게 처참하게 보내야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 때 제 눈에 들어온 건 마구 흐트러져 있는 제 침대였습니다. 베개에는 빠져나온 머리카락이 묻어 있고, 이불은 잔뜩 헝크러져 있고, 조금은 냄새도 나는 듯 했습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어야 할 새벽, 그리고 할 수 있는거라곤 잠 밖에 없는 그 처절한 밤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홀대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김상사님이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에 이불을 개고 침대를 정리하는 일은, 하루를 고생하고 돌아온 내게 주는 제일 작은 선물. 아무리 고된 하루를 보내고 왔더라도 받을 수 있는, 아침에 정신 차리고 이불을 정리한 내가 선사할 수 있는 작은 용기.


이불을 개는 일은, 하루를 끝낸 나에게 주는 포근한 포옹이자 새로운 아침을 다시 가지런히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응원이었던 것입니다.


이불을 개는 일은 제게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잡았습니다. 그 날이 고된 날이란 걸 알고 있는 날에는 더더욱 정갈하게 이불을 갰습니다. 어차피 다시 자면 흐트러질 것을 알지만, 이 이불은 흐트러져 있는 나를 대신해 하루 종일 정갈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그것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위로일 수 있음을 알게된 것이죠.


그 뒤로는 많은 일들에 '이불 개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끝마치고 서재를 정리하는 건, 내일 아침 출근할 나를 위해 주는 선물.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건, 오늘 저녁을 차릴 누군가를 위해 남겨두는 선물.

그러니까, 세상 모든 일에 '이불을 개는 일'은 나와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뭔가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의미없이 반복하고 있는 일을 괜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나 그런 일들은 억울하게도 언젠가 타인의 비난을 받게 됩니다.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이불 개기'였다면, 혹은 이불을 개는 일과 비슷한 것들을 잘 안하고 있다면 이제는 저처럼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 일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치고 외롭고 힘 없을 나에게 주는 하나의 위로다. 언젠가 이 깨끗한 상태를 맞이하고 기뻐할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다- 하고 말입니다.

여보 그래서 오늘도 이불 갰고 설거지도 해놨고....


* 글은 뉴스레터 검치단 Playlist & Letter 에서도 함께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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