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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피아노 Oct 10. 2023

음악의 규칙

'즉흥' 연주를 어떻게 배우죠?

대학원 때 난생처음 재즈 수업을 들었다. 피아노를 시작한 지 약 20년 만이었다. 담당 교수님의 다른 강의를 전 학기에 들었었는데 어찌나 지루했던지 교수님 이름을 보고 아무런 기대가 없어졌다. 필수 과목은 아니었어서 잠시 고민하다 막연한 호기심에 일단 첫 수업을 가보기로 했다.


강의실에는 키보드가 여러 대 있었고 피아노 전공인 나는 그곳에 앉혀졌다. 다른 악기 전공생들은 각자의 악기를 들고 왔다. 교수님은 인사말도 없이 다짜고짜 피아노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전학기에 들은 수업이 지루했던 건 잠깐 들어도 하품이 나오는 단조롭고 느린 그의 말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는 손끝에서 나오는 연주는 배신감이 들 정도로 너무 달랐다. 평소엔 말도 잘 안 하고 수줍음 많은 사람이 갑자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샬라샬라하는 걸 본 것 같았다.


그의 화려한 연주는 점점 수그러들었고 어느새 그는 낮은 음역대로 손을 옮겨 작은 소리로 비트만 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그는 맨 앞에 앉은 바이올린 학생에게 자신의 비트에 맞춰 즉흥연주를 요구했고 그 학생은 상기된 얼굴로 바이올린을 더듬거렸다.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같은 비트를 치며 그 옆학생, 또 그 옆 학생에게 즉흥 연주를 시켰다. 내 차례도 곧 오겠구나를 깨닫자 치기도 전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우리에게 연주는 잘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악보를 신성시 여기는 클래식 연주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연주를 향해 매일 훈련한다. 이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매일 직면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상에 완벽히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음에도 또 새로운 곡을 시작할 때면 왠지 이번엔 완벽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수없이 많이 한 자기 검열로 성장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커진다. 


악보도 없고, 연습도 안 했고, 잘 못할게 뻔한,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즉석 연주 요청에 우리 모두는 어버버 했다. 이건 마치 촘촘히 짠 대본을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한 콩트는 거침없이 잘하는 개그맨이 예능에서는 과묵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떤 라디오에서 진행한 백일장에 기가 막힌 시를 써서 뽑힌 누군가에게 전화연결로 DJ가 삼행시를 요구하자 당황하며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재즈는 아무 규칙 없이 그저 느끼는 대로, 실수가 용납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은 음악인가. 내가 짧은 기간 동안 접한 재즈에는 사실 수많은 규칙이 있었고, 그것들을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은 외국어 문법을 배우는 것과 같았다. 우리가 모국어로 말할 때 문법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미 그 문법이 내 무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수많은 언어의 규칙을 어기며 대화한다. 그럼에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인 문법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재즈의 문법에서 멋들어지게 벗어나기 위해선 수많은 규칙들이 내 무의식에 뿌리 박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재즈 피아노 독학책을 구입했다.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작곡가로 알려진 카푸스틴의 곡에 관심이 생겼는데 그의 곡을 잘 치기 위해선 재즈를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몇 명의 학생들이 재즈 스타일의 곡을 치고 싶다 했을 때 선생님인 내가 아는 게 너무 없었던 이유도 한몫했다. 


수많은 재즈 교제 중 고른 이 책은 매일 연습해야 할걸 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첫 번째 과제는 왼손으로 낮은 도와 솔을 길게 누르고 그 위에서 오른손은 흰건반만 사용해 자유롭게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몇 년 전 재즈 첫 수업 때만큼 부끄러웠다.  


소나타를 연주할 거면 전악장을, 소품곡집을 연주할 거면 전곡을, 그러니까 나에게 연주란 어느 정도의 분량과 내가 만족할만한 완성도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내 연주가 꼭 이런 모양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신 피아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많이 해보고 싶다. 어차피 나는 오랜 세월을 거처 검증받은 고전을 읽는 일도, 현시대를 반영한 에세이를 읽는 일도 다른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작은 여정을 언제까지 할지, 도중에 하차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마음이던지 매일매일 피아노 앞에 앉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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