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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피아노 Feb 04. 2024

필요와 욕망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은 필요에 의한 행동이지만 몇 시간 기다리다러도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은 음식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두를 분쇄하고 천천히 물을 붓고 기다리고 또 붓고 기다렸다 내려 마시는 행위는 커피의 맛에 대한 욕망이 큰 사람만 할 수 있다.


욕망을 따르는 행위는 대체로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쓸데없어 보이기도 한다. 


내가 열심히 연습했던 건 콩쿨에서 떨어지기 않기 위해, 실기성적을 잘 받기 위해, 그래서 내가 친구들한테 창피하지 않게, 그래서 부모님과 선생님이 기뻐하게,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그럴듯해 보이는 경력을 위해, 필요했기 때문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 필요가 많이 없어진 지금 이 시점에 왜 내 안의 누군가는 "You need to practice"라고 뻐꾸기시계처럼 한 시간에 한 번씩 말하는가. 그리고 왜 하루종일 재밌게 논 날보다 연습을 많이 한 날 더 큰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가.


그때의 나에게도 욕망이 있었을까. 필요의 껍질을 벗겨도 말로 할 수 없는 마음들을 손끝으로 내뱉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까. 벗겨지고 또 벗겨져 비로소 알맹이만 남은 지금의 나는 이 욕망이 너무 뜨거워 손을 살짝 대기도 무서워졌다. 남들에게 '즐겁게' 해야 한다고 설파하면서도,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는 열등감이 넘치는 자리라 마냥 즐겁기는 쉽지 않다.     


피아노를 잘 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굳이' 시간과 돈을 쓰는 그들을 많이 만난 까닭일까? 아니면 '필요'가 너무 거대해서 욕망의 알맹이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걸까? 욕망의 출처는 별로 중요치 않다. 아마 이 욕망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겠지만 비로소 내가 두려워하고 애정하게 된 그 욕망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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