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길과 물가에서 맞이한 새해의 시작
경덕진(景德镇)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산바오(三宝)에 들렀다. 샤오홍슈에서 보고 찾은 길 끝자락 식당은 여러 요리와 재료를 눈으로 보고 고르면, 조리된 음식을 자리로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마침 따종띠엔핑 이벤트가 한창이라 젓가락 선물도 받았다.
우리를 응대한 서버분은 유난히 친절했다. 한국인은 우리뿐이라 몇 번이고 “진짜 한국 사람이냐”라고 되물으며 신기한 눈빛을 보냈다. 낯설지만 반가운 기색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산바오는 보통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구경을 하는데 우리는 식사 후 천천히 걸어 내려오기로 했다. 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소박하게 꾸며진 포토 스폿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벽돌담에 기대 선 자리, 항아리 위에 놓인 작은 조형물, 계단 옆 나무 벤치. 유명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발을 멈추고 사진을 남겼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때로는 옆에 있던 다른 관광객과 카메라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생긴 사진들이 이 여행의 기념이 되었다.
산바오에는 이색적인 포토 스폿이 있는데 커다란 청화 자기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소리를 외치는 모양새로 사진을 찍는 ‘화풀이 항아리(受气瓶, shòu qì píng)’라 불리는 포토존이었다. 스트레스를 항아리 속으로 날려 보낸다는 설정에 다들 웃으며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고 평소 줄 서는 걸 싫어하는 우리지만 이날만큼은 장난스럽게 한 장 남기기 위해 줄을 섰다. 바로 근처 포토존에서도 다른 중국분들 사진을 찍어드리고 우리 추억도 남길 수 있었다.
그렇게 산바오의 길을 내려와, 경덕진 북역에서 우전(乌镇) 수향 마을로 가기 위해 퉁샹(桐乡)까지 고속철을 탔다. 2시간을 달리는 기차는 일등석 좌석이 넉넉했고, 다과도 제공되어 편하게 이동하였다.
퉁샹역에 도착한 뒤, 디디를 타고 40분쯤 이동해 우리는 새해 두 번째 목적지 우전 수향 마을 입구에 닿았다.
수향 마을 내 숙소를 예약해서 안내 센터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맡기면, 숙소까지 배송해 주는 시스템이었고, 체크인 후 셔틀버스를 타고 성문 곳까지 데려다 주니 숙소 주인분이 마중 나와 계셨다. 절차대로 진행된 일이겠지만, 누군가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다는 게 예상보다 따뜻하게 다가왔다.
우전의 숙소는 고택을 개조한 홈스테이 형태였다. 예약할 때 위치나 이름을 고를 수는 없고, 시스템이 배정해 주는 방식이다. 웰컴 간식으로 두부를 주시고 내일 아침식사 선택을 한 뒤 방으로 가기 전 관광 지도를 펼쳐 번역기를 통해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방은 작고 단출했지만, 창 너머 예쁜 수향 마을 풍경이
보이는 2층 방이었고 귀여운 손글씨 웰컴 카드가 우리를 반겼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난 뒤, 마을 안쪽 강가로 나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전통 나룻배에 오르는 것이었다. 여섯 명이 함께 타는 작은 배는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랐고, 진행 방향 기준 맨 앞자리나 맨 뒷자리에 앉는 것이 가장 좋다. 배 중앙에 앉으면 창이 작아 밖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 자리에서는 다행히 반대편 수로 쪽이 잘 보였고, 천천히 흘러가는 마을의 모습은 그 자체로 풍경이었다.
저녁으로는 숙소 근처에서 주인분이 추천해 주신 양고기 국숫집에 들렀다. 양고기 국수와 아내는 양고기 냄새가 날까 봐 버섯 야채 국수를 하나씩 시켜 나눠 먹었다. 양고기 국수는 향이 과하지 않게 맛있었고 버섯 국수도 맛있게 잘 먹었다.
우전은 걷기 좋고, 사진을 남기기에도 예쁜 도시였다. 조명이 켜진 골목과 물길은 밤이 되면 더 선명해졌다.
다만 얼마 전 다녀온 리장(丽江)의 고성 풍경이 오래 남아서인지, 그만큼 큰 감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요하게 흐르는 수로와 정갈한 골목은, 걷는 이의 속도를 천천히 바꿔주는 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