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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un 23. 2020

우리의 여름

더울 땐 하찮은 글을 써요



1.

가장 좋아하는 국내 뮤지션 검정치마, 검정치마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Everything, Everything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라는 구절니다.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해야 여름이라는 계절에 빗댈 수 있을까. '넌 나의 여름'이라는 말보다 뜨겁고 끈적한 고백이 또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봄 같은 사랑, 가을같은 사랑보다는 훨씬 지독하지 않을까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울컥가슴이 웅장해지고 막 그니다. 내가 고백의 당사자 아닌데요.



2.

신기하게도, 계절의 시작을 정말로 실감하는 순간은 주로  밤에 찾아오는 것 같지 않나요? 가로등 아래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나무를 발견거나, 방금 완성한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에 불을 밝히거나, 어두워진 저녁하늘을 바라보며 성큼 짧아진 해를 실감거나  때 말이에요.


그 모든 순간이 귀하지만, 여름구로 교체한 날  무척 합니다.


두툼한 잿빛 가을겨울용 이불은 잘 빨아서 옷장 깊숙히 넣어두고, 희고 푸릇한 야자수 무늬의 홑이불을 꺼요. 이 한 장의 이불이 가진 위력은 마법과도 같아서 같은 방, 같은 침대를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리죠. 사각사각 발에 닿는 촉감, 1년을 기다린 그 서늘하고도 상쾌한 기분은 내게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선언과도 같아요. 아직 열대야가 시작되지 않아 서늘한 초여름밤의 공기가 방충망을 넘어오면, 야자수 무늬 둘러싸인 나는 새로운 계절도 잘 보내보자며 음냐음냐 단빠집니다. 이 여름 첫 단.


습고 쨍한 여름 전체를 사랑할 순 없어도, 름이불의 첫 촉감큼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 거에요.





3.

사실 여름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신호는 따로 , 별로 유쾌하지 않아서 그렇지. 건 바로 젯밤까진 매끈했던 피부에 어느새 슬그머니 솟아있는 진분홍색 반점. 말하자면 이런 느낌니다.

'남편이 사흘 연속 모기에 물렸다. 여름이었다.'


남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모기 자주 물리는 사람데요. 몸에 열이 많고, 검은 옷을 즐겨 입고, O형이고(놀랍게도 과학적으로 증명된 모기의 최애 혈액형)- 쩜 저렇게 모기가 좋아할만한 면모를 실히 갖추었는지 모. 함께 지내는 는 모기를 거의 물리지 않는 반사이익을 얻곤 하는데, 옆에서 지켜본 바 일생동안 혼자만 피를 뜯기는 운명은 좀 많이 가혹한 것 같니다.


어느 저녁 핑크색 북두칠성이 수놓인 남편의 팔을 보고 있자니 문득 성질이 차오르더라고요. 우리집에 기거하는 저 작고 요망한 악마들을 가만두지 않겠어, 하며 분연히 도착한 집 앞 마트에는 각종 모기퇴치용품이 가득했고, 는 직원분과의 심도깊은 논의 후 가장 강력하다는 매트형 모기향과 훈증기를 구매했습니다. 직원은 3년은 족히 쓸 것 같은 스프레이형 살충제를 사은품으로 쥐어주었고요. 그것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오는 내 모습이 모기와 천년의 원수를 진 모습이라 혼자 웃었습니다. 


모기향을 피운지 보름, 남편은 여전히 종종 몸에 업데이트된 분홍반점을 발견곤 하지 다행히 그 횟수는 줄어 것 같습니다. 들기 전에 하늘색 매트 리필을 까고 훈증기 전원을 켜는 건 보통 의 몫입니다. 오늘밤도 작은 악마들로부터 그를 지켜주소서. 챙겨주는 건 나밖에 없지 않냐며 편에게 생색을 내는 것도 빼놓지 않. 제 눈에 띄는 모기를 날렵하게 잡는 능력까지 갖는데 그건 아직 많이 렵네. 직접 잡으려다 몇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몸에 열 많은 O형의 아내로서 갈 길이 어요.



매트매트 홈매트


4.

우리 부부의 최애 예능 <놀면 뭐하니>, 요즘 여름을 겨냥해 출격한 대형 혼성그룹 '싹쓰리'의 활약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빨리 음원이 나왔으면 좋겠고, 김태호 PD님 고맙고, 사랑해요 린다G(저 지릴 준비 끝났어요 언니).


5.  

위에 남편의 체온 얘기를 해서 말인데, 인간은 36.5도라는데 왜 어떤 사람은 뜨겁고 어떤 사람은 차가운 것일까요. 한겨울에도 열기를 뿜어내는 남편과 한여름에도 몸이 서늘한 저는, 한 이불을 덮고 잘 때마다 서로의 온도차를 신기합니다. 많은 커플 혹은 부부가 비슷한 현상을 겪는다고 들었어요.


이게 참 겨울에는 좋은데(수족냉증으로 꽁꽁 언 발을 남편 종아리에 대고 녹이는 기분이란), 여름에는 제가 확실히 불리하더라고요. 온 몸을 밀착하고 "어으 시원행" 탄성을 내지르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내가 부인인지 죽부인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뭐,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한 철 바싹 즐기거라 하는 마음으로 체념하고 있답니다. 한 계절씩 사이좋게 양보하며  인간 코다츠와 인간 얼음골이 되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서요.





6.

여름휴가 계획, 모두들 세우셨나요. 올해 우리는 동해안 7번국도를 따라 로드트립을 고민중입니다. 루는 자연 속 텐트에서, 하루는 단단한 지붕 아래에서 번갈아 들면 어떨까 싶어요. 마스크를 벗고 실컷 숨을 내쉴수 있는 공간들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아직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부부에게도, 당신에게도 그런 여름이기를 바라요.




D+977, 2020. 6. 23. 12:5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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