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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Dec 29. 2020

여보가 죽으면 어떡하지



어느 밤, 가족끼리 안방에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프로그램 제목이 '긴급구조 119'였던가. 꼬꼬마인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그 프로의 애청자였다. 그 날의 에피소드는 가스폭발 사고로 온 가족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 그리고 한창 몰입해서 시청하던 나는, 별안간 '우리 가족도 저렇게 죽으면 어떡하냐'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통곡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나를 어르고 달래다 못해 "아, 그런 일 안 생긴다!" 외치던 아빠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과 답답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백의 공포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이 나의 전부에 가까울 정도로 소중했다는 것.


요즘 나는 그 어두운 방에서 엉엉 울던 꼬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종종 느낀다. 최근에 부쩍 당신에게 "여보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때건 당신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찰 때- 신이 친 개그가 대단히 웃기다던가, 독 당신이 엽거나 멋있어 보인다던가, 신의 요리를 먹다던가- 가장 그 마음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 툭 하고 튀어나는 것이다. 거운 대지를 식히는 스프링클러처럼 서늘한 말.  말을 할 때면, 가슴속에 일렁이던 애정은 불안으로 잠깐  빛을 바꾼다.


이럴 때..?


사실 죽음에 대해 나보다 더 먼저 언급한 건 당신이었다. 당신은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너무 힘들 것 같으니, 반드시 보다 먼저 가겠노라'고 다짐(?)하곤 했다. 이건 우리가 둘이서 술 한잔 할 때단골 대화 소재이기도 하다. "우린 같이, 적어도 비슷한 시기에 죽어야지!" 억지를 부리는 나, 대단히 초연하고 의젓한 표정으로 '그러면 좋겠지만... 혹시 내가 먼저 가더라도 너만은 건강히 오래 살' 말하는 당신.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아마 이마를 짚 우리를 비웃을 것 같다.


아직 신체 건강한 젊은 부부가 왜 이런 재수없는 생각을 할까. 나도 모른다. 어린 내가 그 날 티비를 보면서 왜 울었는지 아무도 모르듯이. 그저 내가 깨달은 것은, 누군가를 일정 이상 사랑하게 되면 이유 없이 겁에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이 모든 두려움과 , 의 중요도가 한없이 높아져버렸기 때문인  같다. 나는 아무래도 신이 사라진 이후의 나를 영위할 엄두가 지 않는다. 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이자 보호자이자 간병인이자 애인이자 가족인 당신. 그래서 언제부턴가, 당신이 내 인생에서 어느 날 뿅 하고 사라지게 될 (지극히) 낮은 확률에도 겁을 먹게 었다. 


(여담 1: 그런 맥락에서 남편이 '우리 사이에 아이가 한 명 있는 것도 좋겠다'고 말할 때 뜨끔함을 느끼기도 했다. 대해진 상대방의 중요도를 낮추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방만큼-혹은 그 이상- 중요한 존재를 만드는  뿐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나 역시 한 적 있기 때문이다.)


(여담 2: '남편을 사랑해서 죽음이 두렵다' 비슷한 말을 배우 한고은 씨와 가수 이효리 씨가 했던 걸로 안다. 멋진 그녀들과 나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고나 할까.)




사랑이란  힘과 용기처럼 아름다운 것만 주는 줄 알았, 사람을 한없이 나약하고 유아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  짓궂은 속성 때문에, 당신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믿기 싫 나는 어린애에 겁보가 되었다. 왜  인생은 유한하고 삶에는 변수가 있으며 젊음은 짧 것까. 서로로 인해 웃는 이 시간들을 액자에 사진을 끼우듯 붙잡아 간직하고 싶은데, 시간은 잘도 흘러 2020 밖에 남지 않구나.


내 상상과 달리 쉬이 사라지지 않을 당신을, 새해에도 변함없이 애정해야지. 리가 함께라서 행복한 대가라면 불안조차 너그러이 감싸 아야지. 러나 당신으로 인해 지극히 행복한 어느 순간, 나는 문득 당신의 죽음을 걱정할 것이다.


그렇게 염려와 안심을 반복하다가 호호백발 노부부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D+1166, 2020.12. 29. 12:07AM



당신의 생일, 달빛 아래에서 춤을 췄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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