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 길어 '에에올'로 불리는 영화.아직도 '에브리씽'이 먼저인지 '에브리웨어'가 먼저인지 헷갈리는 영화.주변에서 하도 극찬하길래 보러 갔다. 그들의 공통된 증언은 '또라이같지만 멋져!' 그리고 '이게 뭐야 싶은데 어느새 울고 있었다'는 것. 극장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적 있는 나로선 극장 방문이 조금 꺼려졌으나,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고 말았다. 뭐랄까, 민트초코 치킨이나 마라맛 우유를 굳이 먹어보고 싶은 마음?
그런데 웬걸. 괴식인 줄 알았던 이 영화는 알고 보니 대단히 훌륭한 풀코스 정찬이었다. 물론 고수팍팍 똠양꿍처럼 누군가는 대단히 싫어할 맛이긴 하다. 포털사이트의 한줄평을 보아도 극찬들 사이사이에 '보다가 중간에 나갔다' '알바 많이 풀어놨네' '다 예술병 걸렸냐' 같은 분노의 악평들이 숨겨져 있더라. 그 마음도 이해는 된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같은 스토리'라는 댓글에는 솔직히 공감돼서 웃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 치를 떤 관객들이여, 오해는 마셨으면. 알바나 예술병 환자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에 깊이 감동받은 사람들의 마음 역시 진심일 테니까. 나도 그랬고, 같이 본 사람도 그랬다. (덧붙이자면.. 있어보이려고 좋아하는척 하기엔 다소 길티한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기형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오리지널리티의 승리라는 것.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감독 돌았나요? 낄낄거리거나 이마를 짚다 보면 140분의 극악한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나는 깊이 존경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영화는 레퍼런스가 없다(일부러 의도한 듯한 왕가위 오마쥬 장면들은 있다). 비록 나의 취향에 정확히 들어맞진 않을지라도 원앤온리, 이 독창성에는 기꺼이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이 영화는 선이라는 것도 없다. '설마 이 선만은 넘지 않겠지' 싶은 순간까지 고무줄놀이하듯 폴짝 뛰어넘어버린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에든 갈 수 있음을 화면으로 증명하는 것 같달까. 그렇게 하고 싶은 거 다 때려박고 제멋대로 만든 것 같은데, 묘하게 이해되고 이입되고 마음이 움직인다. 정돈된 방식으로 차근차근 관객을 설득시키는 것보다 이게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 감독(들), 난놈이여 난놈.
그래서 나는, 이 골때리고도 숭고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게 맞아?'하면서도 어떻게든 달려나갔을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지는 것이다. 촬영팀과 시각효과팀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시나리오를 보고도 '예 뭐일단 만들어보세요' 했을 투자자와... '그러니까 손가락이 핫도그 모양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죠?' 했을 분장팀과... '세상의 모든 혼돈을 의상이랑 메이크업으로 표현하라는 거죠?' 했을 의상실장님과... '네? 미간에 인형 눈깔을 붙이고 쿵후액션을 하라고요?' 했을 배우들과... 이 수백 수천개의 말도 안되는 디테일을 실현해낸, 이 영화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 정도의 리스펙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세상에 없던 무언갈 만든다는 건.
광활한 다중우주로 끝없이 뻗어나가던 스토리가 어느 순간 '가족의 사랑'이란 한 점으로 갈무리될 때, 불만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결국 뻔한 가족애, 신파로 마무리하냐'는 것. 근데 그게 어때서?
결국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거창하고 범우주적인 함의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소하기 짝이 없는 순간들이지 않나. 나도 그랬다. 추운 겨울 귀가하는 손녀딸을 위해 매일밤 할머니가 켜두셨던 전기장판의 빨간 불빛이나, 동생이 슈퍼에서 산 빵에 생크림을 발라 만들어 준 생일케익이나, 잠버릇이 험한 나를 위해 이불을 발끝까지 덮어주는 남편의 인기척 같은 것들이 나를 살게 했다. 우주의 먼지일지언정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가 있다. 복잡하고 쿵짝거리지만, 영화는 결국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과연 어떤 장면에서 눈물이 날지 궁금했는데, 한바탕 소동으로 바닥에 흩뿌려진 잔해를 빗자루로 쓸어담던 웨이먼드의 콧노래 덕분이었다. 아, 현실의 지리멸렬함을 견디려는 수많은 몸짓이 모여서 인생을 만든다.)
영화가 주는 흥분과 여운에 젖어 맥주를 마시러 갔다가, 맥주 몇 모금에취해버려서정작 영화 얘기는 많이 하지 못했다. 인생이 그런 거지. 선택과 균열, 크고 작은 변주와 반전.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경로를 탔을, 또 다른 우주에 살고 있을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너희들도 잘 살고 있지? 난 잘 지낸다. 미친듯이 화이팅하자. 각자의 방식으로성의껏 살아내 보자. 종국에는 우리 모두 행복해져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