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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May 30. 2019

나의 첫 회사 졸업기

퇴사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아름답게



1.


2013년 12월, 입사를 했다.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얼굴에 정장 차림으로 나선 첫 출근길 아침, 세상은 지독하게 춥고 어두컴컴했다. 거대한 회사 건물과 회색빛 대리석이 차갑게 빛나던 로비, 친절한 듯 냉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몹시 쫄았고 자주 숨죽였다. 퇴근전철의 덜컹거림을 따라 힘없이 흔들리던 중 찔끔,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나오던 눈물. 앞으로 어떻게 매일매일 오늘처럼 일찍 일어나, 이렇게 삭막하고 무서운 곳에서, 한 명의 직장인으로 제 몫을 하며 보낼 수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을 가득 퍼서 밥을 담듯 가슴속에 꾹꾹 눌러담았던 25살 겨울, 어느 월요일.



2.


2019년 5월, 퇴사를 했다. 몇 개월 동안 반복돼 온, 그래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우습고도 부조리한 풍경 앞에서, 어느 순간 신기할 만큼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경험을 했다. 그건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명료함'이었다. 더이상 하루치 불행을 팔아 돈을 벌지 않겠다는, 회사가 따박따박 챙겨주는 월급과 연차와 직함보다 중요한 것이 삶엔 있다는.


퇴사를 결심한 날 저녁, 함께 식사를 차리면서 "이제 난 돈 못 벌 테니까 이런 건 내가 할게" 하던 나의 너스레를, 남편은 "네가 드디어 쉴 준비가 되었구나" 라며 인자한(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미소로 받아주었다. 퇴사를 통보하기 전날, 부서에서 나를 '베스트 직원' 후보로 추천했다는 말을 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뭐랄까,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부모가 가장 행복한 순간 서울의대를 자퇴하며 그 행복을 깨부 영재가 된 기분이었다. 퇴사를 통보한 날, 그간 부하직원의 맘고생을 지켜봐 왔으면서 어떠한 유감의 표현도 없이 고작 '며칠 더 일해달라'는 말 뿐이던 상사들의 비인간적이고도 초라한 제안을, 나는 온화한 미소로 거절했다. 피고용인이 갑을의 위치를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퇴사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컨펌 오네가이시마스.



퇴사일까지의 시간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간의 분노와 을 정제된 단어들로 눌러 담은 사직서는, 약간의 기우와 달리 무난히 수리되었다. 나는 '혁신'이란 이름으로 어김없이 진행되는 새 푸닥거리에서 해방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요리조리 피해가회의를 반복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사람들을 묶었다가 쪼갰다가 하는, 참으로 지긋지긋했던, 마치 연말마다 멀쩡한 도로를 갈아엎는 공사현장처럼 우스꽝스러웠던 풍경들. 차근차근 내 자리의 짐을 정리하고, 서류들을 파쇄하고, 파일을 정리하고, 깨알같이 작성한 인수인계서를 프린트해 깨끗해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몇 주동안 고심했던 사진으로 배경화면을 지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요부위의 인수인계서가 포인트


1년 새 많이들 떠나가서 몇 명 되진 않지만, 아직 이곳엔 소중한 선배와 동료, 파트너들, 단골집 사장님들이 남아있었다. 그들과 점심 혹은 저녁, 커피를 함께하며 인사를 드렸다. 순간마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고, 뭉클한 마음들을 받았다. 부서 사람들에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적힌 쿠키를 돌리자, 누군가는 면목없다는 듯 "이런 건 우리가 줘야지 왜 준비했어요"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쿠키를 오독오독 씹으며 "슬프게도 너무 맛있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 퇴사 인사를 단체쪽지로 돌리고서는, 퇴사결심 이래 처음으로 펑펑 울기도 했다. 화장실 제일 안쪽 칸에서 눈물을 멈추려고 고생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화장실 타일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것도 처음이었다.



존경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맘속 최고의 리더 랭킹1위에 빛나실 옛 팀장님의 메시지



퇴사일 아침, 상견례와 결혼발표 때 입었던 원피스를 입고 출근을 했다. 자주 가던 회사 1층 카페에서 "이곳의 연유라떼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 까지 말씀드린 후 눈물을 쏟자(주책이다), 직원분들이 우르르 몰려와 "아이고 아쉽네요, 자주 오셨는데,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사무실의 누군가는 사비로 마련한 선물을 안겨주고, 누군가는 '덕분에 그동안 회사생활을 견뎌왔던 것 같다' 몰랐던 마음을 고, 누군가는 두 손을 맞잡으며 잘 살라고 했다. 상사였던 누군가가 건네는 "잘 될 거예요"란 말에 나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내 퇴사 결심에 큰 도움을 준 누군가는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 후 내가 가리키는 길 쪽으로 사라졌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입니다"란 대사와 영 어울리지 않게 화사한 나의 인사를 받으며, 옆 부서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듯 주춤주춤 일어나곤 했다.


한쪽 팔에 도넛방석과 등받이 쿠션을 끼고 퇴청하는 순간, 로비까지 따라와 준 직원들과 마지막 셀카를 찍고 헤어졌다. 회사 건물을 한동안 올려다보았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았던 이 거대한 건물이, 이제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찰나의 두려움이 오후 4시의 햇살처럼 쏟아졌다가 금세 사라졌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쏟아지던 햇빛



3.


13일차 백수인 오늘, 이 글의 서두를 훨씬 길게 써 내려가다가 문득 다 날려버렸다. 내가 한때 그 직장을 얼마나 사랑는지, 그 조직이 어떻게 변질됐는지, 그곳의 로운 수장과 리더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탐욕스러우며 조직원들을 실망시켰는지,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그 조직을 나갔는지, 그 자리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부정한 방식으로 채웠는지, 나는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됐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쓰려다가 그만뒀다. 그 모든 것들이 며칠 만에 전생의 일처럼 아득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뭐랄까, 다 끝난 연애를 떠올리는 기분이다. 연애 말기의 전쟁 같던 감정은 사라지고, 미련도 후회도 없이  때 행복했던 기억만 남은 상태. 과거에는 열정을 다 불태웠던, 덕분에 많이 배웠고  성숙해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그런 연애.


+ 그런 의미에서 Ariana Grande의 노래 'Thank U, Next' 가 딱 내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의 옛 남친들에게서 사랑을, 인내를, 고통을 배웠고 지금은 그들에게 존X 감사한다는 용의 노래( 'X나'라고 번역해야 ).



4. 


요즘나는 침대에 원하는 만큼 누워있다가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잠이 많아 지독하게 힘들었던 출근시간을 떠올리면 황송한 일이다. 채소와 건강한 재료로 아침식사를 차려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피해 혼자 조미료 가득한 점심식사를 입안에 때려넣었던 게 불과 2주 전이. 건소에서 측정해보니 벌써 내 몸에서 지방만 1.4kg가 빠나갔다. 하루에 한 번씩 귀가 울리게 쿵쾅거리던 내 심장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왜 이렇게 얼굴이 좋아졌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웃으며 '퇴사 에스테틱'이라 답한다.


비가 온 다음날 맑게 갠 아침이면 집 앞 하천을 따라 걷고, 출퇴근길에는 절대 보지 못했던 세상의 초록빛을 본다. 평일 낮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은 새로 생긴 취미다. 내가 사무실 같은 자리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있는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밝은 세상에 나와있었다. 나는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18시 이후의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업무 도움이 될 학원 강의를 등록하고, 살방살방 걸어서 운동을 간다. 종일 활자에 시달려 침침해진 눈으로 휴대폰 액정이나 들여다보던 늦은 밤의 나는, 지금은 잠들 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인다. 카페에서 무심코 유행하는 시집을 집어들어 몇 장 다가 눈물이 핑 도는  모습이 스로웃겨서 피식 웃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만큼 집안의 풍경을 단정하게 유지하는 데 전보다 많은 노력을 들인다.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심지어 성공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사실 크게 힘들진 않다. 예전에는 왜 렇게 힘들었을까, 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을까 의아할 뿐. 


전엔 관심없거나 심드렁했던 것들이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온다. 흑백화면이 총천연색 컬러화면으로 전환된 것 생생해진 감각으로 일상을 산다. 동료에게 농담 삼아 '전 회사에서 절전모드예요' 라 말하던 퇴사 전의 내가 떠오른다. 쩌면 내 삶의 에너지는 하루 동안 분노하고 체념하는 데에 각보다 꽤 많 방전되고 있는지 모른다.  에너지, 이제는 하루하루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내는 데 할애하고 있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 사소한 일들에 기울이고 있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하면 내게 유익할지 시시각각 고민한다. 자유와 주체성으로 충만한 상태, 악한 감정이 감히 끼어들지 못하는 이 낯선 평화로움을 나는 사랑한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5.


그래서 너의 일상이 한없이 좋냐고 묻는다면, 불안과 안달이 한 스푼씩 함유되어 있다고 하겠다. 하루를 소득 없이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들면 속상해지고, 늦잠을 자거나 낮잠을 길게 잔 날엔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그런 날이 잦아서 문제ㅎ). 룸메이트(=남편)가 입버릇처럼 무심코 내뱉는 "피곤해", "회사 가기 싫어" 같은 말들을 예전처럼 흘려듣지 못하고 괜히 미안해 쭈뼛거리기도 한다. 무균실과 같은 지금의 평온함에 익숙해져서, 훗날 다시 치열한 일터로 돌아갔을 때 적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문득 그런 걱정 들 때도 있다. 초보 백수에게는 아직 내공이 필요한 일들이다. 어쩌면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 내 인생 통틀어 흔치 않을 지금의 완전한 휴식기를 만족럽게 보내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아쉬우리라는 걸.


+ 의외로 돈 걱정이나 구직 대한 걱정은 많이 하지 않는다. 소비가 대폭 줄기도 했고 뭐 솔직히 회사 다니면서 모인 돈도 꽤 되고(^^), 직장은 언제든 어떻게든 구해지겠지 라는 생각이다. 이것도 뭐 아직 백수 기간이 오래되지 않아 그런 걸지도 모르겠만.




6.


기본적으로 나는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다. 백수기간이 길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증폭된 불안감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새로운 일터를 찾아 부딪히고 깨지고, 기뻤다가 분노했다가 허무하기를 반복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살 것다(살고 싶다). 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 수행하, 돈과 스트레스를 맞바꾸는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의 평화로운 시간들을 적립하고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시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오늘의 사소한 행복들이, 요즘처럼 내 몸과 마음을 소중히 대접하는 시간들이 든든한 열량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생각해보면, 이제 막 첫 회사를 졸업했을 뿐이다.



- 2019. 5. 30. 2:1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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