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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ho Mar 12. 2022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

한국 진출기 6탄

 2021년 1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표님도 본사를 서포트해달라고 부탁하셨고, 개인적으로도 잠시 홍콩을 떠나 한국으로 가야 했다. 그렇다고 홍콩 비즈니스를 포기하는 건 아니다. 원격으로 여전히 홍콩 정부의 인큐베이션 프로그램들을 잘 소화하고 있으며, 홍콩 파트너들은 현지에서 비즈니스 디벨롭을 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맡게 된 직책은 사업총괄 이사다. 주로 20명이 넘는 R&D팀을 이끌며 혁신 제품들을 만들어 내야 하며, 팀원들에게 일일이 동기부여도 제공해야 한다. 할 일이 참 많은데, 대표님은 오랜만에 한국에 온 내게 영업 서포트까지 하나 맡기셨다. 오늘의 주제이기도 한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스마트 관광도시 조성사업"이었다. 남원은 중소도시로 사실 강소형 부문에 참가해야 하는데 대찬 용기로 대도시들만 참여하는 관광명소형 부문에 지원을 했다. 내가 인볼브가 된 시점은 최종 후보 4 도시(남원, 대전, 경주, 성남)가 추려진 다음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수많은 도시들을 제치고 남원이 경주와 함께 최종 선정됐다. 비록 예전처럼 내가 주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본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요소는 다음 2가지다. 1) 스토리텔링 2) 유치전


1. 스토리텔링

남원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MZ세대들은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다. 조금 나이 있는 분들은 춘향이 광한루 정도를 알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전지현이 나와서 말아드신 지리산 정도. 그리고 여전히 남원시에 가보면 춘향이로 도배되어 있다. 콘텐츠가 춘향이 밖에 없다 보니 지속적인 사업들도 춘향이 중심으로 돌아갔나 보다. 그리고 이번 관광명소화 프로젝트에도 분명히 일반인이었으면 춘향이 컨셉으로 갔을 것 같다. 아니 최소한 주인공은 아니어도 여러 개 중의 하나의 콘텐츠로 춘향이가 들어갔겠지.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리딩 한 구소장(풀네임은 프라이버시로 생략)은 철저하게 춘향이를 뺐다. 춘향이란 글자 한마디도 안 들어갔다. 뻔한 춘향이를 내세울 경우 남원이 다른 도시에 비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확신이 있으셨다. 대신 한국인만이 가진 "흥"과 "얼"을 메인 컨셉으로 잡았다. 남원의 인프라는 춘향이 덕분에 예전 조선시대의 우리 모습들을 많이 갖춰져 있었지만 콘텐츠가 없었다. 그 콘텐츠에 흥과 얼이란 컨셉을 넣어 살아있는 도시로 만들고자 하셨다. 

광한루 지역을 최소 이틀을 돌아다니며 즐기고 놀 수 있는 마을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또한 간단한 홍보 동영상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흥얼 컨셉이 들어갔다. 외국에는 흥얼거린다는 말이 없다. 한국인들만 일을 할 때도 놀 때도 혼자 흥얼거림을 한다고 말하면서, 영상 콘티 마지막에 남원 시장이 안경을 머리에 걸치고 "안~경~이 어디~~ 갔나~"라고 흥얼거리면서 끝맺음을 하자. 확실히 남원의 의지를 시장님의 출연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이번 프로젝트의 컨셉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아이디어였다.

20초 홍보영상

그리고 그 스토리텔링을 제안서에 잘 녹여야 했다. 아시다시피 국책 사업이 한글파일로 제안서를 작성해야해서 99프로 전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예전에 만들어놨던 제안서를 그대로 갖다가 붙이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그래서 내가 국책 사업들을 안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제안서는 정말 달랐다. 구소장은 본인의 스토리를 비쥬얼화 시키기 위해 전문 웹툰 작가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파악이 되고 흥미로운 웹툰 이미지를 만들어 스토리텔링의 마침표를 찍었다.

글은 읽을 필요도 없었다. 수 많은 웹툰 이미지들이 우리의 제안서를 다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제안서의 스토리텔링은 완성이 됐다. 나도 우리 직원들에게 스토리텔링에 대해 엄청 강조해왔지만, 이 정도의 스토리텔링은 정말 초고수의 레벨이 아닌가 싶다. 


2. 유치전

동계올림픽 때 김연아가 나와서 피티를 하고 심사위원들이 평창에 방문했을 때 온 동네 주민과 문화관광부 임직원, 국회의원, 운동선수들까지 나서서 태극기를 들며 그들을 환영해주는 것을 볼 때 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도시 간의 경쟁도 그랬다. 구소장은 이건 유치전이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다 해봐야 한다고. 100명 정도의 알바생을 동원해서 전부 한복 입히고 돌아다니며 심사위원들 환영해줘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한번 혼신의 힘을 다해 팀워크를 다져서 해보기로 했다. 구소장은 위의 스토리텔링과 발표에 힘썼고, 남원시와 우리는 현장 실사를 위해 LED 이동식 자동차(대통령 선거 때 자주 사용하던), 무선 이어 마이크, 배너, 알바생, 이벤트 콘텐츠 유치 등 정말 많은 것들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심지어 동선에서 머무는 시간까지 체크하며 철저하게 실수를 줄이려고 했다.

대형 LED 트럭이 심사위원들이 동선을 따라다니며, 현재 있는 장소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이렇게 바뀔 거라고 말만 하는것이 아니라 대형 화면을 통해 CG영상으로 보여줬다.

트럭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은 배너를 세워 그곳이 발표 때 보여줬던 그곳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또한 남원의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기 위해 영상에 출연해주셨던 시장님께서 현장실사 때 심사위원들을 기다리며 인사를 하며 다시 한번 남원시의 의지를 보여주셨다.

카메라 맨들과 함께 현장실사 심사위원들을 기다리는 남원 시장님

제안 중에 흥얼 버스킹과 조선시대 직업 체험 및 학습체험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직접 심사위원들 눈에 보여주기 위해 인원을 동원했다. 서당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풍악놀이를 하는 모습. 광한루에서 여인네들이 걸어가는 모습.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판소리 등등 많은 것들을 실제로 현장실사를 위해 준비했다.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한옥 카페 앞에서 펼쳐진 풍악놀이

이 모든 것이 기본 바탕인 스토리텔링 위에 현장실사 준비팀의 준비작업들과 남원시의 의지가 더해져 완벽한 현장 실사가 될 수 있었다. 현장 실사를 마치고 우린 그 누구도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다면서 정말 최선을 다한 프로젝트였다고 자축했다. 누군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게 이런 거구나.." 그렇다. 정말 그랬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한 게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과를 기다렸고 결국 아래 기사처럼 최종 선정되는 큰 기쁨을 누렸다.

https://news.v.daum.net/v/20220308152833245

한국으로 복귀해서 처음으로 맡게 된 프로젝트에서 우리 회사가 기록한 단일 프로젝트 중에서는 가장 큰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맡고 있는 R&D팀에게도 기획 중인 모듈화 작업을 새로운 콘텐츠의 모듈화를 프로젝트를 통해 할 수 있게 돼서 일석이조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공공사업을 안 좋아한다. 국가의 눈먼 돈을 빼가는 일이라고도 생각이 들고, 공공사업의 목적만 따라가다 보면 회사 자체의 비전과 방향성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다가 공공사업 헌터가 되는 회사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먹고살기 위해 그렇게 됐다고는 하지만, 정말 가치 없는 활동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모든 일들이. 시작과 끝까지 전부 배울 것이 있었고, 일 자체도 공공사업의 제안을 위한 제안이 아니고 실제 남원시의 가치 있는 콘텐츠들을 현실 가능한 방향으로 구성했고 무엇보다 우리의 사업 방향과도 일치하는 매우 훌륭한 프로젝트였다고 자부한다. 

 남원시 프로젝트에 처음 참여해서 남원시에 내려갔을 때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같이 갔었다. 그때 우리 가족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남원시 정말 볼 게 없네."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제부터 바꿔야 하며, 바꿀 것이고 1년 후에 우리 가족들을 데려올 때 이런 말을 들어보고 싶다.

남원에 정말 볼게 많아졌네. 하루 더 있다 갈까?
매거진의 이전글 처절했던 6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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