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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ho May 20. 2023

ANTLER Time

창업 이야기 3화

창업 이야기 2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

앤틀러 Phase 1을 마무리했습니다. 2023년 3월 6일 77명의 앤틀러 2기 동료들과 시작하여 21개 팀이 결성됐고 어제를 마지막으로 모든 과정을 마쳤습니다. 다음 주에 최종 투자유치팀이 발표가 되겠지만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이 기간에 대해 글을 적고자 합니다. 이 두 달 반의 시간은 앤틀러 안에서도 밖에서도 똑같이 흘렀지만, 단언컨대 앤틀러 안에서의 시간은 특별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했지만 언제든 그 집단에서 주도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10프로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99% 열정 많은 예비 창업가들만 모였기에 에너지가 넘쳐흘러 주어담기도 벅찼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시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지만, 서있는 장소에 따라 그 시간의 가치는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특별한 시간을 전부 담을 순 없지만, 조금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거 문제 아니고 현상이야

앤틀러에 들어오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바로 아이디어 스프린트와 부트캠프입니다. 아이디어 스프린트는 반나절만에 문제정의를 위주로 하고 간단한 솔루션과 BM을 한 페이지에 담아야 하며, 부트캠프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고 실제 IR피치처럼 발표자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는 것은 문제정의의 중요도입니다. 문제정의가 안되면 그 다음으로 설명해야 하는 솔루션,BM,마켓 등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냥 문제 같은 것들 여러 개 나열해 놓고 팀들 돌아다니며 조언 주시는 민지님(앤틀러 코치)에게 보여주며 이거 문제 맞나요 여쭤보니 "음 문제 맞네요" <- 이 말 한마디가 어찌나 기쁘던지. 

첫 아이디어 스프린트 팀 발표. 우리 닥터고팀 1등~ :)

위 사진처럼 첫 아이디어 스프린트의 모든 팀 발표를 마친 후 갑자기 단상 앞으로 사은님(앤틀러 파트너)이 답답했는지 나오셔서 한 팀의 문제 정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면서 "여러분. 이건 문제 아니에요. 그냥 현상일 뿐이에요. 문제와 현상을 구분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이 앤틀러 2기 최대 유행어처럼 되었다. 팀들마다 문제정의 하면 여기저기서 그거 문제 아니야 현상이야!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문제 정의가 더욱 날카롭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부터 아는 것이 먼저다

초기에 앤틀러 동기분들과 수많은 커피챗을 하게 된다. 서로에 대해 알아야 본인과 핏이 맞는 공동창업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첫 커피챗이 바로 재우님이었는데 본인의 철학은 세상을 잘 이해하는 것인데 그것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에는 멋진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적이지 않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내가 지금 작성하고 있는 브런치 제목이 "세계 정복을 꿈꾸며"인데 글로벌로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면 풀지 않겠다고만 생각했지 데카르트처럼 나를 이해하는 철학가가 되고 싶진 않았었다. 그렇게 난 이전 회사에서 딱 한번 경험했던 웹툰을 단순히 글로벌에서 인기가 많고 데모데이 때 임팩트를 낼 수 있겠다는 판단만으로 시작을 하게 됐다. 하지만 수박 겉핡기 정도만 아는 웹툰 지식만으로는 이쪽 분야의 문제를 풀기에는 내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아이템으로 도전을 하려고 했을 때 하경님(트랙아웃 파트너)이 준호님이란 사람을 파헤치다 보면 그 내면의 욕구와 부합되는 문제가 나오지 않을까요라고 해서 재우님이 초기에 말했던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화이트보드에 쓰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창업 욕구에 대해 정리한 화이트보드 (봐도 잘 모를 거예요. ㅎ)

이 과정을 통해 지금의 Cliwant라는 RFP 분석툴이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단순히 한 번의 과정이 아니라 여러 과정들을 거쳤지만 초기에 나를 이해하는데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모델이다. 난 그제야 재우님이 말씀하신 세상을 알기 위해 나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해서 나중에 따로 재우님께 찾아가서 말씀드렸다. 화장실 앞에서 대화를 나눈것 같은데 ㅎ "재우님, 나 이제야 재우님이 말씀하신 나부터 알아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어요. 정말 고마워요."


할 수 있어. 포기하지마

우리 팀의 IC 투자심의 발표일이 5월 16일(화) 오후 1시로 잡혔다. 우리 팀 Cliwant는 내외부에서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내부 파트너님들에게 다른 팀들은 쓴소리도 많이 듣는다고 했는데 우리 팀은 오히려 잘하고 있다란 피드백을 많이 받았고, 외부 어드바이저 미팅 때도 최근에 본 팀들 중에 가장 매력 있다고 해주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큰 걱정 없이 투자심의를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발표일 4일 전 사건이 터졌다.


5월 11일(목)

6:40pm - 함께 준비하던 예비 공동창업자분이 개인사정상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7:00pm - 사은님이 투자심의에 솔로파운더는 오를 수 없으니 주말까지 공동창업자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7:30pm - 12:30pm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와 일을 하면서 잘 맞았던 친구, 지인들 4명에게 전화와 집 앞까지 찾아가며 함께 창업하자고 했다. 고액 연봉을 받는 그 친구들에게 최저연봉과 바로 다음날까지 결정을 해줘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전부 거절 통보를 받았다. 


이 5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에서 이동중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구했다. 그리고 혼자 눈뜨고 있을 때는 혼잣말로 "조준호 포기하지마. 아직 안 끝났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거절을 당할 때마다 마음은 무너져 내렸지만 계속 중얼거렸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정말 간절하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들이 있다. '할 수 있다'

5월 12일(금)

오전에 재희님(앤틀러 파트너)이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옥상정원에서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되가냐는 질문에 "어제 다 까였어요 ㅎ. 앤틀러 설명만 30분 넘게 해야 하고 하루빨리 결정해달라는게 외부인들에게는 정말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내일은 내부에서 찾아보려고요. 우선 재우님 승도님 두 분이 나와 핏이 맞겠다 생각이 들어서 두 분 설득해 보고.. 안되면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포기는 안 할 거예요." 재희님이 많이 격려해 줘서 다시 힘을 얻고 두 분을 만났다. 오후에 차례로 만났고 두 분 다 바로 결정은 못 내려주셨다. 대신 오늘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하셔서 또 기다렸다.


5월 12일(토)

00:30am - 자정이 넘었다. 재우님이 장문의 톡을 보내셨다. 너무나 정성스럽게 내 상황 다 이해하고 본인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본인이 초창기 커피챗때 말한 대로 아직 본인에 대해서 아는 것과 창업의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이 되어서 함께 하기 어렵겠다고 하셨다. 충분히 이해가 됐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마음은 또 쿵 내려앉았다. 이제 한 사람 그리고 하루 남았다. 멍 때리고 있었는데 바로 또 승도님이 연락을 주셨다. 아직 결정은 못 내렸지만 긍정적이긴 하다. 다만 준호님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좀 더 나눠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하셨다. 희망이 생겼다.

5:00pm - 공덕 사무실에서 승도님을 만났다.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눴고, 함께 하기로 해주셨다. 두 달간 열심히 했는데 최종 발표자리에도 못 서보고 떨어지기 24시간 전에 다시 살아났다. ㅎ.. 바로 사은님께 연락드려서 코파운더 찾았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나의 숨 막혔던 코파운더 찾기 3일 프로젝트를 마쳤다.


아빠 발표해 봐

5월 15일(월) 발표 하루 전날, 최근에 받은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몸이 무너졌다. 담날이 발표날인데 정신 차려야 하는데 자꾸 발표 연습을 하는데 머리가 하얘지면서 말이 계속 꼬였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승도님에게 저 지금 정말 일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라 먼저 집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정신을 먼저 차려야겠어요 라고 양해를 구하고 일찍 들어갔다.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우리 딸(초5)이 엄마한테 아빠 중요한 발표 있다고 들었는지 대뜸 내 앞에 와서 "아빠! 발표해 봐. 내가 들어줄게" ㅎ 어이없었는데 그래해줄게. 노트북을 티비 스크린에 연결해서 소파에 누워있는 나의 방청객 우리 딸을 위해 피치를 했다. 근데 막상 하려고 하니 RFP 분석툴에 관한 솔루션인데 RFP를 일반인도 이해시키기 어려운데 아이를 이해시킨다고? 그래도 초롱초롱 눈망울을 뜨며 지켜보고 있는 우리 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RFP란 단어를 숙제로만 바꿔서 한장한장 설명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정말 말이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나왔고 쓸데없는 부사어구와 어려운 용어들이 쏙 빠지니 말을 하는 나도 머릿속이 정리가 됐다. 발표를 마치고 우리 딸이 내게 피드백을 줬다. "아빠, 발표란 건 재미없으면 안돼. 중간에 웃기도 하고 사람들 재밌게 해 줘. 그리고 발표 장표에 애니메이션도 좀 넣어바. 심심하네." ㅋㅋㅋ 정말 내 역대 최고의 피드백을 받았다. 이 얘기를 다음날 만나는 사람마다 했다. 진심 아이앞에서 발표하는게 너무 큰 도움이 됐고 다음에 발표 연습할 때 아이 앞에서 한다고 생각하고 해보시라고. 정말 발표가 간결하게 바뀔 거라고. 앤틀러 3기 프로그램에 제안하나 하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들 하루 모집해서 애들 앞에서 창업가분들 발표 연습 해보라고 하면 좋겠다. 다시 한번 내 발표에 가장 큰 힘이 돼준 우리 딸 한이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 뿌시고올께

난 공공연히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투자심의 발표 때 발표장 뿌셔버리고 오고 싶다고. 진심으로 장표 한장 한장 마다 포인트를 주고 싶었고, 듣는 파트너분들 외부 심사역분들에게 조금은 놀라움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닌 이유는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싶어서. 내 전 공동창업자 분에게도 현 승도님에게도 말을 했다. 심지어 공동창업자가 잠깐 없을 때도 재희 파트너님에게 전 IC 발표 뿌셔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포기 못해요. 라고 말씀 드렸다. 그 말이 기억이 나셨는지 발표 당일날 아침에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준호님 오늘 뿌셔버려야죠! 라고 응원을 해주셨다. 그리고 발표장에 들어갔는데 정말 긴장은 안 됐다.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후회 없이 준비해 왔기에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IC 발표 현장

발표 자체는 막힘없이 정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쏟아냈다. 파트너분들 외부 심사역분들 눈을 마주쳐 가면서 그들의 반응도 보면서 나름 여유롭게 한 것 같다. 물론 Q&A 시간에 사은님이 도와주려고 했던 질문을 못 받아먹어서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후회 없이 했다고 생각한다. 뿌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분들 여기서 원래 표정 변화 잘 없으시고 무게 잡으셔서 ㅎ. 설령 좋은 평가를 못 받았다 하더라도 나는 뿌실려는 마음 자세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 밥톨만큼의 후회도 안 남는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정말 수고했다.


앤틀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앤틀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오늘 네이버를 찾아보니 내 나이가 한국나이로 44세더라. 와.. 미쳤다. 앤틀러에서 주로 30대 초중반 친구들하고 지내면서 난 정말 내 나이를 잊고 지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내 위로 4명 정도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전부 중간에 안타깝게 그만두셔서 마지막날 보니 내가 최고령이더라. 살짝 쑥스럽지만 또 내 예전 글에도 난 60대에도 창업을 하는 창업딴따라로 살고 싶다고 적었었는데 계속 내가 뱉은 말을 지켜 나가는 것 같아서 살짝 뿌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래 사진들에 보이는 이제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나의 동료들 그리고 진심으로 우리가 잘되길 바래주시는 앤틀러 파트너님들 및 스텝분들.. 이 분들이 없었다면 나의 시간은 계속 앞으로만 갔을 것 같다.  

앤틀러의 시간을 거꾸로 가게 만들었던 주인공들

다음 주 결과가 나오면 누군가는 웃고 또 누군가는 실망하겠지만, 내가 겪어본 우리들은 분명 다시 일어설 거고 또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최소한 저는 이 두 달 반의 시간을 당신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약속 시간 늦으면 Korean Time.
특별한 시간을 원하면 Antle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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