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이야기 11화
한 달 미국 출장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미국 거점의 한국인 창업가들, 기관들 그리고 잠재 고객들을 만났다. 행사도 AI Summit 같은 테크 행사도 가서 부스도 하고 발표도 진행했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무언가 빠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인을 많이 만난 것은 초기 미국 소프트 랜딩을 위해서 크게 거부감은 없었다. 무언가 빠진 건 아마도 피부색의 차이가 아닌, "나는 정말로 미국 사회와 나의 타겟 고객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제 11월 14일(금)의 Pasaneda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진행된 "Build to Thrive Summit" 행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Wells Fargo라는 미국의 대형은행에서 후원한 이 행사는 Small Business의 성장을 위한 방안에 대한 주제로 진행이 되었다. Small Business는 우리 Cliwant가 미국에서 만들고 있는 정부조달 서비스의 핵심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 조달에서 Small Business에 의무적으로 23%를 할당해야 되기 때문이다.
행사의 시작은 Judy Chu 연방 하원의원과 Well Fargo의 Senior VP인 Gregg Sherkin의 기조발언으로 시작이 되었다. 미국 최초의 중국계 여성 연방 하원의원인 Judy의 시작 멘트는 지난 1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 규모를 나열했다. 9,500개 구조물 파괴, 20,000명 이상의 이재민 발생, 9명 사망, 임금 손실 3억 달러, SBA 30억 달러 규모의 대출 승인.. 하지만 기존 COVID 대출 때문에 새 대출을 못 받는 구조. 주디는 이 데이터를 보고, "아, 이 지역 경제는 말 그대로 붕괴 수준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시에서 본인이 한 일에 대해 힘주며 설명했다.
SBA에 “Hardship Accommodation Plan” 도입 요구
재난지역 모기지 구제 법안 제출
연방 차원의 340억 달러 재난 패키지 요청
MBDA 예산 삭감에 대한 반대
SBA 직원 2,700명 정리해고 방지 노력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 강화를 위한 법안 공동발의
지역 SBDC(스몰비즈니스 개발센터) 2곳 설립
여성 비즈니스 센터 설립 예산 확보 [이거 말하니 주변 여성들 전부 환호 지르심 ㅎ]
그리고 이어진 Well Fargo의 Gregg Sherkin은 올해 1월 발생한 산불 직후 200만 달러의 긴급 지원을 제공했고,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3백만 달러의 기금을 추가로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건 단순 기부가 아닌 투자라고 분명히 밝혔다.
"Long-term commitment"
"Help businesses recover, rebuild and thrive"
"Keep them open. Bring them back stronger than ever."
스몰비즈가 망하면 지역이 무너지고, 지역이 무너지면 은행도 망한다. 우리 은행이 LA의 스몰비즈를 지켜주겠다. 뭔가 살짝 미국식 뽕이 들어간 멘트였지만 시작부터 환호성이 남달랐다.
기존연설을 마치고 첫 번째 세션이 시작됐다. 이 세션은 "불확실한 시대에 스몰비즈니스가 살아남고 번창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번 연설에서도 특히 느낀 것 중에 하나지만, 시작점에서부터 시와 금융이 원팀이 되어서 함께 경제를 살리자고 했고, 본 패털 토크에서도 결국 "커뮤니티 협업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주변 네트워크, 지역 리소스, 파트너들 간의 "관계(Relationship)"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중요하다고 강조를 했다.
Moderator: Greg M. Behrman (CEO, NationSwell)
Speakers:
- Dr. Lucy Jones (재난학자 / Resilience(회복탄력성) 전문가)
Dr. Jones 박사라고 소개했는데 뭔가 인디아나 존스의 닥터 존스가 떠올랐다. 내가 좀 옛날 사람이긴 한가 보다. 어쨌든 닥터존스 박사님은 재난이나 위기가 운이 안 좋아서 생기는 이벤트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건 일을 하면서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환경의 일부라고 인지해야 한다고 하셨다. 즉, 우리는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한다"가 아니라, "위기 가능성을 전제하고 모델을 설계한다"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하신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위기 가능성을 전제로 모델을 설계한다.. 아 아프지만 팩트다.
- Maria Kim (사회적 기업가 / 경제 형평성 리더)
마리아는 닥터 존스의 말을 뒤이어서 "우리가 회복탄력성을 구축하려 한다기보다, 이미 회복력 있는 존재 그 자체로서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업 운영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로서 자기 자신을 개발하고 전략/시스템/프로토콜을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함.
- Diana Gonzalez (실제 스몰비즈니스 창업가 / 재난 극복 사례자)
이분은 실제 창업가로 이런 재난들에 의해 매출 급감등이 발생했는데 이 당시 본인이 한 행동은 단순히 손실즐 줄이기 위해 급급하는 것보다,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신속하게 실행했다는 점이 성장의 비결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일을 숨기지 말고 팀원들과 소통을 투명하게 하고, 외부 위기에 대응하는 내부 문화가 회복탄력성의 핵심이라고 설명해 주심.
다음 세션은 Capital Strategies for Growth - Finding the Right Capital at the Right Time 이란 세션을 들었는데 여기도 스피커 3분이 나오셨는데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Suma Wealth의 대표를 맡고 있는 Beatriz Acevedo였다. 투자도 이미 VC를 통해 100억원 정도 받으셨음. 이분은 AI 기반 금융,교육,크레딧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을 운영 중인데 그중 Grant를 AI로 고객을 퍼서널라이즈드 해서 찾아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Government Contracting Teaming AI와 그녀가 하고 있는 Grant Matching AI가 상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사실상 같은 뿌리를 가진 "Government + Funding + AI" 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패널토크를 듣고 바로 소그룹 라운드 테이블 그리고 1:1 대화까지 조금 나눠봐서 그 인사이트를 조금 정리해보자고 한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자본은, 안 갚아도 되는 자본이다.
"Non-dilutive capital, 즉 안 갚아도 되는 돈. 그게 바로 Grant다.
담보 필요 없음
상환 의무 없음
지분 희석 없음
대신 "왜 당신이어야 하는지"를 설득해야 함
그리고 그녀는 이 과정을 AI로 자동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션이 끝나고 라운드 테이블때 그녀 테이블로 가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AI 기반 Grant 매칭은 어떤 워크플로우로 돌아가는지 물어봐도 되나?라고 하자 그녀는 "앞단은 쉽다. 에이전트가 질문만 하면 된다. 근데 뒤에서는 많은 워크플로우가 돌아가고 있다." 백앤드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연방·주·지역·비영리 그랜트 조건 수집
업종, 규모, 목적, 대상 요건을 모두 태깅
Regulatory Language(규정 언어)를 AI가 읽고 구조화
사용자의 조건과 매칭
빠진 조건이 있으면 “어디를 보완해야 하는지”를 알려줌
내용을 들어보니 우리 Cliwant의 미국 서비스인 Proact가 하고 있는 정부 입찰 서비스와 구조가 매우 비슷했다. 정부조달과 그랜트는 '돈을 받는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조건과 규정이 있고, 적격성, 평가 기준이 있다. 매칭이 필요하고 문서가 중요하며 뛰어난 분석 능력과 데이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녀가 개발한 AI 에이전트는 Grant Writer가 아니라 Grant Navigator다
1) 사용자의 정보 입력을 필요로 한다
- 업종, 규모, 필요 자본, 사업 위치, 대표자 배경(여성, 이민자, 베테랑, 소수민족 등 미국의 많은 그랜트가 특정 커뮤니티 지원 목적이라서 중요함)
2) AI가 조건 필터링 및 매칭 알림
- 사용자가 들어갈 수 있는 그랜트를 알려주고, 규정과 요건을 필터링해주고 이메일로 알려줌. (국내 Cliwant 서비스와 유사)
3) 위 두 가지를 만든 뒤 지금은 Grant Proposal 초안 작성을 AI로 돕기 위해 개발 중에 있다.
=> Beatriz가 강조한건 AI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퍼스널라이즈된 사용자의 정보값을 받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만큼 어렵다.
마지막으로 Beatriz는 본인 서비스의 목적은 "AI를 잘 사용할 줄 모르는 스몰비즈니스가 AI를 하나의 '도구'로 편하게 쓰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소그룹 라운드를 마쳤다.
오전 세션이 끝나고 내게 이 이벤트를 소개해준 비영리 스몰비즈니스 커뮤니티 개발 기관인 PACE의 Kevin 님과 만나 식사를 했다. 우선 Kevin님께 너무 감사하다. 이런 좋은 이벤트를 소개해줘서 내가 미국의 스몰비즈니스와 커뮤니티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출장의 큰 배움이 있었다. 또한 PACE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ProcureLA는 로스앤젤레스 시를 중심으로 한 조달 교육·컨설팅 플랫폼으로, 중소기업이 계약기회, 정부·지방공공기관 조달절차, 입찰 준비 등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줘서 함께 파트너십을 논하기에도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PACE의 Procurement 담당자인 Cristina를 소개받아 우리 제품을 간단히 구두로 설명해 줬더니, 너무 필요한 서비스라면서 미팅을 하자고 먼저 제안해 줬다. 럭키! 그리고 또 밥을 먹는데 앞자리에 John Doe(조금 민감한 정보라 익명으로)이라는 매우 큰 지역의 Chamber of Commerce 소속의 사람과 또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 조달 시스템은 깨끗해 보이지만, 내부는 사람의 개입이 존재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John Doe은 이전 직장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해 줬는데, 그가 속한 부서가 카운티 입찰에 지원했는데, 기존 인컴번트(현재 수행기업)가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막판에 뒤집히며 실주를 했다고 한다. "분명 우리가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이었는데 경쟁자의 백오피스에서 우리가 모르는 전략으로 수주를 해갔다." 그 결과 Award를 했음에도 취소가 됐고 RFP가 재발행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관계에 의한 영향력이 아직까지 너무 크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Federal과 County 중 Small business라면 어디를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Federal은 절차가 복잡하지만 룰이 명확하다. County는 룰은 단순하지만 '사람의 권력'에 크게 좌우된다.
뭔가 당연히 작은 커뮤니티인 County로 하라고 할줄 알았는데, Federal이 복잡한 절차만 해결하면 룰이 명확해서 스몰비즈니스가 충분히 시작을 해볼만한 시장이라는 의미였다.
GAO, OIG(감사기관) 존재
절차 기반
룰을 어기면 바로 조사 들어감
대신 한 번 진입하면 신뢰 기반으로 오래 감
절차는 훨씬 빠르고 인간적
하지만 정치적 인사 또는 디렉터의 결정력이 강함
“선거가 끝나면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이 부분이 굉장히 현실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John Doe님은 또한 예전에 Compliance Officer라고 했다. 그래서 내부의 애매한 이슈들을 보고 "이걸 GAO나 Inspector General에 신고할 수도 있었다"라고도 했지만 그가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였다.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완벽하게 만들려고 시기를 놓치면 사업 못합니다.
즉, 조달은 룰과 정치, 두 가지를 동시에 읽는 게임입니다.
마지막으로 LA County는 각 부처마다 제각각이던 조달 서비스 프로세스를 ISD(Internal Services Department) 중심으로 "중앙집권화" 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지금이 바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과도기라는 것이다. 이 과도기에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진입할 기회가 크고
AI 기반 자동화 서비스가 필요해지고
기존 업체들의 저항도 심하며
시스템 자체가 유동적이다.
클라이원트에게는 정확히 이 지점이 큰 기회일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렇게 매우 유의미한 점심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지만.. 미국에서는 점심시간이 네트워킹을 하기 너무 좋은 시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벤트 이후 어찌나 배고프던지.. 일본타운에 가서 라멘, 초밥, 스시 등 무차별적으로 쑤셔넣었습니다...쿨럭)
셰프 안토니오의 세션은 사업을 떠나서 창업가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배운 시간이었다. 안토니오는 일반적인 셰프가 아니다. LA에서 여러 유명한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다수의 TV 출연, 푸드 컴페티션, 브랜드 협업 등 다각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펜데믹, 산불, LA 경제 등의 위기 속에서도 생존을 넘어 성장을 했고 지금은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구호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그녀가 정의한 Resilience (회복탄력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Resilience란, 바다 한가운데 던져졌을 때 배도 없고, 수영조차 못해도 무조건 헤엄쳐서 육지까지 가야만 한다는 그 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80번 연속 성공하다가도 갑자기 매출이 곤두박질쳤고, 새 매장을 열어도 화재나 정치 리스크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을 닫아야 했고, 펜데믹 때는 당연히 모든 레스토랑이 강제로 폐쇄가 됐고.. 인력 이탈, 원자재 상승, 소비 심리 급락 등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게 기업가라고 했다. 그러니 Resilience는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포기할 수 없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문제를 맞딱뜨린 뒤 고민하는 데에만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서 행동했다.
리더라면 먼저 주방으로 들어가서 DoorDash(미국의 배민같은..) 주문 포장까지 직접 해야 한다. 리더십이란건 결국 현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건 단순한 예에 불과하지만, 더 큰 위기 속에서 내가 행동하고 이겨냈던 방법들 중에 COVID때의 예시를 든다면,
레스토랑을 ‘TV 스튜디오’로 전환
200 가구에 4코스 요리를 배달하고 라이브 쿠킹
배달 박스에 시각화 콘텐츠와 고객 경험을 담아냄
그 경험이 새로운 새로운 B2C(Business to Consumer)·D2C(Direct to Consumer) 비즈니스 라인으로 성장
수익 구조 다변화 성공
나는 이런 위기들이 평소에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새로운 제품/서비스 라인을 만들어낸 기회가 되었다. 또한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해도 안된다. 내부의 도움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이 내부의 도움은 솔직함+투명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님들이 줄어서 매출도 줄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리스크가 있는 난 팀에게 있는 그대로 공유했다. 이 말을 듣고 나갈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물론 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빨리 나가주는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솔직함의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을 없애면 팀은 불안 대신 '각성'을 한다. 리더가 두려움을 숨기면 직원은 방향을 잃는다.
마지막으로 안토니오는 오늘 온 많은 사업가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내일 당장 사라질 수도 있다. 그걸 받아들여야 오늘 제대로 싸워볼 수 있다. 그리고 조금 성장했다고 정체되면 안된다. 정체는 그 즉시 죽음이다. 끊임없이 우리 같이 도전하자. 나는 그게 기업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