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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월 Oct 20. 2022

[드라마 리뷰] 우리는 사랑이 병이야

<작은아씨들> ⭐️⭐️⭐️⭐️

✔️세상을 바꾸는 연대의 힘


중학생 때, 물질의 상태 변화에 대한 실험을 했다. 시시한 실험이었다. 알코올램프 위에 물을 담은 비커를 올리고 물이 끓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열에너지가 물에 가해지고 있는 중이다. 변화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도 물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회가 변하는 과정도 이와 같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만 같은 그 지루한 시간들을 믿고 견뎌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히 쌓이면, 변화는 한 순간에 찾아온다.


뻔한 훈화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삶이 버거워 질 때마다 선생님의 그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해 힘들 때도, 원하는 직장의 입사 시험에서 번번히 떨어질 때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세상의 부조리들을 목격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보자 또 다시 그 때 생각이 났다.

드라마 <작은아씨들> 리뷰

<작은아씨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작은아씨들>의 세 자매는 붙어있다가는 다 죽지 싶게, 인생의 목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무나 다르다. 첫째 인주의 목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 그리고 가난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협하는 적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인경은 정의를 추구한다. 가난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믿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막내 인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고자한다.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이 돈이라면, 그 돈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주의 손에 난데없이 700억 원이 쥐어졌을 때,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 인주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려 하고, 인경은 진실을 추적하기 위한 단초로 활용하려 한다. 인혜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로 쓴다. 함께했을 때 에너지가 발생하기는커녕, 다투다가 고갈되어버릴 것만 같은 관계다.


드라마 <작은아씨들> 리뷰
드라마 <작은아씨들> 리뷰
드라마 <작은아씨들> 리뷰

도저히 뭉치지 못할 것만 같던 세 자매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연대하기 시작한다. 인주의 직장 동료인 화영이 죽는다. 인경의 실질적 양육자였던 고모할머니가 죽는다. 인혜의 친구, 효린이는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죽게 만든 건 박재상과 원상아, 정란회다. 정란회는 우리 사회의 폭력을 대변한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 견고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 시스템 그 자체이지만,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 그것이 21세기 폭력의 성질이다. 공격하기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지만, 세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정란회를 공격한다. 그리고 그 공격들이 모여 정란회는 무너진다. 알코올램프의 불이 물을 수증기로 만들었듯, 세 자매의 뜨거운 연대가 에너지가 되어 폭력적인 시스템을 허문다.

드라마 <작은아씨들> 리뷰

드라마 마지막 화에서 원상아는 오인주에게 말한다. “쟤는 희망이 병이야.” 희망은 인주를 위험에 빠트리지만, 결국은 살게 한다. 원상아가 말했던 ‘희망’이란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이자 변화의 순간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일 것이다. 그 힘은 타인과의 연대에서 발생하고, 연대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희망이 병이라는 말은 결국 사랑이 병이라는 뜻 아닐까. 우리 모두는 한 번쯤 그 병을 겪어 보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사랑을 진탕 앓다보면 변화는 한 순간에 찾아올 것이다.    




<작은아씨들>은 내로라하는 작가와 연출가의 만남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단연 기대할만한 작품이었는데도, <작은아씨들>이라는 클래식한 제목 때문에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 초반에는 ‘어쩌면 이 작품은 클래식한 것이 아니라 올드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뻔 했다. 반복적으로 전시되는 가난에 대한 묘사가 그 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작은아씨들>을 완주했다. 드라마 곳곳에 산재한 ‘한국 드라마’ 적인 설정들 가운데에서 예측할 수 없게 튀어나오는 솔직함 덕분이었다. 막내의 수학 여행비를 들고 아빠를 보러 집을 나간 엄마, 6살 여자애나 입을법한 레이스 스커트를 입고 ‘남들이 싫어할 것 아는데, 그냥 내가 입고싶어서 입는 것’이라며 해맑게 웃는 첫째, 하고 싶은 말을 떳떳하게 하기 위해 곳곳에 술을 숨겨놓고 마셔대는 둘째까지. 본인의 욕망에 지독하게 솔직한 면면들이다.

약점은 숨기면 추해지지만, 솔직하게 드러내면 오히려 강해보인다. 나는 이런 강한 여자들의 민낯이 담긴 드라마를 너무나 보고싶었나 보다.    


(K-장녀로서) 자매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식들을 너무 디테일하게 묘사해서 여러번 공감했고 종종 울컥했다.    


사실, 영화가 한 지점을 향해 폭발적으로 달려나가는 단거리 달리기 같은 것이라면 드라마는 전략과 완급조절이 필요한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던 작가들 중에서도 시리즈물 대본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다. 체질을 바꿔야하는 일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작은 아씨들>을 보며 정서경 작가는 제법 성공적으로 종목 변경에 성공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는 마스터멀티플레이어.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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