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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월 Sep 19. 2018

[영화리뷰] 때로 물은 피보다 진하다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

✔️ 가족이란 무엇인가


*작품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이 포함됩니다.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오프닝



“니 아빠 아니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대사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 대사의 힘은 막강하다. 오프닝에서 보여준 장면들을 단숨에 설명할 뿐 아니라, 캐릭터들의 위치와 관계 또한 재정립한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배다른 자매, 그들이 함께 명은의 아빠를 찾아 나가는 앞으로의 여정에 관객은 집중하기 시작한다. 여정 내내 명은은 명주에게 제 어머니를 투영한다. 남자들과 시시덕거리지 말라고 힐난하고, 아비 없는 자식의 서러움을 토로한다. 자신의 처지를 몰라주는 그에게, 자신을 홀로 낳아 기른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려고 애쓴다. 그 모든 감정은 자신을 버려두고 간 아버지를 향한 애증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런 명은에게 명주는 조금씩 조금씩 명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뿐이다. 그리고, 명주의 기억 속에 있는 명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다 끝나갈 무렵, 명주는 명은에게 사진 한 장을 내민다. 명은은 사진을 보고 그동안 항상 제 곁에 있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깨닫는다.

이 영화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대해 말한다. 혜숙의 죽음 앞에서 명주와 그의 이모 현아, 그의 딸 승아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 제 마음 하나 추스리기 힘든 상황에서 상대의 식사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통해. 핏줄로 하나 되지 않아도, 아버지가 없어도, 연대감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가족 공동체 앞에서 ‘니 아빠’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긋는 명은은 저 스스로 왕따가 되어갔다.



엄마의 장례 이후, 다투는 명은과 명주



그런데, 명은 아버지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부터 영화는 방향을 잃는다. 명은은 제 아버지와 현아(이모)가 같은 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제주도로 돌아간다. 여태껏 혜숙(엄마)와 명주에게 날 선 말들을 쏟아내는 것으로 표현했던, 아버지를 향한 애증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 애증의 빈자리를 죄책감이 채운다. 자신은 몰랐지만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이모, 그리고 그 이모에게 상처를 주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정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가족 공동체와 유대감이 이런 것이었을까? 유대감은 물리적인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여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 힘든 시간을 함께 겪으며 이겨내는 것. 그것이 유대감이자 가족 공동체의 시작이다. 그런데 여태껏 유대감을 쌓지 못했던 현아와 명은은 서로가 ‘혈연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자연스럽게 관계 회복을 시작한다. ‘혈연관계’였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관계 회복이 시작된다는 설정은 이제껏 수없이 많이 봐왔던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공동체’, ‘혈연에 의한 가족 공동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명은과 명주, 명은과 현아가 유대감을 쌓고, 진정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기 전까지 이 영화는 그저 ‘아비 없는 자식의 열등감과 상처에 대한 전시’, ‘혈연으로 하나 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그친다.



명은의 아빠를 찾아나선 명은과 명주



물론, 그저 ‘혈연관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명은의 마음이 돌아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자신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던 가족들을 뒤로하고, 스스로 선을 그어 거리를 두었던 명은에게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반성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혹은 핏줄로 ‘니 아빠’와 ‘내 아빠를 나눴던 그이기에 가능한 관계 회복의 수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계기가 왜 꼭 곁에 있었던 ‘아버지’여야만 했는가. 그리고 명은은 그 아버지의 존재를 어떻게 몰랐을까. 이는, ‘트렌스젠더’라는 반전을 위한 설정 때문이다. 그러나, 현식이 성전환 수술을 해서 현아가 되었다는 반전 속에는 ‘현아’의 이야기가 없다.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성전환 수술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왜 명은을 낳으려고 했는지. 왜 아이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 현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성 소수자’라는 소재는 그저 반전을 위한 충격적인 소재로 ‘활용’된 것에 그친다. 반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현명하지 못한 장치였다.



제주도로 돌아가는 명은과 명주


혹시 이 영화가 다시 쓰인다면, 명은이 아버지와 이모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지금보다 일찍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명은과 현아가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졌으면 좋겠다. 현아가 왜 아이를 낳으려고 했는지,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만 했는지, 명은을 곁에 두고도 제 자식이라 얘기하지 못하는 심정이 어땠는지 명은에게 이야기하고 명은은 현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이해함과 동시에 제 상처를 치유 받는 과정이 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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