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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Jul 05. 2024

여름휴가 안 가고 싶다...

나는 천성이 짠돌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잘해주셨지만. 타고난 성질이 큰 것을 바라지 않고, 딱히 물질에 연연하지 않고, 남들 하는 것을 따라 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유일하게 돈을 쓴 것은 책 / 영화였는데

그 와중에 뮤지컬은 비싸서 몇 번 안 갔다 ㅋㅋㅋ

내가 학생 때는 책과 영화가 많이 저렴했으니까. 특히 영화는 한때 신용카드를 만들면 막 천 원에도 볼 수 있었으니까 취미로 삼은 것 같다.


암튼 그런 내게 여행은 참으로 스트레스이다.


24살 때, 갑자기 그냥 할 일도 없는데 배낭여행이나 갈까? 해서 

나 홀로 3개월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탈리아 터키 체코 프랑스 런던 스위스 등등 정말 잘 다녔다.  

정말 돈 천만 원 정도는 그냥 쓴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행은 무조건 좋은 거라고 생각한 부모님이 돈을 다 대주셨으니 

돈 걱정 없이 펑펑 쓰면서, 잘 놀다 왔다.


그런데, 그렇게 돈 펑펑 쓴 뒤 깨달은 것은

나는 딱히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구나였다.

집에서 독립을 꿈도 못 꾸는 환경이었기에,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다닌 것이지

사실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낯선 곳에서, (돈이 없으니) 남들과 같이 방을 쓰는 게스트룸도 싫었고,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도전해야 하고, 뭘 먹지 고민하는 것도 싫었고,

쇼핑도 할 줄 몰랐고

박물관 미술관은 좋았지만. 좋긴 하다만, 내가 무슨 예술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니 돈이 아까웠다.

런던에 있던 고흐의 해바라기만 기억에 남는다. 사람도 없었고, 뭔가 그림이 진짜 좋긴 좋았다.


60일간의 배낭여행이 좋았던 것은 눈치 보지 않고 술 먹었던 것

캣콜링 당한 것을, 내가 예쁘다고 해주나? 싶어 좋아했던 것

친절했던 언니 오빠들 

그냥 신기한 관경들 정도......


돌아와서 자랑거리 생긴 것 정도.....

( 엄마 아빠 죄송합니다 ㅜㅠ ) 


암튼

가뜩이나 여행 갈 바에는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더 낫다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가족 여행은 정말 스트레스이다. 


특히 애들 5살-10살 까지는

가서 놀아줄 장난감에

애들 먹을 음식, 간식에 짐도 바리바리 싸야 하고

또 돈이 없으니 해 먹을 음식도 바리바리

가기 전에 청소하고 짐 싸고 돈 쓰고 

가서는 애들끼리 싸우는 거 말리고, 애들 싸움이 부부싸움으로 번져서 한바탕 하고 

돈 쓰고

갔다 와서 짐 풀고, 여독 쌓인 것들로 모두들 한 바탕 아프고, 청소하고 

돈 계산하면 머리 아프고!!


진짜 뭐 좋으라고 여행을 가는지 모르겠다 싶었다. 


그런데... 애들 유치원, 초등학생 때 "나만 여름휴가 안 갔어" 하는 소리에 

안 갈 수가 없다!

또 애들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여름휴가 가고 싶은데 엄마가 돈 없대요" 하는 순간

친정 부모님이 막 우리가 돈 낼 테니 "같이" 가자고 ㅋㅋㅋ 

친정 부모님과 애들과 같이 가는 게 싫은 것은 아닙니다만... 실제로 진짜 돈 없을 때 부모님이 돈 대주시고 데려가주셔서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휴... 나이 먹고 모시고 가는 것도 아니고, 데리고 가주시는 게 너무 불편하고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해마다 어떻게든 싸구려 펜션이라도 가긴 갔었다.


다니다 보니

애들이 이제는 커서 가족여행 짐도 많이 줄고,

가서 라면이랑 햇반만 먹어도 되니까 밥값도 좀 줄고

큰 방을 잡아야 하니 방값이 늘었지만,

그만큼 내가 낮술을 먹고, 혼자 있어도, 애들이 딱히 귀찮게 안 하니 

의무감과 스트레스만 있던 여행이 

이제는 돈만 빼면, 뭐.. 1년에 한 번은 나쁘지 않다 정도로 바뀐 듯하다.


또 7월이다. 방학이다.

사실 지금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고, 직원을 줄인 만큼 일이 많아져서

일단 애들한테 

여름방학에 휴가는 없다고 못 박아두긴 했는데......


중1인 큰애가 시험 스트레스 없이 갈 수 있는 마지막 휴가인데... 그 기쁨을 뺏는다니 너무 속상하다고 하니

초4인 둘째는 친구들은 어디 어디를 갔다는데 나는 정말 안 가는 거냐며.. 그럼 목욕탕이라도 자주 가달라고 하는데.. 목욕탕만 같이 가주시면 돼요 하는 그 말이 더 미안해진다...


남편도 나도 애들 없을 때면 

갈까? 어딜까야 쌀까? 시간은 어떻게 만들까? 가야겠지? 대화를 하는 중이다.


여름휴가를 즐겁게 계획하는 사람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텅장을 보며, 찌질하게 구는 내가 좀 한심하기도 하고

( 객관적으로 가려면 충분히 갈 수는 있는데... 내가 짠돌이라...... )


암튼

여름휴가 나만 빼고 셋이 가면 좋겠다

나는 혼자서 낮술 먹게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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