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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Jul 06. 2024

애들에게는 좋은 아빠라서 이혼을 못 해요

자극적인 제목으로 재미를 맛봐서 그런가

또 자극적인 제목을 쓰고 말았다. 

ㅋㅋㅋ


사실, 정말 나는 이혼을 하려고 했었다.

전 재산을 사기당했을 때도

이 일을 다 정리하고 나서 이혼한다는 생각이었기에 돈이 없어서 이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천성이 무수리인지라

내가 나가서 청소일을 해도 돈 150만 원을 벌 수 있는데

돈 150만 원이면, 애들 학교는 보내고, 반지하 단칸방 월세 50만 원짜리에서 굶지는 않고 살 수 있는데 뭔 걱정이냐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석사를 했던지, 방송작가를 했던지, 논술강사를 했던지 그런 것은 다 지워버리고

마트캐셔, 마트 청소, 빌딩청소, 콜센터, 다단계 등등 갖가지 일을 알아보고 실제로 콜센터에서 영업을 몇 년을 했던 사고방식의 사람이었기에

돈 때문에 이혼을 참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돈 때문에 이혼을 하면 했지


그런데! 왜 이혼을 안 했느냐!! 

( 그렇게 남편 욕, 시댁 뒷담회를 하면서 ) 

첫 번째는 둘이 합쳐서 빚을 갚는 것이 더 급했고 (남편의 능력을 믿었고)

두 번째는 좋은 아빠이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기회를 달라고 남편이 졸라서였다. 




돈은 앞에서 말했듯이, 빚을 나눠서 내가 갚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둘이 힘을 합하는 게 여러 방면으로 더 빨리 갚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빚을 갚고, 딸들이랑 남편이랑 살 집을 마련해 놓고, 

딸들이 본인 스스로 입고 먹고 씻고(아빠가 못 씻겨주니까) 할 나이만 되면 이혼해야지 하는 

이혼 보류의 이유일 뿐이었다. 


간혹 남편이 돈은 주니까. 돈 주는 기계로 생각하고 살라는 말을 아줌마들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이면 정말 좋겠다. 부러울 따름이다. 나도 전업주부로 남편이 준 돈으로 생활하고 저금하고 딴 주머니 차고, 낮에 쇼핑도 다니고, 수영 다니면서 수영강사 감상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남편은 번 돈은 다 주지만... 남편 돈으로 살림을 하거나, 생활을 한 적은 없고 다 빚으로만 나가는 상황이었기에, 지금도 남편이 나에게 월급을 주는 거지 생활비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이 문제로 남편과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매달 주는 돈의 3분의 2는 월급이고, 3분의 1은 생활비로 결론을 내렸었다. 3분의 2의 금액은 최저임금보다 좀 낮은 수준의 금액인데.. 객관적으로 잡코리아를 기준으로 그 정도 연봉의 일자리이기에 그냥 그렇게 합의를 봐버렸다. 남편은 그날부터 생활비도 주는 남편이라고 좀 당당해졌다 ) 


암튼 내 생각대로 이혼을 미루고, 둘이 합쳐 장사를 하면서, 정말 빨리 빚을 갚을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쬐끔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이혼을 안 하는 이유는

남편이 좋은 아빠이고, 날 사랑한다고 말하니까 이 2가지인데...


좋은 아빠라는 것이 매우 폭넓게 쓰인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그냥 아빠일 뿐인 것을 "좋은 아빠" 

그냥 생물학적, 서류상의 아빠일 뿐인 사람을 "좋은 아빠"라고 포장하며 참고 견디는 사람들도 있더라.

때리고 맞아도 좋은 아빠니까

돈은 벌어다 주는 좋은 아빠니까

바람을 펴도 애들한테는 용돈도 주고 놀아주는 아빠니까...


글쎄...


나에게 좋은 아빠란 다음과 같다 

1. 번 돈 모두를 자식에게 줄 것

2. 모든 시간을 자식에게 쓸 것 

3. 자식이 행복하냐를 기준으로 모든 행동을 할 것 

4. 좋은 아빠이기에 이혼을 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애들 아빠는 사실 너무 바빴고, 어떻게 아빠 노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여자 아이라 기저귀를 갈아주지 못하겠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고

실제로 바쁘기도 해서

한 번도 목욕시킨 적도 없고, 기저귀 갈아준 적도 없고, 재운 적도 없고, 밥 먹여본 적도 손에 꼽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그 모든 이유는 "돈 벌라고"였다.

정말 친구 한 번이라도 만나서 술이라도 하고, 당구라도 치고, 노가리라도 깠으면 나는 눈이 뒤집혀서 머리털을 죄다 뽑아놨을 것이다.

나는 애를 안고 똥 싸면서 울던 때니까. 

그런데 "가족을 위해서, 번 돈을 모두 마누라 새끼들에게 주기 위해서" 정말 1분도 허투루 안 쓰고,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도 하이라이트도 잘 못 보면서 돈을 벌었더랬다. 


그러다가 둘째 3살, 큰에 7살 됐을 때. 내가 

"아저씨로 지낼 것 아니면, 아예 집에 오지 말고, 아빠로 살고 싶으면 일주일에 1번 5시간만 애들한테 충실해라"라는 말을 듣고, 

바로 일요일에 3시부터 9시까지는 꼬박꼬박 시간을 내서 애들과 함께 했더랬다. 

( 지금은 부부가 쌍으로 일하고 있지만 ㅠㅠ ) 


그렇게 돈과 시간을 가족을 위해 다 벌고 쓰는 남편은 

"내 딸들은 내 마누라처럼 고생 안 하게, 결혼할 때 조금이라도 월세 받는 상가 하나 쥐어주고 싶다"는 목표 하나로 토요일 저녁 9시가 넘은 지금도 성실하게 열심히 돈을 벌고 

오늘도 밤 1시까지 일을 할 예정이다. 

(나도 같이 새벽 1시까지 있는 게 애들에게 미안할 뿐)


암튼 그런 점에서 좋은 아빠란 이혼을 못하는 이유가 아니라

이혼해도 되는 이유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좋은 아빠니까 애들도 잘 기를 것이고, 내가 기르던, 네가 기르던

서로 좋은 부모로, 애들을 최해로 한 팬클럽의 동료로 지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좋은 아빠이기에 이혼을 참은 것도 있지만

좋은 아빠이기에 나는 안심하고 애들을 놓고 이혼하려고도 했었더랬다. 


그런데 




자꾸 날 사랑한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어록을 남기며 기가 차서 내가 난리를 부리면

바로 깨닫고 사과하고, 또 사람이 바뀐다.


시댁과의 관계에서도

처갓집에 대한 태도와 말과 행동도

내 요구도 

사람이 바뀌기란 쉽지 않은데 

이 사람은 조금씩 바뀌어졌다.


이제는 내 눈치도 살피고, 내 말 하나하나 주의 깊게 듣고, 미안하단 말도 잘하고 

자꾸 사랑한다고 한다.


참 내. 

나는 55살 전에 이혼해서 연하랑 재혼할 상상을 아직도 하는데 

자꾸 사랑한다고 해서 고민이다. 


그래서 아직도 이혼을 안 하고 있는데

곧 추석이 다가오니 또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겠다. 

언제든 이혼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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