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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Jul 14. 2024

프러포즈 - 1

연애포함 남편과 만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커플 데이트, 부부 모임이 생겼다. 

남편 부부와 저녁에 넷이 만나기로 했는데, 너무나 오랜만의 사교 모임이라 매우 설레면서 긴장된다. 

모처럼 사교 모임이라 기분이 좋아 그랬는지

뭔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에게 "그게 내가 널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라고 해버렸더니

남편이 좋다고 헤헤 웃는다. "어이고 좋~탠다. 뭐가 좋으냐. 이런 쭈글탱 아줌마가 좋아한다는데"라고 해도

그저 좋다고 하는 남편이다. 

흥!


이런 남자가 뭐가 좋다고 나는 결혼을 했을까.

아마 프러포즈가 너무나 운명적이어서 아닐까.


남편은 나랑 몇 번 만나고, 밸런타인데이 날, 나에게 진지하게 만나자는 식의 고백을 했다.

"나는 지금 마이너스 통장만 있고, 한 달에 저작권료 얼마 정도 들어오고, 곡 팔고, 작업해서 얼마는 버니까. 너 먹여 살릴 수 있어"

정신 차린 지금 보면, 결국 "나 사실 빚이 있고, 안정적인 수입원은 없는데. 그래도 나 괜찮겠니?"라는 대사였는데

콩깍지가 끼인 그때는 사실 마이너스 통장이 일반 적금 통장인 줄 알았고, 한 직업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믿음이 가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아빠가 엄마한테 한 프러포즈랑 너무 똑같아서,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친정 아빠는 종갓집 종손이었고, 박봉의 공무원이었으며, 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최악의 결혼상대였었다.

그래서 엄마 몇 번 만나고 좋아해서 결혼하고 싶은데

솔직하게 상황을 말해야겠다 싶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빚이 얼마이고, 내가 매달 얼마 벌어서 어떻게 갚고 있고, 홀 시어머니랑 살아야 하며, 뒤치다꺼리할 동생들과 거센 누나가 있다는 것 등등을 다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이렇게 진솔할 수가. 솔직하고 정직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엄마가 몇 번이나 아빠의 프러포즈를 말해줄 때는 

"진솔이고 정직이고 떠나서, 그렇게 가난한 사람한테는 가지 말라"는 뜻이었을 텐데

나는 엄마의 뜻도 모르고

"어머나! 아빠랑 똑같은 프러포즈를 하다니, 이 사람도 정식하고 진솔하니 믿을 수 있겠다. 운명이다"라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야.

마이너스 통장이란 것이 대출이고, 빚이랑 똑같은 것을 알았고 

불규칙적인 수입원은 백수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많이 늦은 상황이었다. 


딸들이 아빠가 어떻게 고백을 했냐고 말할 때면,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외할아버지랑 너무나 똑같은 프러포즈어서 운명을 느꼈다고 말해주면서

"너희들은 아무리 솔직해도 빚 있는 남자랑은 결혼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를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애들 역시 뒷말은 안 듣고 앞에 말만 듣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딸들은 엄마 팔자 닮는 다던데

다른 건 다 상관없는 데, 결혼 초 힘든 팔자는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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