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설거지가 아니다. 상징적인 일이다.
사실 나는 이번 설날에 남편의 태도를 보고 이혼을 하리라 결심했었다.
원래 나는 팔짱끼고 지켜보는 것을 싫어한다. 그때그때 혹은 생각날때 말을 해줘야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나는 팔짱을 끼고 지켜봤다.
2009 년 11월에 결혼을 했으니 14년차에 들어선 내 결혼 생활 동안 명절은 못해도 26번을 겪었을 것이다.
7년 전부터, 명절마다 내가 구구절절히 어떤 점이 힘들고,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매번 말을 했으니,
올해는 팔짱끼고 지켜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명절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애들도 어렸고, 아침에 못일어나는 남편때문에 시댁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했었다.
결혼 첫해에는 만삭의 몸으로도 부짐개를 부치고 다 했었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
아침 차례를 지내고, 점심 먹고, 저녁은 친정에서 먹으니 이정도면 평범하다.
어머님이 일을 더 많이 하시고, 나는 돕는 것만 하는 건데 뭐.
다른 친척이 오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음식도 많지 않고, 한 것 다 우리 먹으라고 싸주시고, 좋지.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명절에 누워만 있는 남편.
그리고 자잘한 대한민국 평범한 시어머니의 말씀들과 시누이들의 모습과
맞벌이에 지친 내 체력과
무엇보다. 내 딸들이 나를 보고 나처럼 살까봐 걱정이 되다보니
"나 하나만 참고, 분위기 맞출 이유가 없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지독한 워커올릭인 남편은 정말 단 5분도 아이들을 돌봐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7년 전인가.
그때 내가 요구한 조건은
"명절 당일 외에는 당신은 쉬는 날이 없으니, 명절은 내 휴가로 정하고, 나는 집에서 쉬겠다. 당신이 애들 데리고 시댁에 가라, 애들을 봐주는 친정에는 명절에 안 가도 된다"
그렇게 딱 1번 휴가를 가졌지만,
사실 친정 부모님이 더 난리를 부렸고,
시댁에서도 한 소리 했고, 무엇보다 남편이 도와주거나 커버쳐줄 마음도 없었던 것 같아서. 결국 그 후에 다시 시댁에 가고, 친정에 오고 했었다.
그 후에
내 요구는 "그럼 시댁에서 명절 2번만, 설 1번, 추석 1번 만 설거지를 해라" 였다.
남편은 당연히 결혼 14년동안 밥 한번 하지 않았고, 아직도 세탁기 돌리는 법을 잘 모르며, 설거지는 일년에 1-2번도 안하다가. 작년부터야 한달에 1번 할까? 화장실 청소도... 10년동안 안하다가. 화장실 2개짜리 집으로 이사온 2020년 11월 부터 본인 화장실 3번했나? 그정도로 나는 집안일을 안 시킨다
집에 없으니 못 시키는게 더 정답이다.
암튼, 애들 앞에서 아빠가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는 상징적인 그 모습으로라도 나는 위안을 받고 싶었다.
실제로 몇번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것을 나는 자랑하고 다녔다.
엄앵란이 "그나마 남편이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막아주고, 조강지처 편을 들어서 첩년들을 보고도 참았다"는 것처럼
나도 "그래도 명절에 시어머니 앞에서 설거지는 해" 라고 자랑을 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명절만 되면. 난리가 났다.
시어머니가 아주 난리 난리였다.
남편도 노력을 하긴 한 것 같다. 두세번은 남편이 하긴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소리까지 지르면서 화를 내기도 했고, 무슨 대국민 토론처럼 시누와 시누 남편이랑 앉아서 대화로 풀라고 하지 않나. 여러 어색한 시간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여자하나 이상한게 잘못 들어와서, 조용한 집안을 시끄럽게 만드네" 였다.
지난 추석은 어영부영 어머님이 하신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그렇게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그 행위 하나로, 항상 명절에는 긴장과 스트레스였던 것이 몇년 되었다.
올해는 그래서 그냥 암말 안하고 지켜봤다. 남편의 선택을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 남편이 설 전에 설거지를 하지 않나. 옷을 사주지 않나( 14년만에 패딩을 샀다). 청소를 하지 않나 13년동안 아내 눈치라고는 보지 않던 사람이 이상했다. 명절에도 항상 점심먹고 3시 30분~5시에 일어났었는데. 차례지내자마자 친정 갈거라고 안달복달 하지 않나.
그러다가 차례가 끝나고, 단촐하게 밥을 먹고 상을 치우는데, 솔직히 습관적으로 고무장갑을 겼다.
( 습관적인지, 나도 솔직히 싸우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
남편이 왠일인지 상을 닦고, 나르고 그래도 가만히 안 있고 움직이려고 하긴 하더라......
그리고 시누가 오고 간단히 점심을 먹는데, 왠일로 시누가 점심을 설거지를 하더라.
그리고 친정에 왔다.
친정에서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집에 왔다.
남편이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올해가 가장 좋았다.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하는데
나는 찝찝했다.
여느때처럼 잘 사는 시누, 대접받고 사는 시누가 부러워서 그런가 싶었다.
시누가 "나는 우리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데가 어딘지도 몰라. 한 번도 내가 한 적 없어" 라고 하는데
그 와중에 남편이 "나도 다 한다고, 나도 다 잘 한다고 "하는데 기가 차서 말이 안나와서 그런가 싶었거든
그래서 며칠 지나. 차안에서 대화를 했다.
알고보니 시어머니가 울고불고 했었단다
"니가 니네집에서 뭘 하던 상관없는데, 본가에와서 설거지하는 꼴은 못 보겠다. 우리 아들이 왜 그러고 살아야 하냐. 내가 자식을 그렇게 못나게 길렀냐. 나는 그 꼴을 못 본다."
라고 하셨단다.
( 딱 아래 링크에 시어머니와 똑같았을 것 같다 )
https://www.youtube.com/watch?v=hrSH4NH2dcI
와우......
그럼 나는 무슨 잘못을 하고, 무슨 없는 집에서 자랐길래
남의 집에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설거지나 요리나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저런 생각이 문제다.
며느리가 시댁에서 일을 해야지, 어떻게 감히 우리 아들 손에 물을 묻히냐 같은 저런 생각이 문제다.
시어머니는 적어도 예의상으로라도 시댁에서 며느리가 남편을 깍듯하게 모시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듯 한데.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것은 나를 더 무시하는 행동 내지는, 우리 집(사돈)을 전혀 신경 안쓰는 모습뿐 이었으며,
무엇보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 깍듯하게 남편을 위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어렵다
또한
위에 드라마처럼, 저런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감히 여자가 어딜 나가서 돈을 버냐. 살림이나 해야지. 라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런 가부장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못나고 능력없으면 여자를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게 하냐 라고 생각을 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 사업장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온 가족이 내가 사모님 놀이를 하는 줄 안다 ㅋㅋㅋㅋ 실제로 애들을 밤 늦게 11시 12시까지 애둘만 놓고 일하고, 특히 토요일마다 애들만 좋고 밤 7시 8시까지 일하고 올때면 항상 마음이 안 좋다.
물론 친정 엄마는 그까짓거 일년에 몇번 뭐가 힘들다고 설거지 하고 말아라. 라고 하시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분이고 그리 사셨지만
나는 더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거든
암튼
남편은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내 눈치를 보고, 나름 마음 고생을 하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설 전에 안하던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옷을 사주고, 설날에도 설거지하는 내 앞에서 왔다갔다 뭐라도 일을 하려고 하고, 친정에도 빨리 가려고 하고 그랬나보다......
하지만. 솔직히 좀 늦은 것 같다.
일단, 남편에게 통보했다.
나는 앞으로 명절에 설거지를 안할 것이다. 당신이 안해도 된다. 아마 시어머니가 하시겠지. 그것 역시 시어머니가 선택하신 것이니 나는 모르겠다.
그게 보기 싫으면, 친정은 안 가도 되니까, 애들이랑 셋만 시댁에 가라. 나는 휴가를 가겠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냥 가잰다. 하지 말란다.
그러면서 또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울면서 신세한탄을 했다.
남편은 미안하단 말도 이제는 안한다.
어쩌라고 하고 말지...
사실, 나는 답을 주는 편이다.
남편에게도 답을 많이 말했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커녕, 결혼 14년동안 친구들을 만나 외출한 것은 3번 정도이며, 그 3번도 매일 애들 봐주느라 어리 아프고 다리아픈 엄마가 애들 봐줘서 나간거지. 당신이 애들 봐주고 내가 맘 편히 나간 적이 없다
( 남편은 일해야 하고, 시간을 낼 수 없다, 알아서 해라 하는 스타일이다 )
그렇다고 내가 우리 부모에게 , 돈주고, 애들 봐주고, 살림까지 도와주는 우리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맛있는 밥 한끼를 대접해주기를 했냐.
당신에게 내가 무슨 보살핌을 받기를 했냐, 돈을 받기를 했냐....
당신은 나에게 시간도 주지 않았고, 돈을 주지도 않았고, 사랑을 주지도 않았다!!
나에게 시간과 돈과 사랑을 달라!!
이 정답을 8년 전쯤에 준 것 같은데... 남편은 바뀐게 없다.
아마.. 그래서 이재는 이혼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고작 설거지 하나로 웃기기도 기싸움을 하고 있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기싸움 하는 며느리로 나를 생각한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우리 아들이 잡혀사는 꼴을 내 눈앞에서 보여야겠냐고 하고 있다.
나는 고작 설거지를 내가 해야 화목한 가정이 유지되는 집안이라면, 그냥 내가 빠지겠다 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꼭 이혼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식으로라면 "설거지 못하게 해서, 아들 이혼시킨 시어머니" 라는 글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슈의 원인은 넓게는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문제고
좁게는 14년동안 결혼생활에 매우 만족하지 못한 나의 문제일 것이다.
( 어쩌면 신랑이 좋다면, 그까짓것 하고 말지 하면서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
고작 설거지가 고작 설거지가 아닌 오늘이다.
나는
이제 곧 50살인데.
당뇨병 있는, 심술살이 내려앉은, 뚱땡이 아줌마의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지 않다.
나도 대접받으면서 살고 싶다.
나도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다.
나도 이렇게 음침하게 팔짱끼고 화내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다음 추석때는 또 어떤 명절 스트레스가 있을까
다음 추석까지 우리가 부부일 수 있을까.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 스스로를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할까...
일년에 2번 명절 전 후 한달을 꼬박 앓아 눕는 나도 보통은 아닌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