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까지의 로드트립을 기록해 보았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로드트립은 예정돼있었지만, 기름 넣고 달리는 커다란 차로 갈 예정이었다. 어느 날 오토파일럿을 켜고 퇴근하는 길에, 테슬라로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리서치를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는 테슬라가 길에 깔리기 시작한 초기부터 많은 이들이 다니던, 검증된 루트였다. 하지만, 나의 모델 3은 출퇴근 용으로 구입한 차였다. 스탠더드 플러스 모델로 완충 시에도 270마일 정도만 갈 수 있고, 많은 짐을 싣고 충전 스트레스 없이 장거리를 갈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시뮬레이션해보니 커다란 여행가방 2개가 들어가지는 않지만, 큰 가방 한 개, 그리고 기내용 가방 2개가 여유 있게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2번. 각각 30분씩만 충전하면 충분히 엘에이 시내까지 관통할 수 있었다.
출발 전, 배터리가 10% 정도 남았을 때를 감안하고 목적지를 설정하고 출발했다. 예상했던 대로 큰 가방 한 개, 기내용 가방 2개가 여유 있게 들어간다. 트렁크 아래 또 하나의 공간이 있어서 작은 짐들을 추가로 더 넣을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엘에이 구간은 대략 350마일(564km) 정도 된다. 서울-부산보다 대략 160km 정도 멀다. 막히지 않고 뻥 뚫린 도로라 모든 차들이 75마일 (대략 120km/h) 이상으로 고속 주행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평균 속도로 계산된 전비보다 많이 소요된다. 해당 도로는 테슬라가 길에 깔리기 시작한 초기부터 많은 이들이 다니던 루트이기에 길에 따라 슈퍼차저가 적절히 위치해있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나 오토파일럿이었다. 대략 운행의 90% 이상은 오토파일럿이 대신해주었고, 그만큼 운전 피로도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나는 운전자라기보다는 운전 관리자에 가까웠다. 오토파일럿이 계속 잘 동작하게끔 핸들에 손을 올려놓고, 앞에 나타나는 화물차들을 추월 정도만 하면 되었다.
위기라면, 슈퍼차저에 테슬라가 너무 많았을 때였다. 도착하자마자 자리가 없으니 당황스러웠는데, 아무래도 고속 충전에, 각자의 행선지가 있으니 빨리빨리 차들이 빠져나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슈퍼차저 옆에 테슬라 전용 라운지가 있는 곳에서 충전하며 쉴 수 있었다. (거의) 무인으로 운영되는데, 충전소에 도착하면, 테슬라 화면에 라운지 비밀번호가 표시되어 그것을 입력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간단히 요기할 수 있게 샌드위치 자판기가 있었고
사이버 트럭 모자도 팔고 있었다.
- 언급한 대로, 운전석에 앉아 있지만,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토파일럿이 잘 작동하는지 "관리자"가 된 느낌이었다. 평소 출퇴근 시 오토파일럿을 짧게 짧게 사용하다가, 장거리 주행에 사용하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5시간 반을 달리는 동안, 내가 직접 운전한 것은 30분 남짓이었다. 운전자로서 별로 할 일이 없었고, 당연히 운전 피로도가 거의 없었다. 장거리 운전에 대한 경험성 자체가 완전히 바뀐 셈이다.
- 내장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중간중간 슈퍼차저에서 충전하고 가게끔 자동으로 경로 안내를 수정해 보여준다. 매우 편리한 기능이었다.
- 슈퍼차저가 가까워지면 (대략 슈퍼차저까지 1-20분쯤이 남았을 때) 배터리가 고속 충전을 위해 Pre conditioning 한다면서 크게 웅- 소리가 났다. 고속 충전을 대비해 배터리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거나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속 충전 시 무리가 되는 배터리를 미리 관리해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기능이었다.
- 슈퍼차저는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는지, 사람들이 남긴 후기보다 더 빠르게 충전되었다. 대부분의 충전이 30분 이내에 원하는 만큼 완료되었으며, 중간에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없었다.
- 테슬라의 배터리 관리/표시가 인상적이었다. 200마일을 더 갈 수 있다는 배터리 표시를 보고 출발했을 때, 거의 정확히 200마일만큼 더 갈 수 있었다. 참고로 짐을 가득 실었고, 에어컨도 계속 틀어놓았었다.
- 슈퍼차저 부근에는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이 기대할만한 휴게 시설이 같이 있어서 좋았다. 물론 별도로 마련된 라운지를 방문한 것도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별한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용자를 배려한다는 경험성에, 브랜드 충성도가 생겼음은 물론이다.
- 재미있는 사실은 실리콘밸리에서 서울 길거리의 소나타 택시 마냥 너무 흔하게 보이던 테슬라가 엘에이에서는 아주 가끔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또다시 테슬라의 강점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이 테슬라의 조립품질, 단차 등을 조롱할 때, 테슬라는 "오토 파일럿"을 향상하고 "슈퍼 차저"를 깔고 있었다. 이는 제품을 만드는 방향 설정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슬라는 여타 다른 실리콘밸리의 제품들처럼 하드웨어의 완벽함보다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위한 경험성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떠올려 보니,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까지 5시간 이상을 달리는 동안, 다른 브랜드의 다른 전기차를 한대도 본 적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