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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s Jul 10. 2018

고산병에 대한 정리

비아그라가 고산병 치료제라고?

이 글은 201X 년 병원 수련 막바지에 받은 휴가로 7박 8일 페루~볼리비아 여행을 갔다 와서 쓴 고산병에 대한 글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페루 쿠스코 (3,000m + @), 볼리비아 우유니 (4,000m)에서만 지냈고, 쿠스코 도착 첫날부터 고산병 증상이 있었지만 미리 준비해 간 예방약제와 두통약으로 쉬이 넘어갔던 기억이 있지요.


돌아와서 다시 남미 여행 인터넷 카페 글들을 보니 의료인이 작성한 고산병 소개글이 없어 보여 여행 후기 대신 작성한 글이 아래 글입니다. 처음에는 의식의 흐름대로 쓰던 글이 레퍼런스 체크를 하다 보니 한나절을 통째로 써서야 완성되었고, 필자의 고산병 경험과 어우러져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죠.


그리고 2016년 11월, 대한민국 정치 격동의 시기에 나온 청와대 비아그라 구입 사건(?) 덕분에 고산병이 한차례 더 유명해졌는데, 워낙 굵직한 이슈가 많아 고산병에 대한 진지한 의학칼럼 하나 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당시의 혼란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요. 브런치에 글을 다시 올리면서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구분선 아래가 당시 남미 여행 인터넷 카페에 올렸던 본론입니다.




안녕하세요.


쿠스코~우유니 코스로 짧은 여행을 마친 삼십대 남자입니다.


첫 도착지를 쿠스코로 한 지라 고산병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나름 준비를 해 갔었는데요, 실제로 증상도 나타나고 와이나픽추 등반, 우유니 때는 꽤 힘들었습니다.

나름 직업이 이쪽인지라 조금 더 정확한 정보가 될 것 같아 설명을 조금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정보를 많이 얻어갔는데, 제 짧은 여행기로 부정확한 정보를 더하는 것보단 이쪽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1. 고산병이란?
고소증 high altitude sickness은 2,500m 이상의 지역에서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현상 (저산소증, 저기압)에 의해 발생하는 증후군을 말합니다. 크게는 3가지 질환으로 나누며 (급성 고산병, 고소 뇌부종, 고소 폐부종), 이 중 우리가 잘 알고 많이 걸리는 두통, 구토, 식욕부진, 피로, 어지러움, 불면이 나타나는 것은 급성 고산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고산병이라고 줄여 부르겠습니다.


2,000m 이하에서는 고산병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며, 2,500m 이상이라도 천천히 올라가는 적응 Acclimatization과정을 거칠 경우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저처럼 바로 3,300m 쿠스코에 날아간 사람이 고산병의 적용 대상이 되겠습니다.
    


2. 고산병의 원인
고산 지대에서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물리적 현상은 저기압에 의한 저산소증입니다. 공기에는 21%의 비율로 산소 분자가 섞여있습니다. 그리고 고산지대는 공기의 밀도인 기압이 낮습니다. 공기의 밀도가 낮아진다는 건, 들이마시는 산소 분자가 줄어든다는 뜻이죠. 이 때문에 3,000m 이상의 고고도에서는 저고도에 비해 낮은 농도의 산소를 들이시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예를 들어 3,640m 고도의 라파즈의 경우 기압이 1/3 가량 감소하며 이는 평지에서 14%의 비율로 산소가 섞여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저산소증이 오면 숨을 많이 쉬게 되고, 뇌로 가는 혈류량이 증가하고, 교감신경과 염증반응이 증가되면서 어느 정도의 뇌부종이 오게 되는데, 아직 기전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나 이 뇌부종/또는 뇌부종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고산병 증상의 원인이 되겠습니다.


글이 조금 딱딱해졌는데, 쉽게 풀어쓰면 산소가 줄어들고 기압이 떨어지니 몸은 살아야겠고, 숨도 많이 쉬고 위기감도 드니 혈관들도 피를 많이 보내고, 그중에서도 뇌가 가장 중요한 장기이기 때문에 급히 피를 뇌로 보내다 보니 뇌가 붓고... 이런 기전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 급성 고산병에서의 뇌부종이고, 때문에 두통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3. 얼마나 생기고, 어떤 사람이 잘 생기나?


2,500m 내외의 고도에서는 25%, 3,000m 정도에서는 약 40%에서 많고 적은 고산병을 겪는다고 합니다.


개인 체질이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인데요, 몇몇 사항들을 보면,

1) 이전에 고산병이 있던 사람은 또 걸립니다. 높은 고도의 물리적 특성을 잘 못 견디는 체질이기 때문에... 따라서 이전 고산병이 있던 분들은 다음 여행 시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2) 오르는 속도가 빠르거나 3) 오르기 전후 운동을 많이 하면 더 잘생깁니다.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가야 합니다.

4) 술, 수면제, 불규칙한 수면 등을 하면 적응이 잘 되지 않고 고산병이 증가합니다.

5) 심장질환이나 폐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고산병이 잘 생깁니다. 고혈압, 당뇨, 임신은 고산병 발생과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임신한 사람, 특히 임신 초기에 2,500~3,000m보다 높게 올라가는 것은... 저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꼭 필요하다면 산부인과 선생님과 상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리하면,


체질이므로 겪어봐야 압니다

+ 천천히 올라갈수록 안 생기고요,

+ 이런저런 폐활량이 부족해지는 경우에서 더 잘 생깁니다. (정확한 표현은 "숨을 잘 못 쉬면 적응과정이 오래 걸린다"입니다)


여담으로, 축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남미 볼리비아 국대 축구팀이 홈그라운드에서 무적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볼리비아는 나라 전체가 3,000m 이상의 고지대이고, 때문에 여기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저기압과 저산소에 적응이 된 상태입니다. 볼리비아 내 어느 축구 경기장에서 A매치를 하든지 간에 다른 나라 축구팀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죠.


  

4. 어떻게 고산병이 걸렸다는 걸 아나요?


사실 이 부분은 필요가 없지만...(저처럼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내가 고산병이라니!라고 외치실 테니까요) 몇몇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우선 고산병은 고산지대에 도착한 지 수시간 내에 발생합니다.

두통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발생하고, 여기에 덧붙여 식욕부진/구역/구토 또는 불면증/어지럼증/극심한 피로 가 다양한 정도로 동반됩니다.


생명에 위험을 미치는 것은 이 중 1% 내외에서 발생하는 고소 뇌부종과 고소 폐부종입니다.

고소 뇌부종은 원인은 일반 고산병과 같은 뇌부종이나, 심한 형태로 미세출혈, 진행하는 부종이 발생한 경우 극심한 두통과 운동 불능, 의식저하가 발생한 경우입니다. 고산병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 경우 바로 저고도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혹은 병원에 가면 고압 산소 가압기에 넣어 치료하기도 합니다)

고소 폐부종은 마른기침이 많이 나오면서 활동이 심하게 저하되면 의심해 보아야 하고, 진행될 경우 피 섞인 가래가 나오거나 호흡곤란이 진행됩니다. 원인은 폐로 가는 혈관이 심하게 수축되면서 발생하는데, 이때에는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입니다. 저산소증이 교정되면 폐동맥/폐정맥의 수축이 감소하거든요.


위와 같이 심한 고소 뇌부종/고소 폐부종이 의심될 경우 바로 병원에 가시거나, 저고도로 빨리 내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5. 고산병의 예방법은?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입니다. 1,500~2,000m까지는 고산병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언제 올라가든 상관이 없고, 2,500m에 도달하면 1~2일 정도 쉬고, 이후 500m/하루의 속도로 올라가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만약 고산병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위에 덧붙여서, 2,500m 이후 1,000m마다 1~2일의 휴식을 갖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등지에 예방법으로 알려진 과량의 수분 보충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과다 섭취할 경우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6. 고산병 약제들


가장 중요하고 많이 보실 것 같은 부분이네요. 약제의 순서는 교과서적으로 중요한 것부터 나열하겠습니다.


1) 저고도로 대피: 가능하다면 가장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당연하겠죠?)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쿠스코에서 힘들 경우 마추픽추로 도망가시라는 조언들이 나오죠 ㅋㅋ (쿠스코는 3,000m 이상, 마추픽추는 2,500m 이하입니다.) 한 500m 정도 내려가면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2) 산소: 산소를 공급하는 치료법으로, 깡통으로 파는 산소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성상 들고 다니기가 힘들고, 장시간 유지 치료를 하려면 병원에 있지 않은 이상 힘들기 때문에 현실적인 치료방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쿠스코 공항 출구에서 산소캔을 팔았던 것이 기억나네요.  


3) ★다이아막스 정, 아세타졸정 (성분명: 아세타졸라마이드 Acetazolamide): 발음하기도 힘든 이 약의 정체는 이뇨제 (소변을 잘 만들어주는 약제)입니다. 예방과 치료에서 양쪽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약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치료 기전은 뇌부종을 가라앉히는 것과 함께 고산병에 의한 생체 내 변화를 가장 잘 돌려주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중요한 처방인데요, 저는 혜화동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처방받았습니다.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에서도 처방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고 (분당 서울대병원은 황열 접종도 가능하죠!), 국립의료원도 가능합니다.(2018년 다시 확인해보니, 상당수의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에서 가능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여하튼 일선 병의원에서 잘 쓰이는 약은 아닌지라(이뇨제 중에서도 가장 덜 쓰이는 약제입니다. 고산병 특화 약이랄까요) 큰 병원에서 처방이 가능한지 확인 후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1알은 250mg이고, 하루 2번 복용하게 되어있는데요. 예방목적으로 쓸 경우 반알(125mg)씩 하루 두번,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되고, 증상이 있다면 1알로 늘려서 하루 2번 복용하면 됩니다. 그래도 안되면 2알씩 하루 2번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저도 페루 리마 공항에 돌아갈 때까지 매일 복용했고,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아, 약의 부작용이 있는데요. 소변이 많이 나올 수 있고(이뇨제니까요), 아주 드물게 열이 나거나, 신경계에 작용해서 운동장애를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약간의 입마름 외에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4) 덱사메타손 (성분명 Dexamethasone): 부종을 가라앉히는 약입니다. 효과는 좋긴 한데, 용량이 많이 필요하고 장기간(7일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아 2번째로 사용하는 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4~8알을 한 번에, 그것도 6시간마다 복용해야 돼서... 저는 응급약으로만 조금 챙겨가고 먹지는 않았습니다.


5) 소염/진통제들: 타이레놀, 애드빌, 이지엔6 등등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진통제들도 고산병에 의한 두통에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원인을 조절하는 것이 아닌 그저 통증을 가라앉히는 치료입니다. 적당히 필요에 따라 자기한테 잘 맞는 것으로 들고 가시면 됩니다. 여행에서 본 분들 중에는 게보린이 더 좋았다는 분들도 있고, 타이레놀이 좋았다는 분들도 있었네요.


6) 비아그라, 시알리스 (성분명: Sildenafil, Tadalafil): 짧은 여행 중에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비아그라가 정말 고산병에 효과가 있는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폐혈관의 이완 효과가 큰 약인지라 '폐'부종과 운동 개선 효과는 좋은 편이나 두통, 소화불량에 대한 효과는 일정치 않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용량인데, 비아그라의 경우 50mg을 하루 2~3번씩 복용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용량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시알리스의 경우에도 10mg을 하루 1~2번씩 복용해야 하는데... 제가 따로 처방받아본 적이 없어 그런데 두 약 다 꽤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라면 가격 대비 성능을 생각하여 처방받지 않는 쪽을 권장합니다. 심장병 있는 분들에게 함부로 투여하면 안 된다는 건 뉴스 등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 정상인에서도 저혈압이 올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거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7. 치료 정리


우선 스케줄을 짤 때 2,500~3,000m 넘어가는 도시가 있는 경우 일정을 넉넉하게 짜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말씀드렸지만 체질이 가장 중요하므로 고산지대에 가 봐야 내가 고산병이 심한지 안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갔다 왔던 분들은, 고산지대에서 몇년 산 게 아니라면 몸이 적응되는 일은 없으니 이전 고산병이 있던 분들은 다시 고산병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약제 중 다이아막스 정 등을 위시한 대부분의 고산병 치료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병원에서만 처방이 가능합니다. 미리 출국 전에 진료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처방받으실 때 두통약(타이레놀, 애드빌 등)도 같이 처방해 달라고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작용도 같이 설명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산병 예방을 위해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추천되지 않습니다. 코카 차는... 찾아본 자료에는 없었으나 아마도 이뇨작용에 의해 효과가 있지 않나 추측됩니다.


비아그라/시알리스는... 효과는 있긴 한데... 저라면 값싸고 더 효과 좋은 다이아막스를 택하겠습니다.  


8. 맺음말

  

저는 다이아막스 + 소염진통제로 부작용 없이 잘 다녀왔고, 두통은 없었지만 적은 폐활량과 비만으로 움직일 때 힘든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짧은 여행을 다니면서 고산병으로 고생하신 분들을 봬서 이 글을 한국 돌아가면 쓰고자 마음먹었지요.


나름 정리를 했으나 말이 딱딱해서 도움이 될지 이제야 걱정이 되네요. 레퍼런스로는 주로 의학 리뷰 사이트인 uptodate, medscape와 대한내과의학지의 [고소증과 고산병의 치료와 예방] 논문을 참조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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