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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s Jul 14. 2018

고 최요삼 선수와 김수환 추기경의 장기기증이 남긴 것

장기이식의 현황과 미래

2008년과 2009년은 우리나라 장기이식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 발생한 해입니다.


WBO 플라이급 복싱 타이틀 방어전이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열렸습니다. 12라운접전 끝에 최요삼 선수가 어렵게 판정승을 거둔 직후 링 위에서 쓰러집니다. 바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 뇌출혈로 진단돼 수술을 받지만 안타깝게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 뇌사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2008년 1월 3일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고인의 심장, 신장 등의 장기를 6명의 환자에게 기증하게 되고,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이듬해인 2009년 2월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이 있었습니다. 향년 88세로 돌아가신 추기경님은 사전에 각막 기증의사를 밝힌 바, 서울성모병원에서 각막 기증과 이식 수술이 시행되었습니다. 천주교의 수장이었고 한국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고인의 기증 소식은 큰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럼 두 분의 장기 기증 이후,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장기 이식이란


현재 사람에게 이식 수술이 가능한 고형장기는 콩팥, 간, 심장, 폐, 췌장, 소장이 있으며 그 외에 인체 유래 조직으로 분류되는 각막과 골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넓은 범위의 장기 기증으로 볼 수 있는 헌혈까지 포함하면, 의학에서 현재 사람에서 채취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의 범위가 됩니다.


이식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필요합니다. 암이 너무 커서 장기의 상당 부분을 제거해야만 할 때 필요한 경우도 있고, 만성 질환에 의해 장기의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경우 시행하기도 합니다.


콩팥, 간과 같은 고형장기 이식은 큰 수술입니다. 먼저 사체나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빠르고 정확하게 장기를 적출해 내야 하고, 환자에게 혈관과 각종 관들을 미세하게 잘 이어주어야만 새 장기가 작동할 수 있죠. 게다가, 이어 붙이기만 하면 끝이 아닙니다. 내 몸이 아닌 타인의 장기가 들어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면역거부반응을 약물을 통해 억제하여야 합니다. 면역을 저하시키는 위험한 약물이지만 이렇게 해야만 어렵게 받은 장기가 내 몸 면역에 의해 공격받는 허무한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190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발전한 장기 이식은, 현대 의학에서 말기 콩팥병, 간경화, 간암, 만성 심폐질환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서 최고의 생존율을 자랑하는 치료법이 되었습니다. 면역거부반응이 적은 장기를 예측하는 기술, 적정한 종류와 양만 사용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면역억제 치료법, 수술 기법의 발전 등을 통한 이식 성공률의 증가는 20세기 후반 현대 의학이 이룬 가장 빛나는 성과 중 하나입니다.


이식에 쓰이는 장기는 어디서 받나요?


이식받을 장기는 어디서 기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뇌사자 장기 기증이 있습니다. 고 최요삼 선수의 경우가 뇌출혈로 인해 뇌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손상된 뇌사 상태가 된 뒤, 가족 동의에 따라 장기 기증을 한 경우이죠.


이에 비해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기증은 완전한 사망 이후 각막 등의 조직을 기증한 경우입니다. 사후 장기 기증이라고 하며, 장기 기증의사를 미리 밝힌 분이 대상이 됩니다. 혹시 운전면허증에 붙어있는 장기 기증 표시를 보신 적이 있다면, 사후 장기 기증에 동의하신 분들이 되겠습니다. 운전면허증 장기 기증 표기는 2007년부터 기증 동의를 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정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생존시 장기 기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건강한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받아 이식 수술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건강한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받기 때문에 기증자의 안전이 가장 최우선 됩니다. 대 의학에서 콩팥 한,  절반, 골수(정확히는 골수혈에 풍부하게 있는 조혈모세포를 기증받습니다) 등을 건강인에게서 비교적 안전하게 기증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생체 장기 기증은 말기 질환에 걸린 환자의 가족이나 친족이 환자를 위해 기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장기 이식의 현황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장기 이식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2016년 장기 이식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해 총 4,700건의 이식 수술이 시행되었습니다.


이 중 콩팥 이식이 2,200건으로 전체 절반을 차지하며, 간 이식도 약 1,500건으로 상당히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심장, 폐, 췌장, 골수 이식은 각각 일년에 약 100건 내외로 시행되었습니다.


콩팥과 간 이식이 대다수인 이유는 1)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장기 기증을 비교적 안전하게 받을 수 있고, 2) 의학의 발전으로 이식 대기 기간 동안 오래 버틸 수 있는 치료가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콩팥병 환자의 경우 콩팥 기능이 다하더라도 투석 등의 치료를 통해 가까운 가족이나 뇌사자의 장기 기증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콩팥과 간 이식 대기 환자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매년 2,000여 명의 가족이 자신의 장기 일부를 기증하지만 말기 질환의 발생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콩팥 이식을 기다리는 말기 콩팥병 환자는 19,000명에 이르며, 간 이식 대기 환자도 5,000명이 넘는 상황입니다. 가족 친지 중 기증해줄 수 있는 분이 없는 경우에는 평균 5년가량 뇌사자 장기 기증을 기다려야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는 실정이죠. 게다가 심장같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기증받을 수 없는 장기가 필요한 경우에는, 기약없이 뇌사자 장기 기증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족과 친지가 직접 가까운 관계의 환자에게 주는 생존시 장기 이식이 아닌, 일면식이 없는 위독한 환자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뇌사자 장기 이식은 얼마나 될까요? 같은 2016년에 총 573분의 뇌사자 장기가 기증되었습니다. 생존자 기증보다는 그 수가 조금 적지요? 하지만 1명의 뇌사자 장기 기증은 여러 명의 위독한 환자에게 심장이나 폐, 각막과 같이 살아있는 사람은 줄 수 없는 소중한 장기를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분들의 기증으로부터 사경을 헤매고 있던 2,000여 명의 환자가 콩팥, 간, 심장, 췌장, 폐 등의 장기를 이식받았습니다. 뇌사라는 슬픔을 뒤로하고 새 생명을 위해 기증을 동의한 본인과 가족의 너그러움 덕분에 말이죠.


뇌사자 장기 이식 - 고 최요삼 선수와 김수환 추기경의 기증 이후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뇌사자 장기 기증이 연간 100명도 채 안되던 시절이었고, 장기 이식을 관리하는 중앙 컨트롤타워도 부족했습니다. 이러던 장기 기증이 2008년에는 256명, 2012년에는 2012년에는 406명으로 급속히 증가합니다.


그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2008년 고 최요삼 선수의 장기 기증으로 뇌사자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2009년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에는 갑자기 많은 수의 사후 기증 등록 문의가 왔다고 합니다. 실제 2009년도 사후 각막 기증도 평년에 비해 2배로 급증하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영향력이죠. 하지만 뉴스를 통한 홍보만으로는 뇌사자 장기 기증이 무작정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와 효율적이지 못한 시스템 때문입니다.


2010년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의 전체 개정이 이루어진 해입니다. 새 법률과 함께 2가지의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이식 관련 행정이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로 통합됩니다. 2010년 이전까지는 병원에서 따로 운영하거나 몇몇 기관으로 파편화되어있던 뇌사자 판정 > 장기 기증 > 이식 대상자 선정 >  장기 이식의 절차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생긴 것입니다. 최근 이식 대상자 선정의 대형병원 쏠림 등 몇몇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장기이식관리센터의 적극적인 활동 이후 의료진은 이식 수술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제반 과정은 KONOS의 도움을 받는 원활한 진행이 가능해졌습니다.


두번째는 뇌사자 발생 신고 의무화입니다. 이전에는 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하여도 이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인지 아닌지 여부 등에 따라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식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 뇌사가 된 환자는 가족에게 기증의사조차 묻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요.  2010년의 법 개정 이후 뇌사자 추정환자가 발생한 경우 KONOS 등에 의무적으로 알려 전문 코디네이터들이 상담과 동의 여부를 물을 수 있고 나아가 장기 구득 수술까지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이 뇌사자 신고 의무화는 2011~2012년 만에 뇌사자 장기 이식 건수를 2배로 증가시킨 가장 중요한 변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결론 - 앞으로 나아갈 길


앞서 말씀드린 변화들과 높아진 관심 덕에 많은 말기 질환 환자들이 새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길이 남아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뇌사자 장기 기증 수는 인구 백만명당 8.4명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20~25명/백만 명에 비해 아직 낮은 상태입니다. 특히 장기 기증과 관련하여 가장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스페인은 백만명당 35명의 뇌사자 장기 기증률로 우리나라에 비해 3~4배 더 많은 장기 기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하였지만 우리나라도 제도가 정착되고 사회 인식이 향상됨에 따라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장기 기증이 늘어난 국가입니다. 사회 인식의 효과를 가장 뚜렷이 볼 수 있었던 최근의 사건이 고 최요삼 선수와 김수경 추기경의 장기 기증 뉴스 이후 늘어난 장기 기증 의사 등록이었고,  제도 개선을 통한 효과는 2010년 법령과 시스템 개선 이후 늘어난 뇌사자 장기 기증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식과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장기 기증을 통한 큰 선순환에 동참할 수 있다는 신뢰와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장기 이식 전문가들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들도 성숙한 이식 문화에 부응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을 만들어야겠죠.


맺음말


스페인,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는 급진적인 뇌사자 장기 기증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옵트-아웃이라는 제도입니다. 옵트-아웃은 쉽게 얘기하면 뇌사자가 발생했을 때, '장기 기증을 거부합니다'라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모든 뇌사자를 장기 기증의 대상자로 간주하는 제도입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옵트-인 제도 국가에서는 뇌사자 발생 후 본인 사전 의사 또는 가족의 '장기 기증을 하겠습니다'라고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만 기증이 진행되지요. 2017년에는 프랑스도 논쟁을 뚫고 옵트-아웃을 법제화하여 시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 법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기를 빼내가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옵트-아웃제와 같이 윤리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제도가 실행되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사회적 합의가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느 한 정당이 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큰 정치적 손해와 사회적 파장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충분한 논의에 바탕한 시민들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더 나은 제도가 정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이 장기 이식의 인식을 재고하게 해주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통계 자료는 대부분 장기이식관리센터 http://konos.go.kr/konosis 의 통계 연보와 통계청 자료를 참고하였고, 장기이식관리센터 홈페이지에서는 더 많은 정보와 장기 기증 의사 등록에 관한 설명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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