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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방서가 Feb 01. 2024

괜찮다, 괜찮지 않다.

<또 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

2년 반 가량의 시간을 들여 남의 땅에서 정착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소인배의 깜냥으로는 두 번 하기 어려운 경험이라 생각하여 기록을 남기기로 했었다. 가슴 철렁한 기억을 따라가자면야 마치 엊그제 겪은 듯 선명하지만 명백히 시간은 흘러 정제된 기억만 남은 건가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글자가 손에서 겉도는 느낌일 수가 없다. 그때 그 감정들은 분명 날것이었으니까.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열심을 냈던 것도 사실이었고, 스스로 뿌듯했던 것도 맞다. 그러나 자아도취성 교훈을 남발하는 마무리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쓰고 보니 그렇게 됐다. 두고두고 고쳐도 나아지지 않길래 그냥 발행을 누르고도 뒤돌아보면 찜찜한 내 마음이 그대로 보였다. (내가 쓴 글줄 나부랭이를 두고 이렇게 칭하기도 뭣하지만) 여하튼 문학은 아니니 비문학이라 치고, 운문은 아니니 역시 산문이라 해야겠고, 장르로 따지면 생활에서 소재를 차용하였으나 차마 수필이라 칭하기는 어려워 굳이 에세이라 한다면, 내가 쓴 글은 참으로 매력이 없다. 웅크려 쥔 기억을 토해내면 글이 되는 줄 알았는데 쓰고 보니 아니다. 이것 은근히 어렵다.

소설가로는 당대 손꼽는 작가인 은희경님도 역시 그랬을까? 소설을 읽으면 현실과 분간이 잘 안 되는 짜임새며 몇 줄 안 되는 묘사로도 장면을 그려지게 만드는 재주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 산문은 어쩐지 낯설었다. - 물론 그분의 소설을 지금 다시 읽으면 시대에 맞지 않는 감성 덕에 손가락이 길을 잃는 것은 접어두고.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 걸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같은 책들이 내게 그려준 것들과 많이 달라 그리 길지도 않은 책을 수차례 접었다 다시 펴가며 간신히 읽었다.


곰곰 생각하니 내게는 책 자체보다 '은희경의 글'이라는 영향력이 더 컸나 보다. 글을 읽는데 수시로 옛날 옛적 도서관 냄새가 났다. <깊은 슬픔>을 읽고 무엇에 홀린 듯 반해 낡은 책들 사이를 서성였던 기억. 그러고도 혼자 감상에 빠져 <외딴방>이며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연이어 읽었다. 시대도 모르면서 주억주억.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읽고 어느 날 문득 영화관 간판을 봤는데 선이 굵고 인상이 강한 심혜진 배우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꿈쩍 놀란 마음. 첫 해외출장길에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들고 비행기를 탔다가 낯 모르는 외국인 옆자리에서 펑펑 울었다며 동료에게 권해 읽혔는데, 캐나다 교포 출신인 그녀가 "한국 사람들은 연애를 이렇게 어렵게 하느냐"는 뚱딴지같은 감상을 돌려주어 당황했던 일. 스물몇에나 만난 단테도 10월의 어느 날 중도 앞 은행나무 길에 얽혀있다. 책 하나 읽는데 온갖 기억이 들고 났다. 그러고 보면 <또 못 버린 물건들>이라는 제목과 딱 맞는 감상이 아닌지.


낯선 땅에서 오랫동안 풀이 죽었다. 어느 것 하나 마음 졸이지 않고 이루어지는 법이 없는 이국 살이에 지치기도 했다. 영어가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한글로 된 것들은 눈을 질끈 감고 보지 않으려 했다. 누가 내게 요즘도 책을 많이 읽느냐 혹은 글을 쓰느냐 물으면 영어도 잘 못해서 일단은 내 할 일에 집중하려 한다고 말하곤 했다. 마음이 쪼그라드는데 뿌리마저 말리려니 자꾸 힘에 겨웠다. 그러다 이 책이 내 담을 훅 무너뜨렸다. <또 못 버린 물건들>처럼 한 짐 가득 싸서 가져온 책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마음 챙김이란 게 별 것 있나' 하고 생각했다.


내 모국어가 일상의 장벽이 되더라도 자꾸 쓰다듬고 아껴줘야지. 이국의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해 냉가슴 앓는 마음도 알아주고,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글도 써야지. 그러다 보면 진짜 괜찮은 날도 오겠지. 그러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그때 말해야지 다짐했다. 그러니 오늘은 독후감을 빌어 '괜찮지 않은 마음'을 고백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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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에 나오는 이 장면은 나 자신의 습관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글을 쓰다 말고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다소 괴상해 보이는 습관? 그게 아니고 연필을 지나치게 힘주어 쥐는 것, 글씨를 꾹꾹 눌러쓰는 버릇 말이다. 그 때문에 학창 시절 언제나 오른쪽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툭 튀어나온 옹이가 있었고 필기를 하다 보면 그곳이 눌려 벌겋게 되곤 했다. 당연히 글을 쓰는 속도도 느렸다. 좀 느리게 쓰면 어때. 그런데 문제는,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문장 한 개를 다 옮겨 적지도 못했는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 문장을 지워버린 뒤 다음 문장을 이어가는 식이었다.”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 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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