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약방서가 Mar 10. 2023

막연한 상상만으로 그냥 하지 말라.

<그냥 하지 말라> & <상상하지 말라> /송길영

송길영님은 본인을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라고 칭한다.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염두에 두신 것은 아닐 텐데, 관심 있는 것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과정을 통해 본인의 업을 정의해 나간 성공적인 표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책을 세 권 쓰셨는데, 책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줄로 서있다. 첫 책은 <한 우물에서 한눈팔기>로 본인의 커리어 전환에 대해 쓰셨으므로 결이 다르다고 해야겠지만. 가장 최근 책은 <그냥 하지 말라>로, 이미 빅데이터의 물결이 크게 인 다음 ‘그러니까 그 무엇도 그냥 하지 말라, 생산하는 데이터가 개인을 대변한다’는 요지를 말 그대로 데이터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설명하셨다. 귀에 팍 꽂히도록. 그전에 출간된 책은 <상상하지 말라>였다. 창의력이 대세인 시대에 상상하지 말라니?! <그냥 하지 말라>를 읽고 그냥 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가 움직여야 하는 그 방향은 어떻게 정해야 하나 (Start with why 하려고 해도 그 Why를 어떻게 정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 <상상하지 말라>를 함께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상상하지 말라, 관찰하라.

지금까지의 삶에서 형성해 온 이해는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으로 켜켜이 쌓이지만, 때로는 나의 기득지가 지금의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중략) 이 상황을 타개할 해법은 무엇일까요? 미친듯한 크리에이티브? 아뇨, 저는 오히려 상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함께 모여 자신의 느낌을 공유하는’ 본래 의미로서의 상식 common sense을 계속 현재시제로 업데이트해 유지하려면 상상하지 말고 관찰해야 합니다. <상상하지 말라>

작가는 명절에 오가는 불쾌한 담화의 원인을 관찰의 부재로 정리한다. 멀리 사는 조카에게 무슨 큰 관심이 있었을까. 명절이나 되어 눈에 보이니 그제야 관심 있는 척하려고 관찰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고작 “공부 잘하냐” “취직은 했냐” “결혼을 언제 하냐”라는 것이다. (잠재) 고객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가 던지는 어떤 메세지라도 구겨 버리는 것이 더 나은 명절 단골 질문이 되어버릴 수 있다.


더하여, 제대로 관찰하지 않으면 상상 속에서 헛다리를 짚게 마련이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고객이 줄을 서는 대박 서비스의 창시자가 되는 상상을 하겠으나 대개는 관심을 끌지도 못하는 메세지만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으레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 말고, 대박 창의적이라며 미리 김칫국 마시지 말고, 가용한 데이터가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라고 말한다.

프로스펙티브 방식 하에서는 데이터를 모으고, 관리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이해하는 데이터 해석능력이 반드시 필요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생존확률과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환자 동향이 어떤지, 주식 현황이 어떤지 정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죠. 이것이 말하자면 데이터 리터러시 data literacy입니다. 그러니 ‘어떤 근거가 있는가’를 의사결정의 출발점으로 삼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말 그대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입니다. 투명한 정보를 관리하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인텔리전스를 만들면 우리 인간 한 명 한 명이 브레인이라는 슈퍼컴퓨터를 지닌 엄청난 존재이므로 개인들의 연합으로 집단지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 <그냥 하지 말라>


SNS가 전부는 아니라서.

빅데이터의 상용화 정도에 차이가 있었던 탓인지 2015년 초판인 <상상하지 말라>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사례도 있다. SNS 안에서만 사람들을 보면 한국사람 모두가 SNS에 달려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당장 내 주위만 봐도 SNS를 일절 하지 않거나 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95%이다. (SNS를 하다니, 한가한가 봐? -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그러니 초록창의 서비스가 검색어를 통째로 공개해주지 않는 한, SNS가 한국인을 대변한다고 믿으면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가만히 보면 그들의 목에 하나같이 회사의 사원증이 인식표처럼 걸려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식후 마시는 커피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라, 내가 아직은 주류사회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자랑하며 잠시 위안을 얻는 일종의 제례의식 ritual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커피전문점 중에서도 굳이 비싼 데를 갑니다. 사원증 목걸이와 비싼 카페의 테이크아웃용 컵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주는 일종의 지위재인 셈입니다. - <상상하지 말라>

직원수가 적은 외국계 영세기업에 다니던 나는 회사가 빌딩을 소유하지 않아 화장실만 가려고 해도 네임텍을 들고 다녀야 했다. (안 들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문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직원이 몇 명 안 되니 종종 사장님도 만남ㅋ) 잊어버릴까 봐 에이씨- 하면서 목에 걸고 나오던 네임텍이 실존적 상징이라니. 게다가 안타깝게도 목걸이에 회사이름 대빵 크게 쓰여있지만 아무도 무슨 회사인지 모른다. 아무튼 값비싼 커피를 샀다는 사진 속 그 사람은 내내 캔틴에 준비된 커피만 마시다 어느 특별한 날, 단 하루, 값나간다는 커피를 마셨기에 사진을 찍고 게시물을 올렸을 확률이 높다. 네모 안과 네모 밖은 괴리가 크다.

유모차계의 벤츠’라는 스토케를 몰고 다니면 또래 아이엄마들이 부러워합니다. 남자들이 차 자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군요.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비의 이유가 기술 때문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함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기왕에 지르는 것, 부동산처럼 자산으로 남는 게 아니라 한 번 사용하고 마는 용도에 화끈하게 돈을 쓸수록 쇼는 더욱 화려해집니다. - <상상하지 말라>

유모차도 그렇다.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은 유모차도 ‘차’라며, 아빠에게 선택을 일임했다. 우리 알콩씨는 천하의 아들바보라 세상 모든 유모차를 조사할 기세로 엑셀시트를 만들었다. 플라스틱 바퀴가 아닌 고무바퀴일 것, 충격 완화 성능 테스트 결과가 있을 것, 유모차의 차체가 너무 낮지 않아서 아이가 적응하기 쉬울 것, 100일 전에는 완전히 눕혀 태워야 하니 등받이가 180도부터 조절 가능할 것 -약간의 굴곡도 용납 못함, 엄마랑 마주 보고 탈 수 있도록 양대면이 가능할 것, 중형차 트렁크에 실릴 것 등의 혀를 내두르는 조건을 나열하여 점수를 매겨 구입했었다. 우리는 다른 결론을 내렸지만 이와 비슷하게 사고한 결과 스토케가 경제적이라고 생각한 가족도 적지 않았다. 유모차는 아이의 안전과 직결되는 제품인 만큼 온전한 사치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네모칸 안의 사진에는 이런 구질구질한 선정제외기준은 언급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SNS 데이터의 한계다.


내 비즈니스가 SNS를 기반으로 돌아간다면, SNS 데이터를 면밀히 보기는 해야 할 것이다. 한 개인이 데이터를 양산할 때 그 이면에는 어떤 동기가 내재하는지 조금만 고민해 보았으면 더 의미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 사실, 송길영님네 직원이 깨진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서 ‘그냥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쿨해서가 아니라, 내가 휴대폰 액정 안 고치는 이유를 사장인 너님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분석을 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가장 먼저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합니다. 그 안에 사회의 흐름과 중요한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분석이 인간의 욕망을 파악하는 일인 만큼, 인간을 심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적 소양이 필수적입니다. <상상하지 말라>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람의 마음을 캐낸다는 분이 데이터 자체의 한계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계시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2015년으로부터 벌써 만 7년이 지나며 더 많은 조언, 더 유의미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깊어지셨기에 <그냥 하지 말라>와 같은 책을 추가로 저술하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팔기 위해’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관찰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도 공감이 되었다. 속으로는 나도 굳이 먹을 필요 없는 영양제는 가차 없이 빼드리는데 잘하고 있는 걸까 근자감 가졌음을 함께 고백하며.


관찰하고 그를 위해 고민을 끝까지 할 때 부가가치가 극대화됩니다. 그러니 더 오래, 더 천천히, 그리고 더 깊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얼마나 많이 팔지 고민하던 생각의 프레임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그것을 충족시킬지로 옮겨가야 합니다. 선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고민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빅데이터가 굉장히 쓸모 있는 수단이 됩니다. 빅데이터로 분석해서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진정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면 기업의 가치로 곧장 연결될 겁니다. <상상하지 말라>
여러분의 메시지에 공감한다면 사람들이 수용하는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제로 이에 부응해 많은 브랜드가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 만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에 걸맞은 철학적 합의도 만들어지고 있고요. 따라서 우리는 이에 부합하는 작업을 하면 됩니다. 깊은 걸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의미의 밀도에 사람들이 매료되고 사방에 전달할 겁니다. <그냥 하지 말라>


<상상하지 말라>와 <그냥 하지 말라>를 읽고 난 후 생각을 정리해 보자면.

SNS는 사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동시에 만인에게 공개되는 플랫폼인 것도 맞다. 누군가가 개인의 SNS를 바탕으로 어떤 판단을 내린다 해도 ‘내가 내 SNS에 무엇을 올리든 당신이 무슨 상관인가요?!’라고 대꾸할 여지가 적다는 뜻이다. (’ 없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고.) 그러니 적어도 공개하고 싶은 개인적인 영역의 넓이와 깊이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겠다. HR에서는, (고용되기를 희망하는 개인에 한하여) SNS를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라고 한다. 특히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일은 금물이며 개인적인 비즈니스와 관련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아도 마이너스라고 배웠다. -현실은 다를 수 있음 주의. 실무경험 없음.


또, 나를 정의하는데 필요한 어떤 콘텐츠라면, 설령 당장은 다른이의 관심에서 벗어나더라도 (aka 검색이 안되더라도) SNS에 꾸준히 올려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아침을 기록하는 글을 꾸준히 올린 적이 있었는데, 나를 아끼는 누군가가 ‘남의 아침은 그리 궁금해하지 않으니 혼자만 간직하라’고 조언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수긍하여 중단하였으나 내가 드러내고 싶은 나의 특성이 ‘성실한’, ‘꾸준한’, ‘노력하는’, ‘매일 성장하는’ 등과 관련이 있다면 의미 있는 기록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단,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이 관찰을 통해 얻어진 타인의 욕망과 일치할 때 비로소 시장가치가 생기는 것이겠지만.


남들이 잘하는 걸 따라 하는 걸 좋은 말로 벤치마킹이라 하죠. 그러나 이제 그 행위는 시류에 편승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벤치마킹은 리스크를 피해 가는 요소로 쓰셔야 해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구글에 검색해 본 다음, 같은 게 나오면 안 하는 것입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걸 해야지, 나오는 걸 하는 순간 카피캣이 됩니다.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하면 나만의 신용이 쌓일 테고 그것이 브랜딩이 되겠죠. 저는 이것이 진정성의 시대에 개인의 덕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들이 하는 건 하지 않는 것, 반골이죠. 저는 이것을 존재의 의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다르니까요. 그리고 소중하니까요. <그냥 하지 말라>

그리하여 결론은 “막연한 상상만으로 그냥 하지 말라, 진심으로 관찰하고, 통찰력 있게 분석하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움직여라”쯤 되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름이 아닙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일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