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고 쌓인, 지난 몇 달 간의 긴 호흡
부담스러웠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는 지인의 안부가, 어쩌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물어오는 나에 대한 질문이, 이렇게 작은 자극과 변화에 움찔움찔하고 있는 내 자신이 좀 부담스러웠다.
종종 무섭고 초조했다.
졸업을 앞두고 끝과 새로운 시작의 중간 어딘가에 서있지만 여전히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불안한 모습을 들킬까, 나도 모르는 사이 꽤 작아져버린 내 모습을 들킬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를 관통하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아직 찾는 중이라고, 고민 중인데 뭐가 나한테 맞는 길인지 잘 모르겠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매번 쉽지만은 않았다.
"넌 어딜 갖다놔도 잘 해낼거야, 넌 알아서 잘 하니까 걱정은 크게 안 해, 또 기회가 있을거야, 힘내, 화이팅"
덤덤히 전한 나의 근황에 주변 사람들은 심심한 응원과 위로를 보내왔다. 몇 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긍정 가득, 희망 가득한 말들이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고마움과는 별개로 그 말들이 내 마음 저기 깊은 곳까지 와닿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으로 아니라고, 이제보니 내가 뭘 잘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꾸 나 믿지 말라고, 내 걱정 좀 해달라고 징징대고 싶었다. 생각보다 나는 그렇게 똑부러지는 똑순이에 멘탈짱 긍정킹도 아니고, 오히려 남들 다하는 고민에 혼자 주저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인간 개복치가 따로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솔직해지기 어려웠다.
별거 없는 내 밑천을 이렇게 다 드러내도 될까, 내가 봐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지금의 내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 과연 매력적일까, 다같이 고군분투하는 시기인데 이런 내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생기와 반짝반짝함을 잃은 쳐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그렇게 나를 인정하고 나면 이게 정말 나의 한계가 되어 나를 규정 짓는 무언가가 되진 않을까 겁이 났다.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진걸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혼자 시간을 보낼 때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내 머리 속은 항상 저 질문들의 연장선에 있었다. 정해진 답이 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보이고 싶지 않다면서 누군가는 이런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이상한 아이러니로 가득했다.
꽤 오랜 시간 바라왔던 그 무언가로부터 멀어지던 날, 함께 찾아온 허무, 공허, 무력감에 한동안 마음이 참 시렸다. 그간 나름의 최선을 다해왔으니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토닥토닥 위로했지만 마음의 평화는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애써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외면하고 싶었던 상황이 눈앞에 턱 펼쳐지니 이를 온전히 감당하기도, 툭툭 털고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기도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다. 체하기라도 한 듯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소화가 안 되다 보니 불안했고 또 버거웠으며, 쉽게 잠에 들 수도 없었고, 말도 안되는 순간에 갑자기 눈물을 툭 쏟기도 했다. 이를 테면 무려 치킨을 먹다 말고 갑자기 우는 상황이랄까.
사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나의 못난이주의보와 쭈굴력이었다.
내 감정과 생각들을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해 시작된 나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들은 자기 반성을 넘어 어느새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졌고, 이 의심은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엄격한 잣대와 자기 부정 속에서 난 그저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닿기 일쑤였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를 반복하며 작아지고 또 작아지곤 했다. 예쁘게 봐주기 힘들었다. 참 못났다. 맘에 안든다.
몇 달이 흐른 지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도 이 여행은 당분간 쭈욱 지속 될 듯 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방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나는 꽤 행복하다. 이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무언가를 위해 일부러라도 용기를 내보고, 반대로 부딪쳐보고 있는 나의 변화가 기특해서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과정 속에서 맞닥뜨리는 우연같은 기회, 인연, 긍정적인 자극들이 참 감사한 요즘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대한 명확한 답을 구하지 못한 것은 전과 다를 바가 없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은 더 설레는 마음으로 운명같이 다가올 내 인생의 여러 우연들을 믿고 싶어졌다. 그런 우연들을 이어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또 부여하다 보면, 운명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렇게 다시 긍정을 찾고, 행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우리' 덕분이었다. 내 곁에서 기꺼이 '우리'가 되어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일깨우고 용기를 주는 데 아낌이 없었다. 명쾌한 해결책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나를 묵묵히 지지해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여러모로 서툴고 완벽하지 않아도 예쁘게 지켜봐주고, 밑도 끝도 없이 믿어주는 나의 '우리'가 있었기에나는 나를 다시 마주하고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여전히 그들의 소중한 친구이자 한결같은 제자였으며, 당신들의 자랑스러운 딸이고 손녀였다는 걸 깨달았기에. 이 방황의 끝에 대한 걱정, 불안 대신 기대와 설렘의 씨앗을 심어준 그들에게. 이제는 다시 기지개를 크게 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결국 방점은 함께하는 사람들 사랑 속에서 찍히는 게 아닐까.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결국 모든 건 사랑이야."
나의 저 워딩이 오글거리는지 저 한마디에 다들 웃음이 빵 터진다...
(나는 완전 진지한데...)
사랑은 좋은 것♥
-몇 달 간의 길고 긴 일기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