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물음표를 움켜쥐고 살아야지
감사하기!
사진: Unsplash의 Yeshi Kangrang
요즘은 어떤 단어에 내가 눈길을 많이 주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10대 때 나는 '20살', '청춘'이라는 단어에 가장 설레어하고 좋아해서 그 단어만 들어가는 글귀면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고, 심지어는 노트에 적어보기도 했고, 제목이 들어간 책을 사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뭐, 인생은 그때만큼의 기대나 생각, 계획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흘렀지만.
생각과 정말 다르게 흘러가는 그 나름대로의 20살을 보내면서도 혼자 일본 여행을 가면서까지 내가 그토록 고대했던 '20살'을 잘 떠나보내려고 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정말로.
그때 일본에서 혼자 작은 노트를 사서 머물던 집(친척 집) 근처 공원에서 한참을 앉아 고즈넉한 풍경 속에 쉬면서 이어폰으로 흘러들어오는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를 끄적였는데... 정말 한 번씩 보면 부끄러워 숨고 싶어 지는 메모다.
'20살'이라는 것에 혼자 정말 난리를 쳤던 거 같다. 왜 그랬을까?
솔직히 그 이후에는 나이에 정말 별 관심이 없고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 와중에 생기는 일이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느라 그렇게 나이가 먹어가는 것에 대한 별 감흥이 없어서 그저 '내가 지금 몇 살이네?!.'하고 잊어먹었는데 말이다.
유독 20살에만 집중을 했던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어떤 울타리를 벗어나 어떻게 흘러가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란 착각(?)때문이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힘들어도 깨져도 뭔가 알 수 없는 담을 넘어 자유롭고 싶어 했다. 물론 무서움도 많았지만. 그런 시절에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책이 바로 '청춘표류(靑春漂流)'.
와아. '청춘'과 '표류'라는 단어의 만남이라니.
뭔가 너무 안타까운 맘이 들지만 응당 그러하겠다는 동의가 되었달까.
그때는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게 한정적이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혼자 심취해서 끝까지 읽었던 거 같다. 당시에 학교 방학 때마다 한 번씩 짬 내서 가족들과 일본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때 사 온 아끼는 공책 표면에다가 책의 한 문구를 멋들어지게(?) 써 놓을 정도로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또 저자처럼 살고자 하는 동경이 있었달까.
이제까지의 경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을 가진 적이 두 번 있으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를 여행길을 나선 적도 두 번 있다. _프롤로그 중에서.
다치바나 다카시.
일본의 대표적인 그리고 압도적인 지(知)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저명한 저널리스트라고 알고 있다.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떻게 알게 되고 이 분의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은 안 난다. 이 책 말고도 여러 책을 쓰셨는데, 가지고 있는 건 이 책과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읽은 책도 엄청나시고 쓴 책도 여럿. 역자의 말을 보면, 이 분에 대한 반응도 다양한 듯하다. 정말 따라가려는 엄두보다도 감탄만 나오게 하는 분인데, 이 분도 자신의 '청춘'시절에 '표류'했다는 것을 프롤로그에서부터 밝혀주고 있다. 그것도 다 지나고 보니 미혹되지 않는다는 그 40, 불혹(不惑)이었다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이따금씩 훑어볼 때, 또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매번 조금 놀랍기도 하면서 안도감도 든다.
내 자신도 무모하게 살았다.
때문에 이렇듯 변변치 못하다.
망설임과 방황의 시간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많았다. 인내력 역시 부족했다. (중략)
이제까지의 경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을 가진 적이 두 번 있으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를 여행길을 나선 적도
두 번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여행지에서 병을 얻어, 돈도 떨어지고 치료할 방법도 없기에,
싸구려 여인숙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안 되겠구나.'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조차 후회하지는 않았다.
인생이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나도 모르게 묘하고 차가운 체념의 기운이 퍼져 나왔다. 이제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기에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p.6-7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런 책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별로 기대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프롤로그에서 독자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자신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그렇지만 진정한 인생론은 말보다는 실천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생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이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대로 하나의 인생론이 되어버리는 그런 인생,
그런 인생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p.9
20대 청춘에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던 이 남자가 지금은 아주 긴 안목으로 인생을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다_ 사진작가 미야자키 마나부 편에서
저자는 11명의 사람들과 만나고 인터뷰한 내용들을 엮어냈다. 정말 이런 일을 하기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생각하지 못했던 일도 여럿 있었다. 11명 모두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었고 각자의 일에 어느 정도의 경지에 다다르기도 한 사람들.
칠기 장인(이나모토 유타카), 나이프 제작자(후루카와 시로), 원숭이 조련사(무라사키 타로), 정육 기술자(모리야스 츠네요시), 사진작가(미야자키 마나부), 프레임 빌더(나가사와 요시아키), 수할치(마츠바라 히데토시), 소믈리에(다사키 신야), 요리사(사이스 마사오), 염직가(도미타 준), 레코딩 엔지니어(요시노 긴지).
각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참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과 인내와 노력의 결정판들이다. 예전에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이 오래 지나서도 여전히 아등바등하는 가운데 읽게 되니 새삼 그들의 선택과 집중, 인내와 노력, 열정에 더 깊은 감탄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사진작가 미야자키 마나부는 현재는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잠깐 검색을 해보니 지금도 활동하셔서 그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로그 글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첫째로, 그가 사진을 다루는 사람이어서 더 관심이 갔고 둘째로는 각 챕터를 열며 그들의 이름 옆 작은 소개란에서 서른네 살의 미야자키 마나부가 두 번에 걸쳐 큰 병을 앓아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는 점이 더 집중해서 보게 만들었다.
사진 촬영보다도 촬영을 준비하는 단계에 더욱 많은 시간이 든다.
"가끔은 정말 이 일이 싫을 때가 있어요, 몇 번이나 어째서 나는 이런 곳에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죠. 아무런 수확도 없이 수십 일 계속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p.112
산길을 걸어가며 설명해 주는 그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작은 상처가 나무 표피에 나 있었다. 세심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보일 정도로 작은 상처였다. (중략) 아주 작은 자연의 변화에서도 동물의 생태를 읽어냈다. 함께 걷는 사이에 내가 무척 무지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창피해졌다. p.113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해요. 기록을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계속 지켜보기만 해요. 결국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중략) 찍기 전에 철저하게 지켜봐야 해요." p.115
압도적인 지(知)의 세계를 보여주는 저자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중에 스스로의 앎에 창피함을 느끼게 할 정도의 자기 세계의 깊이라니. 그런 그도 여러 어려움을 지나 첫 번째 병이 나아갔다고 생각할 즈음, 또 다른 병이 찾아올 때의 좌절감에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무너졌었다니. 그래도 결국 살기 위한 몸부림을 끝내 잘 마치고, 긴 호흡의 작업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니. 인생의 역동적인 모습에 경이감을 느낀다. 사진작가 미야자키 마나부만이 아니라, 여기서 만나게 되는 모두가 그런 자신의 길과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조금씩은 상식을 벗어난. 한편으론 엉뚱하고 주변 세계와 사람들에게 의아함과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며 시작된.
그들은 모두 '수수께끼의 공백시대'를 '제대로' 보낸 사람들이었다. 어언 30년가량의 세월이 지난 어찌 보면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인데도. 사람이 산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저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 제대로 수수께끼의 공백시대를 거친 사람들이 그 기간을 어떻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보냈는지를 물어보고 듣고 전해주고 있었다. 계속해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고, 위하고, 하려는 청춘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