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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Nov 18. 2024

고이고이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기념전에 아이와 함께 가려고 보니..

해마다 봄, 가을이 되면 성북동으로 목을 길게 빼고 소식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간송미술관의 전시회가 언제 열리는지, 올해는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생기고 후원회원이 된 뒤에는 그럴 필요 없이, 메일이나 문자로 오는 소식을 편하게 받으면 되었지만, 오랫동안 간송미술관의 전시는 여러 사람 애타게 만들고 감질나는 전시회로 유명했다. 


간송미술관의 봄, 가을 전시가 시작된 것은 전형필 선생이 돌아가시고 9년 뒤인 1971년 가을부터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5월 말과 10월 말 딱 2주씩만 전시가 진행됐다. 내가 처음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간 것이 2008년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크게 세 번 놀랐다. 가장 먼저, 미술관에서부터 성북초등학교를 지나 도로까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놀랐다. 다음으로, 국보와 보물이 한두 점도 아니고 한 작품 건너 하나씩 있는 그 엄청난 유물을 단 한 사람이 모은 거라는 것에서 또 한 번 놀랐다. 마지막으로 그 전시가 무료였다는 점에 놀랐다. 이 엄청난 전시가 공짜라고? 지방에서 올라온 촌스러운 문화빈민이었던 당시의 나에게 간송미술관은 모든 것이 놀랍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2008년에 간송미술관을 찾은 것은 ‘미인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전시 시작 시간 한 시간쯤 전에 가서 줄을 섰는데, 이미 내 앞에 50여 명쯤이 더 서 있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에겐 일종의 동료애 같은 게 생겨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내 뒤에 서 있던 중년 아저씨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막 인천공항에서 오는 길입니다. 미인도가 전시에 나온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비행기를 예약했어요. 미국에 살거든요. 살아생전 미인도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데,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전시 보고, 다시 비행기 타러 갑니다.” 


뭐, 자세한 상황들은 잊었지만 양복을 차려입고, 서류가방 하나 들고 간송미술관 앞에 줄 서 있는 아저씨를 쳐다보는 사람들 모두 경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앞에 있던 분들이 서로 그 아저씨더러 앞으로 오라고, 그렇게 멀리서 왔는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오래 보라고 손짓을 했다.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보면 안 될 것 같다고.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면서 말이다. 


그 당시 간송의 전시는 그런 것이었다.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가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니었고, 어쩌다 시간을 맞춰 간다고 해도 최소 한 시간은 줄 서서 기다리는 게 기본이었던 그런 전시 말이다. 간송 작품이 대량으로 바깥에 나온 2014년 DDP 전시 때는 예약도 가능했고, 주차도 편했고, 여러 가지로 작품을 만나기 좋아졌지만, 뭐랄까, 설렘이 줄어들었달까. 그 낡은 건물에 걸려 있던 작품들이 깨끗한 전시 공간에 놓인 걸 보니, 뿌듯하면서도 낯선 감정이 들더라. 그곳에 걸린 <미인도>는 뭐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세우는 게 싫지는 않을까, 저어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사람 촌스러운 건, 참 어찌 안 되는 모양이다. 


규모 면에서야 2014년에 열렸던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 기념전이 최고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전시는 2015년 <화훼 영모>전이었다. 그림을 몰라도, 누가 그린 건지 몰라도, 그림 그 자체를 기쁘게 즐길 수 있었던 전시였다. 고양이를 좋아하니, 특히 김홍도의 <황묘농접>, 변상벽의 <국정추묘> 같은 작품들 앞에 오래도록 머물렀지. <황묘농접> 그림을 처음 보여 줬을 때 아이가 그랬다. 


“엄마, 우리 도토리(우리 집 냥이 이름)랑 똑같아!” 


2015년 전시 이후로 바쁘게 사느라 한동안 전시장을 못 찾다가 2024년 봄에 보화각을 보수해 새로 개관한 기념전에 다녀왔다. 2014년에 태어난 아이와 함께 갈 수 있어서 기뻤다. 수장고 옮기다 발견했다는 보화각 설계도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를 보며, ‘와, 내 관심사와 이렇게 다르다니!’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며칠 전, 2024년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기념전시회에서 세 번째 <미인도>를 만났다. 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보고 생각했지 싶은, <미인도> 단독 전시가 반가웠다. 간송미술관 전시 때보다 훨씬 가까이 가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고. 



멋진 작품들을 보고 나니 더 안달이 났다.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전시 막 내리기 전에 아이와 다시 가 볼 생각이다. 물론 걱정도 된다. 이번 대구 전시에 나온 작품 중 국보가 12점, 보물이 30점이다. <미인도> 하나만 봐도 정신이 얼얼할 텐데, 그 엄청난 작품들을 한꺼번에 소화시키려다 탈 날까 두려울 지경이다. 


너무 많이 봐서 오히려 뭐가 귀한 줄 모르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나 너무 엄청난 가치라서 무거울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같은 엄청난 작품들 속에서 귀여운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이나 <백자사옹원인> 같은 걸로 가볍게 균형을 잡아 주면 될 것 같다. 아이와 함께니, 혜원의 작품집 같은 건 그냥 건너뛰어도 괜찮겠다. 굳이 지금 안 봐도 되니까. 



이렇게 멋진 작품들을 고이고이 간직해 전해 준 간송 선생께 사무치는 감사의 마음 올린다. 간송 작품의 첫 바깥 전시였던 DDP 전시 때 유홍준 선생이 그랬다. “명작은 어디 놓아도 명작”이라고. 대구에서도 간송의 소장품은 제대로 빛나더라. 이 가을에 제대로 명작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전시에 또 갈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 고이고이 

: ‘고이’를 힘주어 이르는 말. 곱고 예쁘게. 소중하게, 또는 정성스럽게. 고스란히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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