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진의 그림책 <명애와 다래>에는 할머니와 손녀가 친구가 되어 노는 장면이 나온다. 편찮으신 할머니를 챙기느라 여유가 없는 엄마, 아빠에게 다래는 “나도 엄마 아빠랑 놀이동산 가고 싶단 말이야!”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러나 어린 다래도 집안 사정을 알면서 막무가내 그러지는 못한다. 어린이들은 대개 그렇다. 어른보다 마음이 곱다. 꿈에서 어린아이가 된 할머니 ‘명애’와 신나게 놀았고,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할머니를 한결 가깝게 느낀다. 그야말로 판타지. 우리집 식탁에서 펼쳐지는 흔한 장면은 이렇다.
“할머니, 그거 내 거예요!”
“아니야, 내 거야!”
식탁에서 할머니와 손자가 서로 자기 거라고 밀고 당기는 것은 떠먹는 요거트다. 피아노 학원에 다녀온 아이에게 간식으로 요거트를 내줬더니, 그걸 또 드시겠다고 어머니는 욕심을 내신다. 장 기능이 예전만 못한데다가 물을 잘 챙겨 먹지 못하게 되면서 어머니에겐 변비가 생겼다. 유산균을 챙기고 저녁마다 고구마를 드시게 하고, 중간중간 유제품을 챙겨도 그랬다. 수시로 물을 드시게 해도 우리집에 오신 뒤 한동안은 변비로 고생을 꽤 하셨다. 그러고 보니, 그때만 해도 변을 못 보시는 걸 걱정하던 때였네. 언제 변을 꺼내 놓으실지 몰라 불안한 요즘에 비하면 행복한 걱정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손자가 간식 먹는 걸 보고는 조금 전에 당신이 요거트 하나를 깨끗이 드셨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그러시는 거다.
“왜 할머니만 맛있는 거 주고, 나는 안 줘?”
아이는 아이대로 원성이 자자했다. 곧 밥 먹을 시간이라고 자기한테는 요구르트도 못 먹게 하면서, 할머니한테만 자꾸 맛있는 걸 드리는 것 같아서다. 자기도 두 개, 세 개 먹고 싶은데 딱 잘라 안 된다고 하면서 할머니한테만 넉넉한 것 같으니 자두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할머니가 함께 살기로 했다고 말했을 때, 아이는 펄쩍 뛰면서 좋아했었다. 자기를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 모습만 생각하니 그랬다. 할머니가 놀아도 주고, 맛난 것도 해 주시고, 안아도 주고 보듬어 주실 것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실망이 화로 넘어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게 된 아이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저건 뭐냐?”
한 달에 한 번, 별 보러 천문대에 다녀오는데, 아이가 늦은 저녁으로 치킨 먹는 모습을 본 할머니가 묻는다. 평소라면 주무실 시간인데, 아이가 돌아온 시간이 9시가 넘은 터라 그날 따라 식구 모두가 취침 시간이 늦어졌다. 치킨은 삼키지 않고 뱉으시는 음식이라서, “어머니는 더 맛난 거 드릴게요.” 하고 부드러운 간식을 준비하는 참이었다. 잠깐 부엌에 와 있는데, 아이가 “엄마~~” 하고 다급하게 부른다. 얼른 식탁으로 가 보니, 어머니는 그새를 못 참고 아이가 먹는 단무지 그릇에 맨손을 담가 한입 가득 단무지를 밀어넣고 계셨다. 어머니 치아로는 먹기 힘든 음식인데, 아삭아삭 소리가 몹시 맛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먹다 말고 망연한 얼굴로 앉아 있고, 할머니는 단무지 국물을 뚝뚝 흘리며 옆에 서 있다. 팔순 넘은 할머니와 열 살 손자의 실랑이라니, 남 일이라면 그저 하하 웃을 만한 장면이겠다.
“나 안 먹어!”
젓가락을 내려놓는 아이를 달래고, 어머니 입에서 단무지를 빼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어 드렸다.
“어머니, 그거 딱딱해서 못 드시는데, 왜 그러셨어요?”
대답을 바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답답해서 하는 소리지.
“적절하게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운 치매 환자이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고 비하한다는 것을 느끼는 감정은 남아 있습니다. 치매 환자는 질병의 원인, 진행 정도, 동반 질환 등 여러 변수로 인해 모두 다르므로 다양한 의사소통 기법을 활용해야 합니다.”
<치매상담콜센터자료집>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칭찬하는 말, 가여워하는 마음보다는 비난하고 혼내는 말이나 감정에 훨씬 더 잘 반응한다는 건 나도 겪어서 안다. 그래도 이런 순간들에는 나도 모르게 “아이고, 어머니~”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야 만다. 그러면 어머니도 가만 있지 않으신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니?”는 기본이고, 손에 묻은 음식을 닦아 드리거나 옷에 흘린 음식물을 닦으려고 하면 “날 죽일라고 이러네.” 하신다. 마땅치 않다는 표현이다.
음식을 드시다가 뱉는 일은 인지 장애 진단 초기에 가장 심하셨다. 그래도 보고 있을 때는 안 뱉다가 내가 아이 아침을 챙기거나 학교에 입고 갈 옷 내주느라 잠깐 식탁을 떠나면 여지없이 바닥에 음식을 뱉어 흩뿌려 두시곤 했다. 지키고 앉아서 내내 쳐다보지 않으면 무조건 뱉어 버리셨다. “엄마~~” 하고 아이가 다급하게 불러서 돌아보면 여지없었다. 씹던 밥을 국그릇에 뱉어 놓고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니?” 하시곤 했다. 어머니가 뱉지 않고 삼키는 음식들을 알아내고, 다 드실 때까지 지키고 앉아 챙겨 드리고서야 겨우 식사를 식사답게 하실 수 있게 됐다. 그러기까지 3개월 정도, 식탁 밑에, 화장실 가는 길에, 방 안에 몰래몰래 뱉어 놓은 음식들을 찾아내 닦아 내는 숨바꼭질이 계속됐다.
“엄마, 나 하고 싶은 말 있어.”
어머니가 오신 지 한 달쯤 됐을 때, 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식탁에서 아이 자리는 할머니 바로 앞이었다. 어머니 댁에서도 원래 그렇게 앉아 먹곤 해서, 별 생각 없이 우리집에서도 그렇게 앉았던 것인데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아이가 가족 회의를 하자고 했다. 그동안, 아이라고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랑 아빠가 바뀐 생활에 정신없어 보이니 대뜸 제 마음을 얘기하지 못했을 뿐. <명애와 다래>의 다래처럼. 여리디 여린 어린이라서 어른들을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철이 없다고들 하는데, 내 알기로는 철없는 어른들이 철없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다. 훨씬 더 유해하고.
“엄마, 나 할머니랑 같이 밥 먹는 거 힘들어. 할머니가 자꾸 뱉어 내니까, 밥 먹다가 토할 거 같아.”
일단은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싫은 내색 안 해 줘서 또 고맙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가족회의 통해서 결정하자고 했다. 아이는 할머니랑 따로, 안방에서 먹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혼자 안방에서 작은 상을 앞에 두고 텔레비전 보면서 밥 먹었던 일주일이 제법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건 특별한 때라서 짧은 기간 그랬던 것이고, 평상시에도 그러는 건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식구니까. 식구食口, 한마디로 함께 밥을 먹는 사이. 가족회의 결과, 아빠랑 아이가 자리를 바꿔 앉게 됐다. 그 뒤로도 꽤 여러 번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는 할머니의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어렵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이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하는 ‘식구’로서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볼멘소리가 싹 사라졌다는 건 아니다.
“왜 할머니만 껍질 까 줘? 나도 까 줘.”
“넌 이제 아가 아니잖아.”
“할머니도 아가 아니잖아.”
“할머니는 아가랑 똑같아지셨잖아. 알면서.”
“몰라 몰라. 나도 껍질 까 줘.”
이런 식이다. 귤 속껍질을 일일이 벗겨 속알맹이만 드시게 따로 담아 드리는 걸 보면 저도 그렇게 해 달라고 떼를 쓴다. 샤인머스켓도 껍질을 벗겨 속알맹이만 따로 반 잘라 드리면 자기도 꼭 그렇게 해 달란다. 할머니는 큰 포도알 그대로 잘못 삼키면 안 되니 조심스러워서 그런다고 해도, “나도 나도!” 그런다. 자기도 잘못 삼키면 큰일난다며. 딸기를 드리면 딸기 씨를 하나하나 골라 내느라 주변이 온통 까만 딸기 씨앗이랑 빨간 과즙으로 얼룩덜룩해지고, 키위를 드리면 키위 씨 뱉어 내느라 분주하고, 사과도 꼭꼭 씹다가 건더기는 다 뱉어 내는 어머니. 그나마 드실 수 있는 과일을 드리느라 그러고 있으면 열 살짜리 아들은 도로 두 살이 되어서는 찡찡댄다.
이런 일상은 <명애와 다래>보다는 그림책 <우리 가족입니다>에 훨씬 더 가깝다. 이혜란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담은 이 그림책에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집으로 오신 뒤 맞게 되는 일상의 변화가 그야말로 ‘리얼’하게 담겨 있다.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인지장애를 겪기 전에는 이 그림책을 함께 넘겨보며 “할머니가 어린아이가 되면 어떨 것 같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이런 날이 와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더랬다. 그러나 두 분 어머니의 인지장애와 맞닥뜨린 뒤에는 이 그림책은 너무 현실감이 강력해서 차마 들여다보기 힘들어져 버렸다.
밥은 씹다가 뱉고, 쉴 새 없이 침을 뱉어 소파나 옷에 문지르고, 약 드시라고 드리면 몰래 뱉어 버리면서 양치한 물은 아무리 뱉으라고 해도 꿀꺽꿀꺽 잘도 삼키신다. 평생을 자연스럽게 해 온 일상적인 행동들이, 오래 생각을 해도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어 버리신 거다.
한 달에 한 번, 대구 친정집에 엄마를 보러 갈 때면 되도록 아이도 데리고 가려고 애쓴다. 틀니를 한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틀니를 빼 들고 ‘이게 뭐지?’ 하는 눈으로 빤히 들여다보실 때가 있다. 그러면 아이는 또 여지없이 소리를 지른다. “엄마~~~ 할머니 좀 봐.” 외할머니와 할머니의 변화를 만난 아이가 다른 집 할머니를 보고는 “엄마, 저 할머니는 애가 아닌가 봐.” 하는 이야기를 할 때 가슴이 많이 아프다.
언젠가 극장 옆자리에 앉은 엄마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대사 중에 ‘노망’이라는 말이 나오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노망이 뭐야?”
“노망? 치매 같은 거. 미친 거.”
나만 들은 줄 알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밥 먹을 때 아이가 그러더라.
“엄마, 나는 그 아줌마가 미친 거 같아.”
나름대로 속상했던 거지.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나 역시 그 엄마의 설명이 좀 아쉽긴 했다. 아이가 할머니를 통해 배우는 것이, 그런 할머니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되풀이해 강조하건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살아 있습니다. 불쾌한 일을 당하면 상처받고, 칭찬을 들으면 더없이 기쁘지요. 무엇보다 치매 당사자도 자신과 똑같은 ‘한 사람의 인간’이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치매 전문의로 살다가 본인 역시 치매에 걸린 의사 하세가와 가즈오는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먹는 걸로 아옹다옹하다가도 한 번씩 더없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손자를 넘겨다보며 웃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떤지는 짐작이 된다. 드물긴 해도, “이뻐.” 하는 말과 함께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실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 곁을 흐르는 것은 따뜻한 공기, 솜털 같은 기쁨이다. 그 한순간 때문에 함께 살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