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18) 네, 뭐... 회사는 회사인 거죠
어제(12월 30일)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이미 승인 받은 병가 사유의 휴가를 수정해서 다시 결재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최대 60일 기간의 병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된 기존 건과는 달리, 해가 바뀌면 병가는 자동소멸되므로 2020년에는 내게 부여되는 연차를 모두 소진하고 병가를 다시 써야한다고 했다
사전에 병가 사유와 기간에 대한 검토를 받은 뒤, 문제 없이 결재 받은 내용이었는데 수정이 필요하다고 하니 의아했다
인사팀이 알려준 내용에 따르면 내가 회사에 나가지 않는 일수는 동일하지만, '병가'로 처리되는 대신 중간의 1달 정도는 2020년에 부여되는 연차를 먼저 소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2020년에 부여되는 연차가 유지되느냐, '제로'가 되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회사에 복귀를 해야 하는 나는 앞으로 살아갈 10개월 이상의 시간을 살아가야 했으므로 아주 민감한 것이었다
기존에 승인 받은 내용이 왜 갑자기 변경되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병가가 적용되는 규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해당 규정이 원래 있는 것이었다면 왜 지금에 와서야 그것을 설명하고, 수정을 하라고 요구하는지였지만 인사팀에서는 해당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이후 주고 받는 커뮤니케이션은 더 집요하고 감정적으로 흘러가기만 했다
나와 커뮤니케이션 하던 인사팀 담당자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인사팀장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가 듣고 싶었던 설명,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휴가 종류를 변경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포함된 메일이었다
그 이유는 인사팀이 사전검토를 하는 과정에서 년도가 바뀐다는 것을 간과하고 병가처리를 승인해줬다는 것이었다
그 메일에서 처음으로 '일처리가 잘못됐다', '죄송하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뉘앙스는 내게 상당히 고압적이라고 느껴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가 불편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경의 이유, 내게는 중요한 2020년의 연차를 왜 꼭 소진할 수밖에 없어졌는지를 묻기 위해 세세히 따져물었을 뿐인데,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나는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시도를 막연히 받아들이기 싫다고 우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인사팀의 실수였다는 자초지종을 듣고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감을 표하자, 인사팀 측에서도 이미 그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며 내가 챙기지 못해놓고 유감이라고 하는 것이 유감이라고 답했다
따져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유쾌하지 않은 말꼬리 잡기만 계속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병가를 최대(한 해 기준 60일)로 내는 것이었는데, 사전에 제도에 대해 제대로 안내 받지 못한 관계로
결국 병가 자체는 30일 정도만 쓸 수 있게 되고, 나머지 기간은 2020년에 부여되는 연차로 매우게 되었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복직하고 나서의 내 컨디션 조절 등을 위해 병가 시작 시점을 미룰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인사팀은 이런 점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병원에서 쉬라고 해서 쉬는 건데 그 시점을 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아니냐면서..
남은 시간은 겨우 1달 남짓, 많은 것을 해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회사에 돌아갈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느끼는데 복직 후 휴가 없이 보낼 나머지 2020년에 두려움이 앞선다
주어진 시간은 동일하지만 이번에 복직하면 정말 의지할 것 하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두렵다
결국 나는 요란하게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로 쉬지만
알고 보면 내 휴가를 연초에 다 써버린 실속없고 바보 같은, 병가 아닌 병가를 보내게 됐다
미안함과 찝찝함을 짊어져서라도 내게 주어진 60일 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고 싶었는데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구나
회사는 회사니까, 나는 회사원이니까, 회사가 회사원을 대하는 방식은 뭐 언제나 이런 것이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이 상태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
불안증세가 심해지기 전 마음에 생겼던 뜨거운 응어리 같은 것이 다시 생겼다
회사로 돌아가는 것만이 옵션이었는데,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옵션도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