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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15. 2024

같은 그림, 두 번째 에세이

오늘의 끝과 내일의 시작

펠릭스 발로통(Felix Vallotton),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Sunset at Grace, Orange and Violet Sky), 1918


낯선 도시

10여 년 전, 낯선 도시의 저녁 하늘은 종종 아들을 울렸다. 지금의 세종시는 그다지 특별한 건 없어도 많은 사람이 방문해 보고 싶은 곳으로 꼽는, 그래도 한 번쯤은 와볼 만한 도시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 문제 때문에 우리 가족이 떠밀리듯 내려왔을 때의 세종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의 세종은 언젠가 정말로 그럴듯한 행정 도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기에는 지나치게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사방이 허허벌판인 도시를 가르는 왕복 6차선 아스팔트 도로와 그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정부청사. 상업용 건물도 없고 인적조차 뜸했던 그 무렵의 세종을 그나마 도시로 성장할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곳처럼 보이게 했던 것은 이 둘뿐이었다.      


병원이나 식당은커녕 제대로 된 슈퍼마켓조차 없는 세종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일주일 치의 삶을 계획하고 주말마다 이웃 도시의 마트를 방문해 필요한 물품을 미리 사두는 것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뜻밖의 준비물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고, 파스타 면이나 국수가 떨어진 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깨닫고 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 무렵의 세종은 하루 만에 택배가 오지도 않는 곳이었던 터라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선택의 여지 없이 인근 도시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매일같이 밤이 늦도록 회사에 매여 있는 남편은 세종에 남겨둔 채 아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제일 가까운 대전으로 차를 몰았다.      


낯선 하늘

가는 길은 괜찮았다. 도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게 민망할 정도로 작은 동네였던 세종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아들은 즐거워했다. 도시의 태를 갖춘 대전이나 청주, 천안에 가면 볼거리도 많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도 있다는 걸 아들도 알고 있었다. 기대와 설렘이 있어서인지 아이는 가는 내내 기분 좋게 웃으며 재잘재잘 떠들며 대곤 했다. 이웃 도시로 떠나는 건 내게도 설레는 일이었다. 세종과 대전을 잇는 텅 빈 자동차 전용 도로를 달리다 보면 국경을 넘어 옆 나라로 장을 보러 가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들뜨곤 했다.     


문제는 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중천까지 솟았던 해가 땅으로 내려와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아들은 슬퍼했다. 대전에서 세종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를 달릴 때쯤이면 하늘이 파란빛에서 분홍빛에서, 분홍빛에서 보랏빛으로 변하곤 했다. 해 질 녘의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은 눈물을 짓곤 했다. 분홍색 티셔츠를 유달리 좋아하면서 분홍빛 하늘은 유독 싫어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냐고 묻는 내게 아들은 슬픈 목소리로 답했다. “하늘이 분홍빛이 되면 왠지 모르지만 외롭고 무서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린이집이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아들은 사회생활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서 야근이 일상이 돼버린 아빠의 부재를 묵묵히 참아내며 낯선 도시가 주는 고독함과 사회생활의 무게를 견디는 나날이 외로운 모양이었다.      


작별의 낙조


하지만 감사하게도 익숙했던 저녁 하늘마저 낯설게 만드는 고독하고 외로운 삶은 금세 끝났다. 셋이었던 우리 가족은 넷이 됐고, 동네에서 만난 이웃들은 밤이 늦도록 함께 웃고 가끔은 함께 여행도 가는 친구가 됐다. 세종에서 만난 귀한 인연들 덕에 지난 10여 년 동안 한없이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우리 가족은 이제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한다. 물론 이번에 우리가 이사 갈 곳은 세종으로 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이니 엄밀히 따지면 낯선 곳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그곳에는 10년 전에 일상을 나누었던 지인도 없고, 지난 10년 동안 무수히 많은 낮과 밤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없다. 오래전에 수없이 거닐었던 동네지만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낯선 사람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생경하다. 그러고 보면 낯섦은 꼭 무언가가 정말로 처음이어서라기보다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감정인가 보다.      


한때는 익숙했지만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동네로 이사를 하면 우리 가족은 세종에 처음 내려와서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다시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 같긴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려 나간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무리 지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아들과 딸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날이 있을 거다. 굳이 거창한 약속을 잡지 않고도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으로 동네를 같이 산책할 친구가 없어서 서러운 날도 있을 거다. 그런 날이 오면, 10년 전처럼 분홍빛 하늘이 또다시 낯설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제법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10년의 세종살이 청산을 앞두고 친구들과 함께 떠난 서해에서 바라본 낙조는 아름다웠다. 하늘 높이 떠 있던 태양과 해수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마치 레드 카펫을 깔아놓은 듯 바다는 강렬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빛이 그려낸 바다 한가운데의 레드 카펫은 너무도 튼튼해 보여 그 위에 올라서기만 하면 얼마든지 수평선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 같이 모여 웃고 떠들며 함께 바라본 작별의 낙조는 그렇게 내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며칠 뒤면 세종을 떠나겠지만 한때는 타인이었던 이들과 친구가 돼 많은 것을 함께 했던 추억이 있기에 이제 낯선 동네도, 낯선 하늘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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