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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미학 May 01. 2021

14. 전생을 위한

석굴암

이왕 갈 거면 세트로 가기로 했다.

불국사를 갈 거면, 석굴암도 가보기로. 마침 불국사와 석굴암만을 오다니는 파란색의 12번 버스가 매 시간마다 정류장에 다다른다. 그렇기에 시간 상관 않고 막차 전까지 얼마든지 구경해도 좋을 일이었다. 어설프게 둘러봤나보다 아직 30분이나 남은 시간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싶었다. 등 뒤로 관광지임을 알리는 음식점과 기념품점이 즐비해 있었지만, 어디에도 머무르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무료하게 주변을 빙빙 돌다 문득, 고즈넉함이 짙게 묻어있는 한옥 같은 건물에 다다랐다. 무슨 건물인가 싶어 조금 힐끗거리니 넓게 트인 창안 바리스타가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다. 아마 그 맑은 웃음에 이끌렸나 보다.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라는 문구가 없어 괜히 실망했나 보다. 외관과는 다르게 안은 보통의 카페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손님은 나 혼자뿐이라 카페 안은 잔잔한 음악 소리와 함께 고요했다. 진하게 풍겨오는 커피 내음이 마음에 들어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넓게 트인 창과 맞닿아 있는 바 테이블로 가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짙은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하얀 머그잔에 까맣고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겨 나왔다. 조금 얼어있던 두 손을 컵에 대고 잠시 녹여본다. 핫팩 노릇도 톡톡히 하는 커피가 마음에 들어 한 모금 마시니, 내내 코끝을 간지럽히던 향보다 더 깊은 무엇의 맛을 낸다. 하지만 여전히 내겐 커피는 쓰고 구수하다. 이 두말을 나란히 집합시킬 정도로 아메리카노는 독특한 무언가를 자아낸다.


굽이치는 버스에 몸을 실어 올라가기를 20분 정도 넓게 트인 주차장 한 켠에 버스는 정차했다. 드디어 석굴암에 다다랐다.  



나부끼는 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무색하게 하늘은 청량했고, 그 가운데 높다란 계단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 얼마 정도의 길을 걸어야 비로소 석굴암에 도착한다. 가는 길 바람은 추웠지만, 내내 내리쬐는 햇볕에 위안받으며 흙길을 걸었다. 한 아이가 아빠 목에 올라타 공활한 공간을 만끽하며 까르르- 웃는다. 그 옆에서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인제 그만 내려놓으라는 볼멘소리를 낸다. 그들 옆을 지나니 앞에선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서로를 의지해 조심히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냐고. 그러자 할머니는 고개를 휘휘 내젓는다. 사이 좋은 노부부와 단란한 가족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부러 발걸음을 느리게 걷는다. 아마, 그들이 하는 대화가 내내 마음에 남았나 보다.


오래 걷지 않아 넓게 트인 공간이 나왔다.

겹겹이 쌓아 올려진 돌계단 위로 전각이 하나 보였다. 



올려다보는 내내 볕이 따가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사이 생각하나가 내 마음을 비집고 나왔다. 드디어 석굴암도 보고 가는구나 싶은. 여행을 계획하기 전, 여러 문화재를 검색하면서 생각으로나마 여긴 가봐야지!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여긴 꼭 가보고 싶다는 곳이 몇 있었다. 그중 한곳이 석굴암이었다. 까무룩 잊어버린 기억 속 수학여행을 다녀온 소녀의 기억일랑 지워진 지 오래요. 높고 공활한 그곳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해방 이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방치되어 온 석굴암은 말라붙은 새똥과 이끼, 곰팡이가 피고 말았다고 한다. 여러 보수작업을 통해 목조와 기와를 덮은 전실전각이 설치되어 짐승과 조류, 벌레 등의 침입을 막게 되었고, 악천후가 차단되어 연중 예불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전각으로 차례대로 들어가 커다란 유리 앞 간격을 지키며 관람했다.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눈으로나마 바라본다. 자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보는 듯한 불상을 바라보며 잠시 속으로나마 인사를 건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보았을까. 그들의 고민까지 관통해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다시 한참을 바라본다. 어쩐지 사람들은 쉽게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싶은 마음에 그들과 함께 다시 바라본다. 쉬이 전각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 기왓장에 가족의 무사태평을 써 내려 가본다.

써 내려간 기왓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가족에게 몇 장이고 보낼 마음이었다. 한참을 찍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스님이 다가와 혼자 여행 왔냐며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기왓장을 들고 목 좋은 곳을 찾아 서보라고 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이고 찍어준다. 가족들에게 보내라며. 마음이 관통당했나 처음엔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방긋 웃어 보였다.


돌아가는 길, 또다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다른가족과 중년의 부부를 마주했다. 혼자 사색하며 걸어도 좋을 곳이지만 문득 가족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아마 다음 이곳을 방문할 땐 가족과 함께여야겠다.



제목 배경 사진과 석굴암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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