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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May 12. 2021

팀 켈러의 일과 영성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에 줄잇기

https://www.youtube.com/watch?v=4sgUbWo9y9g


팀 켈러의 <복음과 삶>이 두 챕터 남았다. 아직 1편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2편에 해당하는 <일과 영성> 모임이 시작되었고, 지난 주일 첫 모임이 있었다. <일과 영성>은 총 3개의 파트, 작은 12개의 챕터로 짜여 있다. <복음과 삶> 그리고 <일과 영성>, 간결하고 손쉬운 제목이다. 1편보다는 훨씬 더 깊은 묵상과 생각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아직 스터디 용 교제가 없기 때문에 리더분들이 내용 요약과 함께 기본적인 질문들을 준비해주셨다. 모임은, 실제적인 삶의 나눔들로 차올랐고, 그래서 더욱 담백하게 느껴졌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삶의 간증들이었으니까.


[Part 1. 일, 하나님의 황홀한 설계] 속 작은 챕터 1,2를 나누기 전에, 소향의 'Pray'를 반복해서 들었다. 글로는 마저 다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게 건네 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본질적으로 선한 것을 내지 못하니 외롭고, 별게 다 발에 걸리니 고된, 민감하고 예민한 마음들에 긍휼함이 접촉되길 바란다.


요나는 말라버린 호박넝쿨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멸망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좁혀 나가는 과정은 위대한 일이다. 그래 위대한 '일'이다. 먹고살기 위해 직장에 출근하는 것도, 때론 숨 쉬는 것도 우리를 고되게 하는 '일'인 것이다. 챕터 1은 일과 쉼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에게 '노동'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성경에서 제시하는 독특한 관점에 대해 제시한다. '평생 놀고 마시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만연한 착각으로부터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들어 올바른 관점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은 본인이 일하시는 분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해서도 일을 맡기셨단다(창 1:28). 인간은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심각한 상실과 공허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자칫 일에 중독되거나, 일은 곧 저주라는 관념에 갇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그랬다. 꼭 해내야만 한다는 강한 부담감 혹은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은 참 긴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을 이롭게 하기엔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으니까. 20대 후반에 이것을 통해 받았던 상대적 박탈감은 깊이만 달랐지 교회 공동체에서 느꼈던 감정과 동일했다. 내 자존감은 휘몰아치는 양 극단 속에서 침몰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몸부림쳤다. 직장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왜 주기적으로 번아웃되는가? 팀은 우리에게 있어 일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일 자체가 인생의 유일한 의미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도 일하신 뒤에 쉼의 시간을 가지셨다. 잘 쉬고 있는가? 쉼의 개념과 필요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가? 어떻게 쉬고 있는가? 진지하게 묻고 답해보길 바란다. 칠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던 하나님을 보며 보다 근본적인 삶의 원리와 지혜를 배워야 한다. 팀은 쉼의 시간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신체적인 회복과 더불어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챕터 2에서는 일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쳤던 사상을 받아들였다. 물질과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하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사회구조 또한 시민과 노예로 나뉘게 만들었고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정치, 문화, 철학을 통해 엘리트 시민들이 덕을 쌓을 동안 육체노동은 노예 계급에게 맡겨졌다. 뿐만 아니라, 노동의 정도에 따라 천한 일과 덜 천한 일로 구분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노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인식이 오늘날에는 사라졌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성경은 그에 반해 '왕의 모습'이 아닌 '목수'로 오셨던 예수님, 그리고 에덴을 만드는 '노동'을 하셨던 하나님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창조세계 안에서 그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모든 일은 주를 위한 일이기에, 만드신 세상을 보살피고 가꾸는 일이기에 가치 있고 귀하다. 누군가는 어떤 칼럼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지음 받았으며, 일은 지위나 급여에 상관없이 인류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이 마지막 문장이 꽤 오랫동안 내 생각 속에 자리 잡을 것 같다.


교제를 통해 바뀌어 가는 지식과 관념에 대해 감사했다. 근본적인 쉼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점점 더 질투나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가겠지.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왜 일 해야 하는가?'와 같은 뜻 아닐까. 하나님과 마주 앉아 모든 것의 주관자 되신 그분의 풀이를 들어보자.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점검받아보자. 이상하리만치 힘든 멈춤을 더 미루지 말고, 오늘 해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자. 공급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분(시 104:10-23)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자.


마지막으로, 책의 프롤로그와 추천의 글 또한 꼼꼼히 읽어보길 권한다. 귀한 간증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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