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몰입

가장 깊은 상태의 집중력

나는 내 아이를 얼마나 잘 알까?


엄마니까 다른 사람보다는 잘 알지만 함께 산다고 다 잘 아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마를 불러가며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친구에게 더 많이 속내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요즘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날이 허다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빗장을 열고 밖으로 나와 말을 걸어온다. 그때를 놓칠세라 대화도 나누고 좋아하는 음식도 챙기면서 “나는 너의 엄마야, 너를 사랑하는 엄마야, 너를 믿는다.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여기에 있을게” 열심히 신호를 보낸다.


이내 곧 다시 문을 닫고 동굴로 들어가면 나는 고독한 사춘기 엄마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아이에 대한 추억도 곱씹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별다를 것 없는, 중학생 엄마이다 보니, 잠깐 정신이 혼미해지면 줏대를 잃고 우리 아이의 성향이나 성격, 기질, 재능 따위는 다 잊고 전 과목 좋은 성적을 받아주길, 좋은 대학에 가길, 성공하길 바라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좀처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에 대해서, 아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엄마라는 사람으로서의 나에게 대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최근에 요한 하리 작가의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어릴 적부터 여러 번 흠뻑 몰입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자아이들 엄마라면 아마 공감하는 이가 여럿 있을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는 토마스 블록이었고, 그다음은 멀티 블록, 그다음은 레고, 그다음은 종이로 만드는 로봇, 자유롭게 손끝으로 만드는 클레이, 더 정교한 건담까지…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아이는 흠뻑 실컷 그 도구로 놀고 상상하고 그 세계에서 유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학년때의 일이다.

생일에 레고의 ‘호그와트 성’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정품은 내 예산대비 너무 비싸서 중국제 가품을 사 주었다. 설명서도 제대로 없었고 워낙 조각수가 많으니 방에 봉지 봉지 열어놓고 학교, 학원 마치고 와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속도라면 족히 한 달은 넘겨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정리 정돈을 중요시하는 남편도 한 달 까지는 기다려주면서 방을 건드리지 말자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드디어 호그와트 성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아들은 호그와트 성이 완성된 그날 이후로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직도 방 한쪽에 놓고 애지중지 나와는 달리 말이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아이는 많은 블록과 장난감들도 어렵게 완성하고 나서는 큰 의미는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장식장에 넣어 둔 건담도, 종이 로봇도 나한테는 애틋하고 소중한데 말이다.


처음에는 돈 귀한 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로 오해를 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에게 “아하!” 하는 순간을 선사했다.


“몰입은 우리가 아는 것 중 가장 깊은 형태의 집중 상태다 “라고 한다.


이 몰입은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장거리 수영 선수,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 체스를 두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인데 실제로 그들에게 동력을 주고, 하나의 대상에 그토록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흘러가는 그 과정이라고 한다. 즉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다”. 결과와 보상이 따라 오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관점으로 아들을 바라보니 요즘 내 곯멀이를 썪였던 문제가 사실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공부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게임, LOL(League Of Legends , 롤)은 그 몰입의 연장선이었던 것이었다. 내가 너무 관대한가? 그렇다고 해서 매일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호락호락하게 자유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생 남자아이, 내 아들에게 이 게임이 어떤 의미인지를 헤아려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나는 관점을 바꾸어 아이가 지금 몰입 중인 게임 이후에 자라면서 인생 전체에 다시 한번 깊이 몰입을 하고 흠뻑 즐겨줄 것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려고 한다.

전 과목을 다 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어떤 하나의 분야에 관심과 흥미가 깊어지고 그래서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일하고 싶어 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데 이때 무언가에 흠뻑 빠져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던 몰입의 시간이 있었는지는 그 결과에 차이를 만드는 필수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이 든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스스로 원해서 코딩을 공부했었고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래. 너도 이렇게 찾아가는 중이구나. 너의 인생에서 더 깊이 몰입할 그 미지의 영역을, 그 도전 과제를 말이야.’ 속으로 되뇐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반복해서 말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 엄마가 내가 하는 어떤 것을 먼저 결과를 예측하고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의 예측이 틀릴 수도 있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


그때는 적절히 답하지 못했지만 오늘 나 혼자 스스로 답한다.


‘그래 맞는 것 같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앞으로 펼쳐질 너의 수많은 날들을 내 맘대로 속단하고 염려하고 결정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멈춰볼게

너의 인생 전체를 걸고, 몰입할 수 있는 그것을 충분히 탐색하고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