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 말의 의미를 아니?
중3이 이대로 끝나고 고등학생이 된다면 어쩐지 나는 우리 아들과 다시 여행을 갈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서운함과 아쉬움이 몰려왔다. 이미 중학생이 된 후로 캠핑을 가거나 주말여행을 갈 때도 혼자 두고 초등학생 동생만 데리고 다녀온 터라 함께 넷이서 여행을 간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거실에 있는 아이들 사진 액자 속에서는 엄마 옆에서 꼭 붙어서 웃고 있는 어린 날의 아들이 있지만 이제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물론 회사에 있을 때 방과 후 용건이 있으면 전화를 먼저 걸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용건만 간단히 통화를 하거나 퇴근 후에 이것저것 학교 생활을 물어보려고 하면 “엄마 나 지금 바쁜데 다음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 그랬다. 내가 아이들과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는 여행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함께 먹고 함께 차를 타고 그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함께 잠을 자고 부대끼고 있노라면 어떤 시인이나 작가의 말처럼 온 우주가 우리 가족 안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거의 강제로 추석 가족 여행을 추진했었더랬다. 봄부터 혼자서 새벽이나 밤늦게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또 어떤 날은 에어비앤비를 예약하고 하면서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해 나갔다. 하지만 여행이 다가올수록 꼭 가야만 하는지 왜 엄마는 강제로 이 여행을 밀어붙이는지 원성이 자자해서 하마터면 그냥 다 취소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번에는 아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반대를 무릅쓰고 나는 계획을 강행했고 온 가족이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해외여행 파는 아니어서 제주, 여수, 양양, 순천, 전주, 광주, 남해, 경주, 부여 등 국내 곳곳을 방학 때마다 다녔고 도쿄와 후쿠오카를 다녀왔었다. 하여 우리 초등학생 딸아이가 왜 우리는 밥을 주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지, 언제쯤 비행기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지 고대하던 터였다. 그래서 오빠와는 달리 기꺼이 설레는 맘으로 이 여행계획을 일찍부터 즐겨주는 딸아이를 위해서 밥을 한 끼도 아닌 세 끼나 주는 비행기에 드디어 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로마로 들어가 파리에서 나오는 두 도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알았다. 엄마니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들의 성향, 식성, 생활습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여행 곳곳에 세심한 배려를 양념으로 넣고 하루의 일정은 최대한 느슨하게 짰다. 조금 걸으면 젤라토를 먹어야 하고 조금 걸으면 간식도 먹으며 그렇게 여유롭게 보냈다. 다행히 평소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바티칸 시티나 루브르 박물관의 두세 시간 코스를 무난히 잘 견뎌주었고 친절한 가이드 청년 선생님들 곁에서 질문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이 여유로운 여행 사이에 저녁에는 집에서 가져간 노트북으로 친구들과 롤(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터졌다. 마지막으로 에펠탑의 야경을 보자고 했는데 시간이 좀 모라자고 볼 것이 많아서 마지막날은 두 개의 일정을 넣었더니 ”나는 힘들고 저녁에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에 있을게요 “ 그러는 거다. 상당히 논리적인 말이지만 나는 본전 생각도 나고 해서 여러 차례 설득을 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에 감정적으로 화가 난 나는 급기야 ”너 정말 이렇게 인생 살 거야? 너 왜 엄마가 여기까지 여행을 데리고 온 줄 알아? 네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 온라인 세상 밖에 우리가 탐험하고 배워야 할 더 흥미진진한 세상이 있단 말이야 “
엄마가 이성을 잃고 감정적인 폭발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자녀와의 싸움에서는 지는 거다. 그런 식의 소통은 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어떤 유의미한 생각 변화도 못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상처를 주기까지 한다는 것을 나는 수도 없이 경험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화를 내면서… ‘나 또 이런다. 나 또 실패했구나’ 하고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일단 시작된 감정의 폭풍을 쉽게 끝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와는 달리 침착한 아들 덕분에 대화는 다소 진정되었고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 사실은 이 여행에서 직면해야 했고 그동안 수도 없이 미뤄 온 열여섯 소년과의 진지한 대화로 들어가게 되는 뜻밖의 전개가 펼쳐졌다.
“너 어떻게 살고 싶어?”
“중학생 동안 엄마는 너를 많이 기다려 준 것 같아. 조바심 나서 친구들과 너를 비교하거나 다그쳤던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강제로 학원에 보내기를 멈췄고, 네가 자유롭게 멍 때리는 시간과 게임하는 시간들 허용하면서 네가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 이제는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꿈을 적극적으로 탐색해 보는 시간을 시작했으면 좋겠어. “
“너 어떻게 살고 싶어?”
“엄마. 나도 다 생각이 있어. 나도 이것저것 탐색 중이야.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싶기도 해.”
“그래? 그럼 그런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그런 곳에서 요구하는 전공이나 공부를 선택할 시기가 왔을 때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서 꿈을 접고 좌절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엄마는 이제 공부에 대해서 좀 더 푸시하고 싶어. 엄마 많이 불안해.”
“내가 알아서 할게”
“ 그래 좋아. 그럼 이것만 기억해. 이제 열일곱 살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엄마가 여전히 먹여주고 입혀주고 너의 울타리가 될 거지만 네가 지금부터 보내는 날들이 네 인생의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거나 닫을 수 있으니 그런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는 날도 올 거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라. 엄마 말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어?”
“응. 알았어”
그렇게 우리는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던 대화를 파리 시내 어느 에어비앤비에서 마무리하고 아이는 남아 게임을 하고 쉬는 사이에 나머지 식구들을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나갔다.
사실 마흔여덟의 나도 아직 인생의 답을 모르겠다. 마흔이 서른의 사람들에게는 멋 훗날이고 나이가 많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마흔의 나는 회사에서 퇴근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그 어둑어둑한 길과 달빛 아래에서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던 날도 있었다. 아마 마흔의 사춘기라고 생각되는데.. 계획대로 잘 살아지지 않고 마흔이 되어도 막연한 그 삶이 버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려서 육체적으로 일과 가사 및 육아를 함께 감당하는 것이 버겁고 고단해서도 설움이 몰려왔던 것 같다.
그 사이 아이들은 어느덧 십 대가 되었고 나는 마흔여덟이 되었다. 지금의 나도 삶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내가 뭐라고 아이들에게 단정적이고 확정적으로 “이 길만이 정답이고 네가 갈 길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마흔여덟의 나는 그것이 아들을 위한 최선의 조언이 아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마흔의 나와 다른 점이다.
96 대학입시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했고 다시 2학년이 되게 9개 전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꼭 하고 싶은 전공이 아니라 하기 싫은 전공을 쭉 제하고 나니 남은 전공을 선택했었다. 졸업 후에 무엇을 할지 여전히 몰라 2년간 해외에 가서 다른 일을 하다가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무엇을 할까?’라는 답은 찾지 못했지만 ‘한국에 가서 9시부터 6시까지 매일 성실이 일하는, 그것이 무슨 일이든,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었다. 그렇게 회사원이 되었고 회사에서도 무엇을 하고 싶다고 선택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일이 올 때 마다하지 않고 하다 보니 어느새 20년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 엄마, 며느리도 되었고 그저 매일을 성실히 살며 마음 한편에 버킷리스트 하나쯤 감추어 두고 꺼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계획하지 않은 삶을 마흔여덟 해나 보냈으면서 오늘, 현재, 열여섯의 아들에게 지금 어떻게 당장 무엇을 하지 않으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을 멈추고 싶다. 그리고 아들이 충분히 고민하고 어느 날 꿈이 생겨서 “엄마. 나 이렇게 이런 일 하면서 살아보고 싶어 졌어” 하고 말을 걸어올 때 “아 정말? 그래? 아들 응원해. 넌 잘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을 언젠가는 마주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오늘의 실패와 좌절, 부대낌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아닌 더 성장하고 성숙된 모습의 미래의 엄마와 아들로 만나게 될 것 같다.
혹시 아들과 다시 에펠탑의 야경을 같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그런 날이 꼭 왔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