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학습?

꽤나 용감하고 인내심을 가진 엄마가 줄 수 있는 선물

코로나 전에 아이들과 대형 키즈카페에 많이 갔었다. 첫째가 열 살, 둘째가 여섯 살이었는데 나는 MBA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일하는 엄마의 주말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동시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같은 곳에 나오는 아티클(경영학을 공부할 때 교과서 외에 현재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거나 과거에 있었던 다양한 경영이론 관련 사례들을 분석한 글들)을 읽고 소화하고 요약하는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키즈 카페 10회권을 끊고 아이들이 뛰어놀다 한 번씩 엄마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환경으로 공부를 하러 갔었다. 대형 카페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마시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설을 이미 갖추고 있었고 다양한 탁자나 구역을 구분한 좌식 테이블 공간도 있었다. 나는 덕분에 많은 엄마, 아빠들의 수다와 아이들의 고성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도 쉽지 않은 그 혼란한 공간 속에서도 과제를 하면서 학업을 잘 소화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이 엄마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고, 나도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 생각했다. 사람의 집중력이란 어디서 나오는가? 나에게 이런 초인적인 집중력이 이렇게 시끄러운 공간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수학을 공부하고 전공무관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직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일을 할수록 실무와 이론을 균형 있게 갖추고 싶었고 그 간절함이 마흔두 살에 용감하게 야간 대학원을 진학할 용기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일단 남편의 내조가 너무나 필요했다. 원서를 이미 써 놓고 남편에게 어느 날 말했다. ”나 대학원 가도 될까? “ 남편이 엄청 당황스러워했다. ”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너 알잖아. 우리 지금 어떻게 사는지? 부모님 도움 없이 아이 둘 키우면서 일하는 거 우리 너무 버겁지 않아? 그런데 여기서 네가 공부까지 하겠다고.. 작작해라…“ 나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생각할 시간을 주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돌아서길 기다리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고는 남편이 말했다. “내가 생각해 봤어. 내가 직장 그만두고 자영업 하겠다고 했을 때 수입이 들쑥날쑥 이어도 네가 나를 지지하고 기다려준 것처럼 이제는 내 차례인 것 같다. 대학원 다녀. 내가 도와줄게. “ 그렇게 남편의 이해와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저녁 5시에 퇴근을 하고 인천 부평에서 서울 홍릉까지 운전을 하면 어찌나 그렇게 차가 막히는지 7시 수업에 항상 10분 ~15분에 도착해서 강의 중간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야간 대학원은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학교에서 준비해 준다. 그래서 강의장 밖에서 김밥을 한 줄 챙겨 들고 들어가 소리도 없이 조용히 입에 하나씩 넣어 배를 채우면서 빠르게 강의 내용에 집중해 가기 시작하곤 했다.


수학과는 논문도 쓰지 않고 졸업을 했다. 대신 시험을 봤다. 대학에서 수학과는 심지어 시험을 오픈 북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저녁 5~6시쯤에 조교가 시험지 한 장과 갱지 다발을 들고 온다. 넓은 강의장에 띄엄띄엄 앉아서 5~6개의 문제를 책을 열고 정의와 명제 등 다양한 정리를 이용해서 증명해 가면서 풀어나간다. 책을 펴 놓고 봐도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지 모르겠고 진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커닝할 수도 없다. 한 문제의 답이 갱지 여러 장을 넘어가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교도 중간에 밥도 먹고 오기도 하고 그랬다. 정직한 자신과의 싸움을, 네다섯 시간의 시험을 그렇게 치르곤 했다. 96~99년에는 그랬다. 요즘 수학과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텍스트를 읽고 요약하고 나의 현장에 적용하고 생각을 덧붙이는 문과적인 방식의 공부는 훈련이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처음 MBA 경영대학원의 수업을 듣자니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그리고 그 많은 내용을 한 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회사에서도 복잡한 이슈와 대안을 리더들이 나에게 내어주는 10~15분, 심지어는 5분에 논의할 수 있도록 한 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늘 중요했는데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초반에는 힘들고 읽었던 자리를 또 읽고 그 자리를 맴돌던 읽기가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아..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대부분의 읽기 자료는 영어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읽기는 점점 더 읽기를 시작해서 집중하는 데까지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일도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생각이 머릿속에서 정리되면 글로 옮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내가 먼저 겪은 이러한 읽고, 이해하고 쓰기의 과정의 경험은 훗날… 오늘날 아들의 공부, 자기 주도 학습을 돕는데 필수적인 경험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말에 동네 보습학원에서 입시 중심 학원으로 건너갔다. 엄마의 강압적이고 주도적인 학습지도에 따라서 말이다. 일단 입시 학원에 갔을 때 원장님과 상담 선생님이 실력 테스트를 한다면서 영어, 수학 시험지를 들고 와서 아이는 계획에 없던 (아이입장에서는… 나는 알고 있었지만) 시험을 치렀다. 당연히 시험을 보는 기술 (이것은 아주 필수적인 기술이다. 아는 것과 시험에서 문제를 푸는 것은 다르다.)이 없었고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점수는 형편없었다. 이러면 학원은 항상 준비된 형태의 멘트로 부모님과 학생의 불안감을 공략하고 많이 늦었다며 조바심을 자극한다. 나도 당했다. 그래서 그 즉시 학원을 등록하고 아이를 괴로운 일상으로 몰아넣었다.


아이는 초6 겨울 방학 때 낮에 학원에 가서 해가 져서 돌아왔고 저녁 먹고 바로 앉아 숙제를 해도 자정을 넘겨야 하는 많은 양의 과제로 허덕였다. 졸며 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우며 앞으로 시작될 중고등 6년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아이는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화를 내거나 아이를 달래며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사실 나의 논리는 빈약했고 나도 스스로 학원과 이런 획일화된 공부법에 대해 의심도 있었다. ”다른 애들 다 하니까, 이렇게 하다가는 너무 늦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대적인 경쟁 속에서의 달음박질을 재촉하는 논리는 생각보다 쉽게 흔들렸다. 엄마와 아들 모두에게… 오히려 정직하고 솔직한 아이가 나의 줏대 없는 행보에 제동을 걸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원장님이 보자고 하셨다. 아이가 학원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하셨다. 과제도 밀리고 이렇게 하면 수업을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알겠다고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고 같은 하늘아래 있는 모든 지붕 밑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듯이… 공부를 하고 성장하고 꿈을 이루는 방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생각이 내 마음 한켠에 있었기 때문에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수업도 다 마치지 않은 아이와 집으로 가기로 했다. “OO아, 가방 챙겨 와. 집에 가자”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게 뭐라고… 학원에 적응하지 못한 열세 살의 아이는 자기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풀이 죽어 있었다. 쌍꺼풀이 없는 큰 눈을 가진 우리 아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나 집에 가서 혼날 거야? “ 내가 답했다. “아니. 왜 혼나? 집에 가서 밥 먹자. 자전가 타고 와.. 엄마 차 가지고 왔어. 각자 가서 만나자. 곧 만나. “


사실 옆에 남편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유난을 떨었다. 아이들의 상담이나 공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남편을 꼭 데리고 갔다. 다른 아빠는 거의 없어서 너무나 부끄럽다는 남편을 강제로 끌고 갔다. 우리 아이를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그랬다. 남편은 동의하지 않아도 나의 의견을 따라 주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고마운 남편…

그날도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말했다. ”오빠.(남편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아들 이야기나 들어보자. 화내지 말자. 우리 아들은 원장님이 우리를 오라고 했을 때부터 이미 벌을 받았어.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어. “ 남편이 끄덕끄덕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각자 씻고 밥을 먹은 후에 물었다. “OO아, 너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아들이 물었다. “하고 싶은 거 진짜 말해도 돼?” 내가 답했다. ”응. 말해 봐. 뭐라도 괜찮아. “

아들은 입시학원 간다고 끊었던 태권도를 다시 하고 싶고 맛보기를 한 적 있는 중국어를 다시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아들은 중학생이 된 이후로 두 세시면 귀가를 하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멍 때리고 유튜브도 보다가 태권도 가고 어떤 날은 중국어 배우는 행복한 중학생이 되었다. 대신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기로 했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아들의 삶에 원치도 않는 경쟁과 숨 막히는 선행을 없애고 나니 학교 수업 열심히 하고 방과 후 수학 동아리나 과학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수행 평가도 제법 성실하게 했다. 영상을 만드는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 몇 날 며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서 다양한 효과를 넣은 멋진 편집을 해 내기도 하였고, 중학교 2학년때는 우연히 본 어떤 영상에 나온 도형이 궁금해서 파이썬을 온라인 강의로 배우게 되었다. 파이썬 (코딩)을 배우겠다는 아들을 어떻게 도울까 찾다가 카이스트에서 초중고생을 위한 온라인 강의들이 있다는 알게 되었고 20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강의료로 집에서 앉아서 원하는 학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어는 꾸준히 공부한 후에 HSK3급을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하고 일단 멈추었다. 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어도 원하는 때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언어공부방법을 배운 것은 큰 수확이다.


그러면 중학교 교과는 어떻게 얼마나 공부해야 할까?
내가 개인적으로 터득한 공부의 원리는 ‘충분히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이다.
사실 교과서나 문제집에는 모두 이론을 잘 설명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충분히 읽고 이해가 갈 때까지 고민하는 과정이 공부의 핵심이고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한 번에 이해가 안 가서 힘들고 그래서 읽고 또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고민하는 어려운 그 시간을 통과하면
텍스트를 읽으면서 스스로 개념을 익히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이해력, 사고력이 비로소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과정을 오롯이 통과해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지지부진한 단계의 시간을 통과할 인내심과 여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배운 것을 복습하거나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간 대신 타인에 의해 지식을 재공급받는 방법(과외이든 학원이든)으로 빽빽한 방과 후 스케줄을 채우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 인풋된 지식을 곱씹어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해가 된듯한데 잊어버리거나 알고 있는 듯한데 어떻게 적용할지 모르는 일이 생긴다. 수많은 문제를 유형학습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끝도 없이 풀어도 개념을 100% 익히지 못했다면 100개 유형을 익힌 후 다시 101 번째 문제를 만났을 때 당황할 수도 있다.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다뤄보는 것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가 결여된 과도한 단순 반복 문제 풀기는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뇌가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 머리에 들어간 새로운 지식이 내 것이 될 충전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친구가 내게 용기를 주었다. “선행을 하지 않고 입학하는 친구들은 없지만, 선행을 소화하고 온 친구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에 맞게 속도를 늦추고 그저 아이가 제 자리에 있는 것 같은 그 시간을 아이도 엄마도 견뎌야 그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도 있다. 아이는 텍스트를 정독하는 읽기와 고민하기로 수학을 공부하게 했다. 교과서나 문제집의 개념을 읽고 이해하려고 애쓰게 한다.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수준의 문제를 적당한 양으로 풀어보면서 내가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적당한 자신감과 성취감, 약간의 어려움을 겪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혼자 공부하다가 모르면 엄마나 학교 선생님에게 다시 묻는다. 내가 모르면 남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용감하게 질문하라고 격려한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장려하지 않는 우리 일부 문화가 있어, 질문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안타깝다. 또는 어차피 사교육이 해결하겠거니 하고 포기하고 지친 선생님들도 안쓰럽다.


한 번은 학교 공개 수업에 갔는데 한쪽에서 아이들이 자는데도, 심지어 학부모가 뒤에 서서 공개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선생님이 앞쪽 한 분단의 소수 정예 학생들과 수업을 하시는 거다. 나는 너무 불쾌하고 실망해서 수업 참관 후기 용지를 가득 채우고 나왔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공교육만 받습니다. 이 수업에서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런 아이도 있으니 우리 아이들을 포기하지 말고 함께 품어 주세요. “ 그렇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중간에 “밀크티”라고 하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도 더하였고 지금은 중학교 과정을 잘 마쳤고 이제 곧 입시는 더 강도가 높겠지만 지금 같은 방법의 학습에 필요할 때, 꼭 필요한 강의를 더 하면서 학습 과정을 보완하고 도울 생각이다. 잘 마쳤다 함도 일등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일등이 아니었는데 내 아이가 일등이 아니라고 서운할 것도 없다. 오히려 아이에게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 강력한 동기가 생기기를 매일 기도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이제 앞으로 3년에 결실을 내든 아니면 이십 대를 다 사용하고서야 결실을 내든 원하는 길을 찾아가고 그 길을 위해 정진하는 즐거움과 짜릿함을 맛보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을 산다. 오늘도 진행 중인 중학교 엄마라는 시행착오의 시간 동안 내가 사춘기 아들, 중학생 아들에게 꼭 주고 싶었던 선물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 보기 시작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믿으며, 두려움을 넘어서 시도하고 연습하는 그런 자생력인데… 우리 아들이 아직은 모르겠지만 … 저도 커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워볼 때쯤에는 조금 이 엄마 맘을 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춘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 세상에 생각보다 많은 부모님들이 시류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소신껏 자신의 철학과 방법대로 아이들을 키우고 건강한 성인으로 세상에 내놓기를 꿈꾸고 있을 거라는 보편적인 믿음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부모됨을 먼저 겪으신 수많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용기를 얻어 지금껏 지내왔기 때문이다. 물론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날이 아직도 많지만은 말이다.


아이는 나의 소유가 아니고, 부모는 모든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이가 너무나 소중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어떤 부모에게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우리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오늘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려움 속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꾸며 여섯 번 넘어져도 일곱 번째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끈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 소중한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 아이들에게 꼭 선물해 줘야 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글을 쓰니 남편이 옆에서 말한다. ”너의 글이 너무 너의 일상과 괴리가 있다. “ ㅎㅎㅎ 맞다. 부끄러운 일상은 가리고 그럴싸한 글을 쓰는 나도 내가 우습다. 그러나 이 글은 인터넷 브라우저의 새로고침처럼 매일매일 실수를 지우고 다시금 자녀 양육과 부모됨의 마음을 바로잡는 그런 하루의 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