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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Apr 19. 2022

두서없어도 적어보는 것

11시 30분 퇴근. 그리고 2시 25분 다시 출근했다.


하고 있는 서비스 새벽 배포를 하게 돼 모니터링을 위한 대기 중이다.


블라인드 사이로 달이 보인다. 블라인드에 한 번, 나뭇가지에 또 한 번 걸려서 정확한 모양은 보이지 않지만 거의 보름달 느낌. 졸리다.


주말부터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고 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와 이 사회가 생존장병들, 그리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쓴 책이다. 세월호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온다. 천안함과 세월호 모두 사람이나 실체적 진실보다는 진영 논리에 의해서 한쪽으로만 끼워 맞춰진 시각이 담긴 보도들, 주변 시선, 당국의 처우에 때문에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았고 여전히 그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이 자극적이다. '미래/피해자/이겼다'라는 단어를 나란히 놓은 것이. 이 말은 '성차별 없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던 피우진 전 보훈처장의 소송으로 2007년 군인사법의 시행규칙이 개정된 것을 두고 한 신문에서 쓴 표현이라고 한다. 피해자이기 때문에 '이겼다'라는 표현이 중요하고, 아직은 이기지 못했으므로 '이겼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라는 것이 자뭇 의미심장해 보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 말이 실제 피해자들이나 혹은 이들을 위해 애쓴 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일까 궁금하다.


 가지 놀라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 이것만은 의미가 크고 명확하다. 웬만한 다른 책보다는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소설은 우리가 겪지 못한 삶과 상황을 이해할  있는 범위를 넓혀준다. 그런데  책에 담긴 것은 생존장병들의 실제( 가까운) 이야기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늦기 전에 듣고 이해할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자체로 중요하다. 생존장병에게도, 동시대인인  자신에게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굳이 지금,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는 의미는 없는 거니까.


+ 생각보다 배포에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참외를 깎아 먹었다. 라면을 먹고 싶었지만 참는다. 참외를 먹으니까 춥다. 참외를 먹으면 언제가 생각나는 건 김정애 시인의 「참외」. 추워서 부들부들 떨린다. 낮엔 따뜻했는데 밤이 되니까 춥고 역시 봄. 늦게까지 깨어 있는 나 때문에 고양이들도 깊이 못 잔다.


+ 사실, 이 배포에 나는 필요가 없다. 모니터링도 사실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뭔가 예상치 못한 오류가 생기고 뭔가 판단해야 할 때 함께 하려고 준비하는 것인데 아마 내가 뭔가를 판단해야 할 만한 오류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웬만한 판단은 개발자들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획자가 함께 판단해야 할 만한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 그런 건 가능성이 낮고, 적고, 무엇보다 그래서는 안돼. 하지만, 그래도, 함께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나. 이런 것이 동료애인가, 이런 것이 책임감인가. 근데 실질적으로 내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함께 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나의 진심이가, 관성인가, 사회생활인가, 직장생활인가. 어쨌거나 하는 쪽이 마음 편하기 때문에 한다. 결국 나를 위해서 하는 건데, 나의 건강을 위해서는 좋지 않아. 나의 수면의 질을 위해서도 좋지 않고, 나의 바이오리듬, 나의 내일 운동, 나의 정신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건 이 문단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의 손가락, 나의 위장, 나의 대장, 나의 소장, 나의 비장, 나의 간, 나의 시린 발등, 나의, 나의, 나의... 기다리면서 일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만큼 두뇌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뇌는 이미 반쯤 수면 중), 아래쪽 모니터로는 슬랙을 계속 힐끔대고, 위쪽 모니터로는 이렇게 손가락으로 헛소리를 뱉어낸다. 그래도 이렇게 다다다다 뭐라도 아무렇게나 막 쓰니까 기분이 좋네?


+ 그사이 달이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갔다. 달은 어디로 가나. 아침을 향해 가나. 또다른 밤, 또다른 어둠을 향해. 또는 아무데로도 가지 않고 그냥 거기 있을 뿐임을 향해. 향한다는 것조차 없이 그냥 거기 있는 거라고 해야 할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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