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책<이파라파냐무냐무>를 읽다.
(*스포 주의! 이 글에는 책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가격리 9일 차.
아무래도 절제력에 총량이 정해져 있나 보다.
밖에 나가고 싶은 욕구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다 보니 소비욕이 올라왔다.
지금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정신 건강을 위해 약간은 풀어줘도 좋을 것 같아서(대단한 합리화) 그동안 장바구니에 담긴 채 잘 참아왔던 몇 가지 아이템을 결제했다.
가장 먼저 결제 버튼을 누른 건 책이었다.
아직 펼쳐보지 못한 책들이 이미 여러 권 있지만 또 사고 싶은 책이 자꾸 생기는 걸 어쩐담.
'일단 있는 거부터 다 읽고 또 사야지.'라고 애써 억눌러왔던 마음이 '에라 모르겠다.'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책을 구매하는 김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도 몇 권 골랐다.
그중에서도 <이파라파냐무냐무>의 내용이 가장 궁금해서 책을 받자마자 첫째 아이와 같이 읽어보았다.
마지막 장에 작가가 쓴 "여러분 마음속의 털숭숭이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보며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선물을 드리면, "이까짓 거 필요 없다.",
맛있는 음식을 드셔 보시라고 말씀드리면, "그딴 거 너나 먹어라."라고 대답하시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말투는 항상 뾰족했다.
한창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일 때 오랜만에 나를 보면 "어째 더 살이 찌는 것 같냐."라며 말을 거셨다.
늘 송곳 같은 말들을 툭툭 내뱉으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어른들은 할아버지의 그런 말투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이미 그들 모두의 머릿속에 할아버지 말 번역기가 장착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이까짓 거 필요 없다." → "뭐하러 이런 걸 사 왔니. 고맙다."
"그딴 거 너나 먹어라." → "잘 먹을게. 고맙다."
"어째 더 살이 찌는 것 같냐." → 관심과 애정의 표현
처음엔 믿기 힘들었지만 번역기는 정확했다.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선물을 드리면 입가에 감출 수 없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고,
분명 너나 먹으라고 하셔 놓고선 과일 접시를 할아버지 방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와서 30분쯤 뒤에 가보면 빈 접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스무 살이 지나서야 할아버지의 묘한 말투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도 할아버지 전용 번역기가 장착된 이후로는 날카로운 화살 같던 말이 장난감 화살 보다도 가볍게 느껴졌다.
분명 말은 톡 쏘고 있는데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계신 할아버지 모습을 볼 때면 다른 식구들과 눈으로 이야기하며('저거 봐, 할아버지 또 저러신다! 키득키득') 우리는 더 크게 웃곤 했다.
생각해보면 톡 쏘는 말투와는 달리 할아버지에게는 은근한 다정함이 있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는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고 그것도 쪼그려 앉아서 사용해야 하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당시에 꼬맹이였던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발이 빠질까 봐 몹시 두려웠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도저히 거기는 무서워서 못 가겠고 그렇지만 또 너무 급해서 눈물이 나려고 할 때면 옆집 할머니 집에 염치를 무릅쓰고 화장실을 사용하러 가기도 했다.
그러자 어느 날은 할아버지가 스티로폼을 이용해서 간이로 어린이용 변기를 만들어주셨다.
색깔도 하얗고 제법 모양이 비슷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신 분이었다.
직접 만들어주신 팽이, 얼음 썰매 덕분에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놀이들을 해볼 수 있었다.
시골에 가면 가장 재밌었던 건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경운기에 타보는 것이었다.
운전석 옆에 앉으면 마치 내가 몰고 있는 듯한 짜릿함이 들었고, 짐칸에 타면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아서 신났다.
책에서 마지막에 마시멜롱들이 털숭숭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듯이 나도 나중에는 할아버지를 보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는 시골 마을회관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러졌다.
사흘 정도 정신없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마지막 날에는 가족들이 모두 깨끗한 수의를 입고 잠들어 계신 할아버지를 보며 작별 인사를 했다.
눈을 감고 계신 모습이 마치 잠깐 잠들어 계신 것처럼 너무 평온해 보였는데 그게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느덧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잊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참으로 뜬금없게도 아이와 동화책을 보다가 불쑥 할아버지가 떠오르다니 스스로도 놀랐다.
할아버지가 털숭숭이 같은 존재라는 걸 조금만 일찍 깨달았다면 더 대화를 많이 시도했을 텐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할아버지 참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정작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말 좀 예쁘게 하시라고 말했을 법도 한데... 가족들이 알아서 척척 예쁜 말로 순화해서 이해해줬으니.
가족이니까 오롯이 그 사람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던 걸 지도 모르겠다.
굳이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먼저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면 정말 좋겠지만,
톡 쏘아대는 말을 하더라도 그게 나를 맞추려는 화살이 아니라는 걸 듣는 사람이 이해해줄 수 있다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기가 원하는 걸 예쁘게 말하는 사람보다는 투박하거나 뾰족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자꾸 생각하다 보니 털숭숭이 같은 존재가 몇 명 더 떠올랐는데 내가 그들을 마주할 때 부디 이 책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털숭숭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이제 드는 거지?
두 아이와 놀다가 이따금씩 포효하는(?!) 나를 보며 엄마가 헐크 같다고 말했던 첫째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네가 생각하는 털숭숭이는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