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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Jan 16. 2022

휴직이 종료되었습니다.

2년 만에 출근해보니...

2020년 2월이 마지막이었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임산부는 모두 재택에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퇴근했다.

그 이후로 출산을 하고 3개월로 예정했던 휴직을 길게 연장했던 게 어느덧 끝이 났다.


왜 하필 복직일을 새해 첫 월요일로 잡았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무튼 여러 가지 새로운 의미를 담아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건물 입구에서 사원증을 찍고 사무실로 올라가 긴 복도를 걷는데, 복도를 반쯤 걸었을까?

순간 타임슬립이 된 것처럼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헉... 나 이 느낌 뭔지 알 것 같아. 벌써 적응된 것 같아.'

사무실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주변 환경들도 모두 그대로였다.

2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많은 것이 여전한 모습이었다.


내 자리라고 사전에 전달받은 곳에 가보니 짐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연휴의 여파로 아직 출근하지 않은 사람들, 휴가 중인 사람들이 많아 주위가 조용했다.

자리를 정리하고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친하진 않았어도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조직을객관적으로보게되다 #여전히내눈에는먹물이구나

오늘로 출근한 지 딱 2주가 지났다.

오랜만에 출근을 해서 보니 조직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지난날의 내 모습도 자주 떠올랐다.


휴직 전의 나는 출근하면 매일 먹물이 가득 찬 물통에 나라는 붓을 담그는 듯한 기분이었다.

온 사방이 깜깜하게 느껴졌고, 원치 않아도 내 안에 자꾸 검은 물이 스며들었다.

'나는 본래 검은색이 아닌데... 내 색을 좀 드러내 볼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야...' 라며 숨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억누르다 보니 나중엔 스스로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퇴근을 하면 물통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미 검은 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뚝뚝 흘리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회사에서 발랄한 사람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때때로 사무실 책상 모니터 앞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최대한 쥐 죽은 듯이 지내자고 다짐했다.


검은물이 담긴 물통은 여전하지만 붓은 업그레이드 되었다!


#스스로단단해졌음을확신하다 #예전의내가아냐 #반성모드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먹물이 가득 찬 곳이 맞는 건지 헷갈렸는데 오랜만에 다시 봐도 같은 느낌인 걸 보니 먹물이 담긴 물통은 맞는 것 같다.

불쑥 나에게 스미려 드는 검은 기운을 느끼며 '아, 이렇게 물이 드는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흠뻑 흡수하지는 않았다.

검은 물이 들었더라도 이제는 헹구는 방법도 안다.

내가 칠하고 싶은 색은 무슨 색인 지, 어떻게 칠해야 할지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고민하고 스스로를 다잡으려 노력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참 다행이다.


주위 사람에 무관심하고, 건조하고, 냉소적이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그때 왜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까.

왜 모든 것이 밉고 싫고 답답했을까.

몇몇 사람들에게서 지난날의 내 모습이 투영될 때마다 안타까웠다.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만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사람들을다시보게되다 #알고보면다정한사람들

첫째를 낳고 복직했을 때는 잘 쉬다 왔냐고 묻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대부분이 '고생 많았겠다.'라고 이야기해주셨다. (혹은 '둘을 키우다니 대단하다!!!!!'라며...)

이전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오랜만에 만나 개개인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는 왜 어렵게 생각하고 무섭다고 생각했을까, 왜 여유 있게 사람들을 대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한 명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분위기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조직의 분위기가 개인의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다 보니 물통과 붓이 떠올랐다.)


붓이 약해서, 성능이 좋지 않아서 검은 물만 잔뜩 머금고 다른 색은 칠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개인의 탓이 아니라) 그냥 그런 물통에 너무 자주 담가져서(환경의 문제) 그런 거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각자가 어떤 붓을 가진 사람들인지, 무얼 칠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를 알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이 그대로인 덕분에(?) 순탄하게 회사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업무를 할 때 자주 사용하던 단축키들이 분명 머릿속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며 놀라는 중이다. (무슨 키를 눌러야 되는지는 까먹었지만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는 기억하나 보다.)

검은색 먹물도 어딘가 쓰임이 있을 텐데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이곳에서 내가 쌓아나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하는 중이다.

어디서 이렇게 또 검은 물에 흠뻑 젖어보는 경험을 하겠어!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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