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블룸의 “미국 정신의 종말”을 읽고
미국인 철학자 앨런 블룸(Allen Bloom, 1930-1992)은, 1987년 저작 "미국 정신의 종말(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에서, 1960년대 이후 미국 고등 교육에 뚜렷해진 고전 경시와 하향 평준화를 비판하며, '교양'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거리를 제시했다. ☞ 책 정보 보기
블룸은 이 책의 열 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당대의 음악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일찍이(1968년) 플라톤의 "국가"를 영역한 것으로도 유명한 블룸은, 여기에서도 '철학에 가장 저항하는 본질적인 내용들은 모두 음악에 포함되어 있다'는 플라톤의 관점에 근거를 둔다.
블룸의 화살은 당시 미국 청년들이 열광하던 록 음악을 향한다. 그는 서구의 이성을 계승해 온 클래식 음악 대신, 관능에 의존하는 록이 가져오게 될 공허한 쾌락에 대한 우려를 직설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블룸은 지난 15년 간(1970-80년대) 자극제로서의 록 음악 현상을 함축하는 인물로, 믹 재거(Mick Jagger, 1943-)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가 미국 청년들에게 끼쳐 왔다는 이른바 '악영향'을 상세히 설명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블룸은 이 때 믹 재거의 인기가 차츰 시들해지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블룸은 이 책 출간 이후 약 5년만에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블룸의 단호한 비판이 무색하게 믹 재거는 90년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활동으로 여러 작위와 훈장의 주인공이 되었고, 작년에는 무려 73세의 나이에 득남을 하며 무대에서 뿐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블룸이 교양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라고까지 공격했던 '록 음악'의 영향력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오히려 서구 문화의 고전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 저항으로서의 록 음악을 대표해 왔던 밥 딜런(Bob Dylan, 1941-)은 20세기 서구 교양의 상징인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미 중년을 넘어 시니어 세대를 구성하게 된 당시의 청년들은 여전히 록 음악의 열정적 메시지를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블룸이 주장했듯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반드시 교양있는 정신성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은, 더이상 그럴듯한 근거를 갖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블룸의 주장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 보면, 그가 비판하는 대상은 결코 '록 음악'이나 '믹 재거'라는 구체적 키워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블룸이 경계했던 것은 특정한 세대의 일탈 그 자체이기보다도, '소비'를 통한 자극과 중독, 그로 인한 교양의 상실에 있었다. 다만 블룸은 이 책을 집필하던 1980년대 후반, 그러한 현상이 당시의 청년 층이 몰입하던 록 음악에 집중되어 나타났던 데에 주목한 것이다.
지난 수십년 간 우리는 클래식 음악도 고도의 상업주의 아이템이 될 수 있고, 록 음악도 깊이 있는 고전이 될 수 있음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목격해 왔다. 문제는 '세대'나 '장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블룸은 곧, '자기 자신의 정신과 내면'을 채울 것인가, 아니면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계좌'를 채워줄 것인가를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경고한 것이 아닐까. 출간 이후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블룸의 저작이 여전히 유효함을 갖고 있다면, 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